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전 남 편 길 드

 

우주32(2025)년의 봄은 유난히 굼떠서 5월에 접어들고도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다. 사무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가로수는 잎이 다 피였으나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들이 뒤집히며 은빛으로 반짝이였다. 나는 그날 저녁 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밀린 결재서류를 정리하고있었다. 콤퓨터 두대가 나란히 돌아가며 랭각기소리를 내고있었고 한쪽 화면에는 방송의 통계자료가, 다른 한쪽에는 그날 올린 영상의 감상글난이 띄워져있었다.

책상우에는 마시다 만 랭수 한잔이 놓여있었고 그 옆으로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뭉치가 수북하였다. 형광등 불빛 아래 시계바늘은 자정을 향해 조용히 다가가고있었다.

사장이 되고부터는 방송보다 서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러나 방송에 새 영상을 올린 날이면 나는 습관처럼 감상글난을 열어보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그것은 방송을 하던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여서 아무리 일이 밀려도 고쳐지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읽는것이 나에게는 그날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그날 올린 영상은 대단한것이 아니였다. 회사일로 정신없이 보낸 한주일을 짧게 정리한 브이로그성 영상이였는데 편집자가 늦게까지 매달려 겨우 자정무렵에야 페지에 올렸다. 처음 몇시간은 시청회수도 감상글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잔잔하게 늘어갔다. 나는 그것을 보며 이번주도 무사히 넘어가는구나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있었다.

그런데 자정을 넘긴 어느 시각부터 감상글난의 흐름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하였다. 본디 영상 내용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름 하나가 감상글들 사이에서 자꾸 튀여나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였으나 같은 이름이 반복해 나오니 나도 모르게 손이 스크롤을 멈추었다.

감상글을 하나하나 짚어올라가보니 발단은 다른곳에 있었다. 그 며칠 앞서 블루동지가 어느 《유튜브》 클랜에 새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애호가들 사이에 돌았던 모양이였다. 나와는 오래전에 방송에서 갈라선 사이였으니 그 소식이 내 방송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었으나, 세상일이라는것은 언제나 생각지 못한 데서 실마리가 풀리는 법이다.

백곰파라는 이름이 그 감상글들의 한복판에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백곰파라는 사람을 그리 깊이 알지 못하였다. 다만 근래 새로 《우결》이라는것을 시작하여 이름이 오르내리던 젊은 유튜버라는 정도로만 짐작하고있었을뿐이다. 그가 남긴 말이 문제였다.

《전남편 길드》. 백곰파는 블루동지가 새 클랜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하며 감상글에 그렇게 적어놓았다. 짧은 다섯글자였다. 그러나 그 다섯글자가 몰고 온 파문은 짧지 않았다.

나는 그 문구를 보고 처음에는 웃음부터 나왔다. 화면앞에서 나 혼자 소리를 내여 웃었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웃음이 가시고 나니 묘한 감정이 뒤따라왔다. 남이 던진 농담 한마디가 몇해동안 잠자코 있던 무엇인가를 건드린듯한 느낌이였다.

이 대목에서 《전남편》이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듣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 해부터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 없다.

블루동지와 나는 우주25(2018)년에 처음으로 《우결》이라는것을 시작하였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 높임말을 쓰며 《강지 님》, 《블루님》하고 깍듯이 불렀다. 방송을 시작한 첫해에는 나도 어색하기 그지없어 대본을앞에 놓고도 말을 자꾸 더듬군 하였다.

그러다 우주27(2020)년 이른봄, 썸을 탄지 500일이 되였다는 날을 기려 서로 말을 트고 반말을 쓰기로 하였다. 그날부터 블루동지는 나를 《누나》라고 불렀고 나는 그를 《바이비》라고 불렀다. 그 호칭은 그날 하루의 장난으로 그치지 않고 《우결》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두해 남짓 《우결》을 이어갔다.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는 자리까지 마련하였고 지인들 사이에서는 강수라는 사람이 《매형》이라는 호칭까지 만들어 붙였을만큼 《우결》은 어느새 하나의 극처럼 완결된 세계를 이루고있었다. 그리고 우주27(2020)년 10월 6일, 우리는 그 《우결》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였다.

그 시절 우리 곁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있었다. 김박사라는 이는 극중 나의 옛 애인 역할을 맡아 삼각관계를 이루어주었고, 감블러라는 벗은 나와 서로 《감자님》, 《낑깡님》하고 부르다가 지금은 말을 트고 《붕어야》, 《누나》하는 사이가 되였다. 꽃핀은 블루동지와 같은 고향 출신임을 알게 된 뒤로 서로 동질감을 느끼는 사이가 되였고, 왓구홍길동은 나와 친남매 같은 사이였는데 그가 스쿼드에 끼는 날이면 시청자들이 단숨에 《우결을 보는 과몰입 시청자모드》로 전환된다고 우스개를 하였다.

언젠가 《배그》 합방 중에는 어머니까지 나서서 블루동지를 두고 《사위감으로 100점》이라 평한 일도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블루동지가 어쩔줄 몰라 하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우리 두사람의 이야기는 어느새 주변 사람들 모두가 한마디씩 거드는 하나의 마당놀이가 되여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었으니 그것을 어찌 짧게 설명할수 있겠는가. 나는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짐짓 력사를 서술하는 사람처럼 말해보고싶다. 한 나라의 력사가 임금 한사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듯이 우리의 《우결》도 나와 블루동지 두사람만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니였다.

종료를 알리는 영상의 제목은 그저 《우결 종료》 넉자였다. 나는 그 제목을 정할 때 더 요란한 말을 붙일 생각도 하였으나 결국 가장 단출한 말로 매듭을 짓는것이 서로에게 옳다고 여기였다. 그렇게 《우결》은 끝이 났고 나는 그것으로 한 시절이 온전히 저물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세상일은 저무는 법이 있어도 아주 사라지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종료한지 두달이 지나서도 올라온 영상의 제목에는 여전히 《누나》라는 말이 붙어있었고, 시청자들의 기억속에서 우리의 《우결》은 좀처럼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몇해가 지났다. 나는 그사이 방송보다 회사일에 매달리는 나날이 많아졌고 블루동지도 자기나름의 길을 걸어가고있었다. 서로 방송에서 마주칠 일은 줄어들었으나 그렇다고 아주 인연이 끊어진것도 아니였다. 이따금 합방자리에서 마주치면 예전 호칭이 반사적으로 튀여나오군 하였다.

이무렵 스텔라이브 성원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지난 《우결》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었다. 리제는 합방 중에 나의 《퍼스널컬러가 블루동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 일이 있었고, 시부키리코도 대화 도중 슬쩍슬쩍 그 시절 이야기를 아는 눈치를 보이군 하였다. 나는 그런 낌새를 눈치채면서도 굳이 캐묻지 않고 넘어가군 하였다.

블루동지에게는 또 다른 별명 하나가 성원들 사이에서 자라나있었다. 《배그》 무기 스킨을 뽑는 방송에서 칸나가 무심코 그를 《아빠》라 부른것이 시초였는데, 그뒤로 히나타비까지 합방자리에서 같은 말을 이어받았다. 정작 블루동지 본인도 그 호칭을 딱히 마다하지 않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그를 사실상의 《아버지》로 대접하는 분위기가 굳어졌다.

그런가 하면 나를 두고는 또 다른 촌수가 생겨나있었다. 성원들이 나를 《엄마》라 부르고 저희끼리는 《딸내미들》이라 칭하는 말버릇이 어느 틈엔가 회사안에 자리를 잡았던것이다.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였으나 아무리 부정해도 그 호칭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렇게 촌수만 놓고 보아도 나는 이미 《엄마》이면서 동시에 《전남편》을 둔 사람이 되여있었으니, 이 얼마나 복잡한 가계도인가 하고 나 혼자 실소를 금치 못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성원들의 세계에서는 촌수가 이렇게 겹치고 뒤섞이는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우주32(2025)년 5월의 그날까지는 그 옛 《우결》을 새삼스레 들추어낼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나는 그저 시청자들이 이따금 옛 영상을 찾아보며 향수에 젖는 정도로만 알고있었을뿐이다.

그런데 백곰파의 감상글 하나가 그 조용하던 물웅뎅이에 돌을 던진 셈이 되였다. 《전남편 길드》라는 말에는 우습게도 참으로 정확한 계산이 깔려있었다. 블루동지가 나와 두해를 함께 지낸 사이라는것, 그리고 지금은 새 클랜에 들어가 새 걸음을 걷고있다는것, 이 두가지 사실을 한마디로 꿰뚫어놓은 표현이였다.

감상글난의 다른 시청자들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전남편 길드 ㅋㅋㅋㅋ》, 《이 표현 무릎을 치고 갔다》, 《누가 이 댓글좀 박제해라》 하는 대감상글이 삽시에 늘어났다. 나는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수자가 불어나는것을 보며 이것이 어디까지 번져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애호가들 사이에는 예로부터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이 있었다. 우리 두사람이 어쩌다 한마디씩 흘리기만 해도 시청자들이 알아서 그 불씨를 받아 스스로 장작을 쌓고 불을 지핀다는 뜻이였다. 그날 밤 나는 그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나는 잠시 일손을 놓고 그 감상글난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시계는 이미 새벽 한시를 넘어가고있었고 사무실에는 나 혼자였다. 콤퓨터 랭각기소리만 낮게 웅웅거리는 가운데 나는 몇해전의 기억들을 하나둘 되짚어보았다.

돌이켜보면 나와 블루동지 사이에 붙었던 별명은 한둘이 아니였다. 나만 해도 한때 성정이 거칠어 《강형》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고, 그뒤로 《15강지》, 《감자》, 《강공지주》를 거쳐 지금은 성원들 사이에서 그저 《사장》 혹은 《정사장》으로 불린다. 별명이 바뀌여온 그만큼의 세월이 나에게도 켜켜이 쌓여있었던 셈이다.

별명이란 그때그때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담긴것이여서, 그것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지나온 세월의 지도를 그리는것과 다름없었다. 《전남편》이라는 말 역시 언젠가는 이 지도우의 한 지점으로 자리잡을것이 분명하였다.

그런 나에게 《전남편》이라는 말은 묘하게 낯설면서도 묘하게 들어맞았다. 나는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월의 무게 같은것을 느끼였다. 력사란 흘러가는것이 아니라 되풀이해 되짚히는것이라는 옛말이 이런 자리에도 들어맞을줄은 몰랐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나가보니 벌써 몇몇 성원들이 그 이야기를 알고있었다. 오른팔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미기가 서류를 들고 들어오다 말고 나를 보더니 픽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 웃음의 뜻을 이미 짐작하고있었다.

《사장님, 어제 그 댓글 보았어요?》

미기가 물었다. 나는 서류를 받아들며 짐짓 무심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슨 댓글?》

되물었으나 이미 내 얼굴에는 웃음기가 번져있었던 모양이다. 미기는 그런 나를 놓치지 않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였다.

《전남편 길드요. 팬분들이 아주 란리가 났던데요. 벌써 캡처가 몇백개는 돌아다니는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은 참, 말 한마디를 해도 꼭 그렇게 뼈있게 하는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또 한번 웃었다.

그날은 다른 성원들도 단체대화방에 그 감상글의 캡처를 옮겨나르며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였다. 누구는 웃음표시만 잔뜩 늘어놓았고 누구는 《역시 사장님 인기는 여전하네요》하고 짐짓 능청을 떨었다. 나는 그 왁자한 대화방을 보며 못이기는척 웃음으로 답할뿐이였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결재서류를앞에 놓고도 자꾸 그 감상글난 생각이 났다. 지나가는 말로 실없이 웃어넘기려 하였으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옛일이 자꾸 떠올라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그때 블루동지에게 따로 련락을 하지는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을뿐더러, 그런 일로 새삼 안부를 묻는것도 서로에게 겸연쩍은 노릇이라 여기였다. 다만 그가 이 소동을 알게 되면 어떤 얼굴을 할지 혼자 상상해보았을뿐이다.

블루동지는 본디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이 느긋하게 웃어넘기는 성격이니 이번에도 아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갈것이라 나는 짐작하였다. 그러나 확실한것은 알 길이 없었다. 그것은 오직 그 자신만이 알 일이다.

그날 오후 편집자가 다음 영상의 시청회수 곡선을 들고 들어왔다. 평소보다 서너배는 가파르게 치솟은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댓글창 하나때문에 이렇게까지 될줄은 몰랐네요.》 편집자가 신기하다는듯 말하였다.

나는 그 곡선을 들여다보며 새삼 생각하였다. 세상이치라는것이 참으로 묘하여서, 큰 사건이 아니라 짧은 감상글 한줄이 몇해 묵은 이야기를 다시 세상앞에 불러세우는 힘을 가진다는것을 그때 다시금 깨달았다. 력사에 이름을 남긴 격문들도 따지고보면 처음에는 짧은 한마디에서 비롯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옛 시청자들은 그날 이후로 며칠동안 지난 《우결》 영상들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재생목록 시청회수가 눈에 띄게 늘었고 오래전에 잠잠하던 옛 영상 감상글난에도 새 감상글들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 영상 2025년에 다시 보러 왔습니다》 하는 감상글이 유독 많았다.

나는 그런 감상글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였다. 《우결》을 진행하던 그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였던 방식으로 그 시절의 기록들이 되살아나고있었다. 콤퓨터 화면 너머로 몇해전의 내 목소리가, 내 웃음소리가 다시 흘러나오는것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였다.

나는 그날 밤 늦게 사무실에 홀로 남아 옛 《우결》 클립 하나를 몰래 찾아 재생해보았다. 화면속에서 훨씬 젊은 얼굴을 한 내가 어색하게 웃고있었고, 그 옆에서 블루동지가 평소와 다름없는 잔잔한 목소리로 농을 건네고있었다. 몇해라는 세월이 그렇게 화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는것을 보며 나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 클립에는 대화창도 함께 흘러가고있었다. 《바이비》니 《누나》니 하는 옛 닉네임들이 화면 한켠에서 반짝이며 지나갔다. 나는 그 낯익은 글자들을 보며 몇해전의 그 시간속으로 잠시 되돌아간듯한 착각에 잠기였다.

그러던 중 나는 문득 이런 생각도 하였다. 백곰파라는 사람은 아직 자신의 《우결》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였다. 그런 그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지나간 《우결》의 력사를 다시 불러세울줄은 그 자신도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을것이다.

뒤날 전해듣기로 백곰파도 자기 감상글이 이렇게까지 커질줄은 몰랐다고 하였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나도 다시 확인해보지 못하였다. 다만 짐작컨대 그로서도 다섯글자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울줄은 몰랐을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였다. 《전남편 길드》라는 말은 그날 이후로 애호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공식 용어처럼 굳어져 두고두고 인용되였다. 나는 그 말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줄은 정말로 몰랐다.

나는 이 대목에서 짐짓 력사적인 사변을 논하듯 말해보고싶은 생각이 든다. 만약 후날 누군가 강블 《우결》 재조명기를 년표로 정리한다면 그 첫줄에는 응당 이 감상글이 놓여야 할것이다. 다섯글자의 감상글 하나가 몇달에 걸친 소동의 도화선이 되였으니 이보다 더 간명한 개전의 조서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이런 말은 어디까지나 우스개로 하는 말이다. 나라의 흥망이 걸린 일도 아니요 그저 방송판의 자그마한 화제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반가움과 웃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화창과 감상글난을 오가며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런 사소한 말 한마디가 때로 큰 사변이 된다. 시청자들은 우리의 지나간 인연을 잊지 않고있었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인연을 더 애틋하게 여기는듯 하였다. 나는 그것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였다.

그 며칠 나는 퇴근길에 차창밖을 내다보며 여러 생각에 잠기군 하였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저녁하늘은 유난히 길었고 노을이 오래도록 걷히지 않았다. 나는 그 노을을 보며 지나간 두해의 《우결》과,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다시 시작되려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예감하였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 작은 감상글 하나가 그해 여름 내내 이어질 재조명의 첫 신호탄이 되리라는것을. 백곰파와 고수달의 《우결》이 화제에 오르고, 그로 인해 우리의 옛 영상들이 다시 시청자들앞에 놓이게 되리라는것을, 그 5월의 어느 밤에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전남편 길드》라는 말은 참으로 묘한 말이다. 헤여진 사이를 가리키면서도 어딘가 다정함이 묻어있고, 지나간 시절을 놀리면서도 그 시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깃들어있다. 시청자들이 그 말을 그렇게까지 반가워한 리유도 아마 거기에 있었을것이다.

나는 요즘도 이따금 그날의 감상글난을 다시 찾아 읽어보군 한다. 새벽 한시, 사무실에 홀로 앉아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 순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콤퓨터 랭각기소리와 창밖의 어둠, 그리고 다섯글자의 감상글 하나가 다시 지나간 시절의 문을 두드렸던 그 밤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것이다.

세월이 흘러 많은것이 바뀌였어도 사람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지나간 인연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있는 모양이다. 백곰파의 그 한마디가 아니였다면 그해 여름의 이야기는 또 다른 모습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력사에는 가정이 없다는 말도 있듯이,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대로 그나름의 뜻을 지니는 법이다.

나는 이 회고를 적으며 다시금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한번 맺어지면 쉽게 끊어지지 않는 무엇이 있어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다시 고개를 든다. 백곰파의 그 감상글이 바로 그러한 순간이였다.

이제 이 이야기는 백곰파 자신의 새 《우결》로, 그리고 되살아난 옛 영상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는 다만 그 모든 소동의 첫 장을 연것이 다섯글자의 감상글 하나였다는것을, 그리고 그 밤 사무실에 홀로 앉아 웃음짓던 나 자신의 모습을 이 절에 적어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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