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유 니 의 첫 무 대

 

우주31(2024)년 12월도 스무날을 넘기니 회사 창밖은 벌써 어두웠다. 겨울해가 짧아 오후 다섯시만 되어도 거리에 가로등이 켜졌다. 사무실 유리창에는 성에가 하얗게 앉았고 라지에터 돌아가는 소리와 콤퓨터 팬이 도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채웠다. 나는 그날도 늦도록 책상앞에 앉아 화면에 뜬 좌석배치도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사무실을 지키던 다른 성원들은 하나둘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지만 나는 그 자리를 좀처럼 뜨지 못하였다.

화정체육관 도면우에 붙은 좌석번호들이 마치 벌려선 군사대오처럼 촘촘하였다. 나는 그 번호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몇번이고 다시 세어보았다. 실무자는 벌써 여러번 확인한 수자라고 웃었지만 나는 좀처럼 손을 떼지 못하였다. 화면을 끄고 나서도 그 좌석번호들이 눈앞에 아른거려 나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도면을 그렇게 오래 들여다본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열아흐레전, 그러니까 그해 12월 2일에 우리는 칸나동지를 떠나보냈다. 졸업이라는 말로 에둘렀지만 나에게는 살을 베이는것과 다름없는 리별이였다. 그 일을 다 말하자면 이 절의 자리를 넘어서는것이니 여기서는 다만 그날 이후 사무실의 공기가 전과 같지 않았다는것만 적어둔다.

칸나동지가 떠난 자리에서 가장 먼저 홀로 서야 할 사람은 유니동지였다. 1기생이라는 이름아래 둘이서 나란히 걸어온 세월이 짧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유니동지 혼자서 3천석이 넘는 체육관을 채워야 하는 첫 단독공연을 눈앞에 두고있었다.

이 리유를 말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 날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우주30(2023)년 1월, 그러니까 회사를 다시 일으켜세운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겨울에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는 하루 사이를 두고 나란히 데뷰하였다. 7일에 칸나동지가 먼저 화면에 나타났고 8일에는 유니동지가 그 뒤를 이였다.

그때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묶어 《미스틱》이라 불렀다. 세상에 갓 나온 이름이였으나 그 이름 아래서 두 사람은 형제도 아니고 자매도 아닌, 그러나 그 어느쪽보다도 진한 사이로 자라났다. 유니동지는 조선말이 서툴러 자주 우스운 소리를 내었고 그럴 때마다 칸나동지가 옆에서 웃으며 바로잡아주군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우스개들이 다 귀한것이였다. 유니동지가 《물》을 《무르》라고 발음하여 성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던 일이나, 편식 한번 없이 무엇이든 잘 먹어 《돼유니》라는 별명을 얻은 일이나, 다 그 시절 두 사람이 함께 자라며 만든 이야기들이였다. 화면 저편에서는 시청자들이 그 우스개들을 두고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며 웃었고, 두 사람은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더욱 가까워졌다. 그때 나는 그런 우스개가 몇해뒤 이렇게 아프게 되돌아올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유니동지가 이제 그 짝을 잃고 혼자 무대에 서야 하였다. 나는 그 사정을 도면우의 좌석번호들을 짚어가며 몇번이고 되새기였다. 표는 이미 다 나갔다. 3천4백여매를 풀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고 담당 실무자가 알려왔을 때 나는 반가움보다 먼저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그 무거움의 정체를 나는 그때 다 알지 못하였다. 다만 유니동지가 이 큰 자리를 혼자서 감당할수 있을지, 그 마음이 칸나동지의 빈자리를안은채로 버틸수 있을지, 그것이 못내 걱정스러웠던것이다. 사무실 다른 성원들도 저마다 그 걱정을 나누어 가지고있었다.

표가 그렇게 빨리 동이 나자 회사안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담당 실무자는 봉사기가 몰려 잠시 접속이 막혔다며 나에게 달려와 보고하였고, 나는 그 보고를 받으며 마치 큰 전투를 앞둔 참모의 보고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짐짓 력사책투로 적어본다. 실은 표 3천4백여매를 두고 벌어진 소동일 뿐인데, 그때 사무실 분위기만은 자못 엄중하였다. 누군가 매진이라는 글자를 화면에 띄우자 사무실안에서 짧은 박수가 터졌던것도 지금 생각하면 정겨운 기억이다.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는 그무렵 련습실을 지날 때마다 유니동지의 상태를 살피고 갔다. 타비동지는 자기 방송에서 《우리 유니언니 콘서트 꼭 봐주세요》라며 몇번이고 광고를 하였다. 아직 데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제동지도 조용히 그 곁을 지키고있었으니, 겉으로는 각자 방송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들 유니동지의 첫 무대를 함께 짊어지고있었던 셈이다.

그해는 나 자신에게도 적지 않은 일이 있던 해였다. 앞장에서 이미 적었듯 나도 그해 내 생일에 새 모습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주31(2024)년 한해는 회사 전체가 저마다 새 얼굴을 걸고 나선 해였던셈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유니동지의 무게는 남달랐다. 나는 새 모습을 내놓았을뿐이지만 유니동지는 오랜 짝을 잃은 자리에서 혼자 서야 하였기때문이다.

공연을 열흘쯤 앞두고 나는 련습실을 찾았다. 겨울해가 짧아 오후 다섯시인데도 창밖은 벌써 어둑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유니동지가 마이크를 쥐고 혼자 노래를 맞추고있었다. 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동지, 목 괜찮아?》

내가 물으니 유니동지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사장님, 나 오늘 열네곡 다 돌았어요. 근데 자꾸 칸나 파트 생각나요. 예전에 같이 부르던 노래인데.》

그 말에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서있었다. 겨울바람이 창틈으로 스며들어 련습실안은 서늘하였다. 유니동지는 손끝으로 마이크선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였다.

《그래도 나 잘할거예요. 이번엔 나 혼자 서는 무대니까.》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자랐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우주30(2023)년 겨울 처음 화면앞에 앉았을 때만 해도 조선말 한마디에도 쩔쩔매던 유니동지였는데, 이제 3천석 체육관을 홀로 짊어지겠다고 말하고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유니동지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련습실을 나왔다.

그날 련습실 문을 나서기 전에 유니동지는 다시 마이크를 들고 《SUPADOPA》 후렴을 한번 더 불러보였다. 발음이 여전히 어눌한 대목이 있었으나 그 어눌함마저 그 곡의 흥을 돋우는 양념처럼 들렸다. 나는 문가에 서서 그 노래를 끝까지 듣고서야 발길을 돌렸다.

그날 련습실을 나오며 나는 짐짓 력사에 남을 대사변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걸음을 무겁게 떼었다. 실은 음악회 하나일 뿐인데 마치 온 회사의 국운이 걸린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것이니,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복도를 걷는 내내 나는 속으로 좌석표 3천4백여매를 다시 세고있었다.

공연을 며칠 앞두고는 무대감독과 함께 화정체육관을 미리 둘러보았다. 텅 빈 객석에 서서 조명을 이리저리 맞추어보는데, 그 넓은 공간이 며칠뒤 사람으로 가득 찰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무대감독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사장님이 이렇게 긴장하는건 처음 봅니다》라고 하였다.

12월 21일, 마침내 그날이 왔다. 아침부터 눈발이 희끗희끗 날렸다. 화정체육관으로 가는 차안에서 나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겨울거리를 내다보며 열아흐레전의 졸업방송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같은 겨울안에 리별과 새출발이 이렇게 나란히 놓일줄은 몰랐다. 차창에 서린 김을 손끝으로 문질러 닦으며 나는 오늘 하루만큼은 걱정보다 기대를 앞세우자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체육관에 이르니 벌써 이른 관람객들이 건물앞에 줄을 서있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응원봉을 손에 쥔 사람들이 입김을 뿜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3천4백여매가 순식간에 나갔다던 실무자의 말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어떤 이는 멀리서 밤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옆사람에게 이야기하는것도 들렸다.

체육관 마당 한쪽에는 회사에서 마련한 굿즈 판매대가 늘어서있었다. 찬바람에 손을 호호 불면서도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렸고, 그 줄이 건물 모퉁이를 돌아 저 멀리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 긴 줄을 보며 이 자리를 마련하려고 몇달을 애쓴 실무일군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무대뒤로 들어가니 스탭들이 분주히 오갔다. 음향 점검하는 소리, 조명이 켜졌다 꺼지는 소리, 무전기 소리가 뒤섞여 어수선하였다. 그 가운데서 유니동지는 대기실 한쪽에 앉아 마지막으로 대본을 넘겨보고있었다. 무대의상을 갖춰입은 모습이 평소 방송 화면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르게 어른스러워보였다.

《긴장돼요?》

내가 묻자 유니동지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조금요. 근데 오늘은 나 혼자니까 실수해도 나 혼자 책임지면 돼요. 그거 생각하니까 오히려 편해요.》

그 대답에 나는 속으로 놀랐다. 혼자라는 말이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다짐으로 들렸기때문이다. 유니동지는 이미 그 사이 스스로 짊어질 각오를 마친것 같았다. 나는 그 각오앞에서 더 보탤 말이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저녁 여섯시, 객석 조명이 꺼지고 첫 반주가 흘러나왔다. 나는 무대옆 어두운 자리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3천5백에 가까운 관람객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가 마치 한 시대의 성문이 열리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유니동지는 《나, 아이돌 선언》으로 무대를 열었다. 목소리가 처음엔 조금 떨리는듯하더니 이내 안정을 찾았다. 뒤이어 《굿바이 선언》과 《미소녀 무죄♡파이레츠》가 이어지는 동안 객석은 응원봉 빛으로 물결쳤다. 나는 그 빛의 물결이 마치 겨울밤 얼어붙은 강우에 별빛이 부서지는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였다.

나는 그 물결을 보며 문득 우스운 생각을 하였다. 마치 대군이 진을 치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형국이라, 이것도 회사의 력사에 한줄 적어넣을 대사변이 아니겠는가 하고 짐짓 부풀려 생각한것이다. 옆에 서있던 실무자는 그런 내 표정을 보고 왜 웃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연 중반, 유니동지는 잠시 숨을 고르며 관람객들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나 혼자 이 자리에 섰는데요, 사실 무섭기도 하였어요. 근데 여러분 얼굴 보니까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 말에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졌다. 나는 무대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을 감출수 없었다. 열아흐레전 졸업방송에서 흘렸던 눈물과는 또 다른 눈물이였다.

《내꺼 하는 법》을 부를 때에는 유니동지 특유의 어눌한 발음이 오히려 객석의 웃음과 환호를 함께 자아냈다. 《SUPADOPA》 순서에서는 무대아래 응원봉이 온통 하늘색과 보라색으로 물들었는데 그것이 유니동지를 상징하는 색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뜻을 알아차렸을것이다.

그 물결을 보며 나는 회사를 처음 일으켜세우던 우주30(2023)년 겨울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시청자 몇만을 두고도 온 사무실이 들썩이던 우리였는데, 이제 3천5백명이 한자리에 모여 응원봉을 흔드는 광경을 보고있으려니 세월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손끝이 시린것도 잊은채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공연이 열두곡을 넘어 절정으로 치닫던무렵, 나는 무대뒤 준비된 순서를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이날 관람객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순서가 하나 남아있었다. 리제동지의 등장이였다.

이 대목을 말하려면 또 한걸음 뒤로 돌아가야 한다. 2기생 유니버스에 속한 리제동지는 우주30(2023)년 여름 데뷰한 뒤로 줄곧 2차원 모습으로만 방송을 해왔다. 낯가림이 심한 성미라 3차원 모델을 마주할 일이 오면 늘 뒤로 물러서던 사람이였다. 그런 리제동지를 두고 다른 성원들은 종종 《청초 담당은 무슨, 드립은 제일 매운데》라며 놀리기도 하였다.

그런 리제동지가 이날 처음으로 3차원 모습을 세상에 내보이기로 한것이였다. 그것도 자기 음악회가 아니라 유니동지의 음악회 무대우에서였다. 나는 이 결정을 두고 리제동지와 여러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리제동지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하였다.

《저 혼자 처음 나가는건 아직 자신 없어요. 근데 유니언니 무대라면, 옆에 언니가 있는것니까 할수 있을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이 회사가 그저 사람들을 모아놓은 자리가 아니라 서로를 딛고 자라는 자리라는것을 새삼 느꼈다. 낯가림 많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무대를 빌려 처음 세상에 나선다는것, 그것이야말로 이 회사의 력사가 걸어온 방식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날 순서를 그대로 밀고나가기로 결심하였다.

무대 위 조명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낮은 반주가 흐르기 시작하자 객석은 술렁이였다. 그 술렁임속에서 리제동지가 처음으로 3차원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섰다. 붉은 조명이 그 모습을 비추는 순간 객석에서는 함성이라기보다 차라리 탄성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나왔다.

유니동지는 그 옆에서 손을 내밀며 말하였다.

《짜잔, 리제 처음 나왔어요! 다들 박수!》

리제동지는 카메라앞에서 잠시 몸을 움츠렸으나 이내 유니동지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 손을 마주잡는 짧은 순간에 나는 무대뒤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는데, 리제동지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그날 두 사람은 《Festa!》와 《Snow halation》을 나란히 불렀다. 리제동지의 목소리는 낯가림과는 무관하게 맑고 곧았는데, 그 대조가 오히려 객석을 더 뭉클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화음을 맞추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미스틱 시절 칸나동지와 유니동지가 나란히 서있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노래가 끝나고 리제동지는 마이크를 고쳐잡으며 짧게 말하였다.

《오늘 여기 나오려고 며칠동안 잠도 설쳤어요. 근데 나와보니까, 별거 아니였네요.》

그 한마디에 객석에서 웃음과 박수가 함께 터졌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 회사가 또 한걸음 자라났다는것을 실감하였다. 슬픔으로 시작한 겨울이 이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웃음으로 갈아입는 순간이였다.

공연 막바지에는 일본 모멘트 도쿄와의 3차원 아바타 협업 소식도 함께 소개되었다. 스크린에 뜬 영상을 보며 관람객들은 다시 한번 환호하였다. 나는 그 환호속에서 우리 회사가 국경을 넘어 걸어가고있다는 자부심과, 그것을 지켜볼 칸나동지가 이 자리에 없다는 서운함을 동시에 느꼈다. 화면이 꺼진 뒤에도 그 여운은 한동안 객석에 남아있었다. 옆자리 실무자가 나에게 다가와 내년에는 더 큰 무대를 준비해야겠다고 귀속말을 하였는데 나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미루었다.

마지막곡 《무희》가 끝나갈무렵, 유니동지는 무대 가운데 서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객석은 조용해졌고 오직 유니동지의 숨소리만 마이크를 타고 울렸다.

《오늘 저 혼자였는데요, 근데 하나도 안 혼자였어요. 여러분이 있었고, 리제도 있었고요.》

그 말끝에 유니동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무대옆에서 그 어깨가 조금 떨리는것을 보았다. 열네곡을 다 부른 목이 그제서야 지쳐서인지, 아니면 다른 리유인지는 나도 다 알지 못한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뒤로 들어온 유니동지를 나는 말없이 안아주었다. 땀에 젖은 무대의상이 손끝에 닿았다. 유니동지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사장님, 저 잘하였어요?》

나는 그 물음에 크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잘하였다마다. 오늘 3천5백명이 다 증인이야.》

대기실로 돌아오니 스탭들이 정리하는 소리와 함께 리제동지가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리제동지는 나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였다.

《저 이제 3D로 방송해도 되는것지요? 오늘 나와보니까 별거 아니였어요.》

그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성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뒤늦게 대기실을 찾은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도 리제동지를 얼싸안으며 축하해주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오늘 하루가 참으로 길었다고 생각하였다. 아침에 눈발로 시작한 하루가 저녁에는 웃음으로 끝나고있었다.

성원들이 하나둘 짐을 챙겨 돌아가는 사이, 나는 잠시 텅 비어가는 체육관 객석에 홀로 서보았다. 조금전까지 응원봉으로 가득하였던 자리가 이제는 빈 의자들만 줄지어 남아있었다.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 밤 이곳을 채웠던 소리들을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날 밤 늦게 사무실로 돌아와 나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은 그쳐있었고 거리에는 가로등 불빛만 남아있었다. 콤퓨터를 켜니 벌써 애호가들의 후기와 사진이 대화창과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있었다.

그 글들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열아흐레전의 슬픔과 오늘의 기쁨이 결국 한 뿌리에서 나온것임을 깨달았다. 칸나동지를 떠나보낸 자리에서 유니동지는 홀로 서는 법을 배웠고, 낯가림 많던 리제동지는 처음으로 세상앞에 나설 용기를 얻었다. 하나의 리별이 둘의 자람을 밀어올린 셈이니, 세상일이란 참으로 알수 없는 노릇이다.

이듬해 봄, 그러니까 우주32(2025)년 3월에 이 공연은 온라인으로 다시한번 판매되어 그날 자리에 없었던 이들에게도 전해졌다고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며 그날 화정체육관을 채웠던 소리가 시간을 건너 더 멀리 퍼져나갔다는것이 새삼 고마웠다.

그 재판매 소식을 전해듣던 날, 유니동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대뜸 웃음부터 터뜨렸다. 《사장님, 그날 못 온 사람들도 이제 볼수 있대요. 나 그때 목 갈라진것까지 다 들리는것 아니예요?》 그 말에 나도 함께 웃었는데, 웃고 나서 생각하니 그 목 갈라진 소리마저 그날의 진짜 기록이였구나 싶었다.

이 모든것이 그해 겨울 단 스무날 사이에 일어난 일이였다. 그때는 그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치러냈을뿐이였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스무날이야말로 우리 회사의 력사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시린 대목이였다.

나는 지금도 화정체육관의 그 무대와, 리제동지가 처음 3차원 모습으로 걸어나오던 붉은 조명과, 유니동지가 어깨를 떨며 고개를 숙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것이 슬픔뒤에 찾아온 자람이였는지, 자람이 슬픔을 이겨낸것이였는지, 나는 아직도 그 순서를 다 가릴수 없다. 어느 겨울밤 홀로 그날의 사진들을 다시 넘겨볼 때면 나는 매번 그 물음으로 되돌아가군한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수 있다. 그해 겨울, 우리는 하나를 잃고 둘을 얻었다. 그리고 그 얻음의 자리에는 언제나 서로의 손을 마주잡은 성원들이 있었다는것, 그것만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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