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백 곰 파 의 우 결
우주32(2025)년의 오월은 예년보다 비가 잦았다. 사무실 창밖으로 흐린 하늘이 사흘이나 이어졌고, 나는 자리에 앉아 콤퓨터 두대를 나란히 켜놓은채 밀린 결재페지와 대화창을 번갈아 들여다보고있었다. 한쪽 화면에서는 회사 살림에 관한 문건들이 넘어가고 다른쪽 화면에서는 성원들의 방송 상황판이 조용히 반짝이였다. 창틀에 빗방울이 맺혔다 흘러내리는 소리와 본체 팬이 도는 소리만이 방안을 채우고있었다.
그 며칠전에 있었던 《전남편 길드》소동은 아직 가시지 않은 참이였다. 백곰파가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가 온 팬 모임터에 불을 붙였다는것은 앞절에서 이미 적은대로다. 나는 그때만 해도 이 일이 한때의 우스개소리로 지나갈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언제나 예상을 비껴가는 법이여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오히려 다른 곳으로 옮겨붙었다.
불이 옮겨붙은 자리는 다름아닌 백곰파와 고수달 두 사람의 방송이였다. 두 사람이 나누는 《우결》 내용물 자체가 새삼 화제로 떠오르기 시작한것이다. 애호가들은 신진 짝의 알콩달콩한 장면 하나하나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도, 그 화제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우리 두 사람의 옛 이야기가 깔려있었다. 《누가 먼저 걸어간 길인데》 하는 감상글이 여기저기 달리는것을 보면서 나는 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히지 않을수 없었다.
대화창과 모임터 게시판에서는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이 류행하였다. 누가 일부러 부채질을 하지 않아도 시청자들 스스로 옛 클립을 찾아다가 다시 퍼올리고, 새 짝의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 옛적 대사를 나란히 갖다붙이며 웃고 즐기는 것이였다. 나는 처음엔 그저 신기하게만 여기였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사람들의 기억이란 꺼지지 않는 잉걸불처럼 깊은곳에서 그대로 타고있었던 것이다.
한 갤러리 게시판에는 우리 《우결》 초창기 영상 제목을 하나하나 늘어놓은 글까지 올라와있었다. 《강지 님은 이미 제 거잖아요》부터 《우결 종료》까지, 누군가 그 오랜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놓은 정성이 놀라웠다. 감상글난에는 오랜만에 그 시절의 초성글자들이 다시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여전히 《ㅁㅇㅁㅇ》라는 그 낡은 표현으로 새 짝의 알콩달콩한 장면을 놀리고있었다.
나는 화면앞에 앉아 그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대표라는 자리에서 응당 살펴야 할 여론의 하나로만 대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옛 영상 하나를 클릭해 다시 열어보았을 때, 화면속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앳된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있었다. 사람이란 지나간 시절의 자기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수 있는 존재인가보다.
그러고있는데 내 오른팔 격인 미기가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가 내 화면 화면을 흘깃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또 그거 보고계세요?》하고 묻는 말에 나는 딱히 대답할말을 찾지 못하고 헛기침만 하였다. 미기는 몇해를 나와 함께 일해온 사람답게 내 표정만 보고도속을 짐작하는 눈치였다. 서류는 나중에 다시 가져오겠다며 슬며시 문을 닫고 나가는 그 뒤모습에서마저 웃음기가 묻어났다.
미기가 나간 뒤에도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창밖에는 여전히 가는 비가 내리고있었고, 나는 그 빗소리를 배경삼아 지나간 시절을 하나씩 헤아려보았다. 이 소동이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지, 나 스스로도 그 답을 다 알지 못한채 한참을 앉아있었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옛일이 나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는 사실이였다.
그 소동은 사무실안에서도 화제가 되였다. 평소 나를 《엄마》라 부르며 저희끼리는 《딸내미들》을 자처하는 성원들도 이번 일을 놓고 저희들끼리 한참 떠들어댄 모양이였다. 히나동지와 타비동지는 예전부터 블루동지를 《아빠》라 불러온 터라, 이번 소동을 두고 《아빠가 다시 유명해졌다》며 킥킥거렸다는 이야기가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나는 그 말을 전해듣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 회사안에서 엄마와 아빠 소리를 듣는 처지가 되고보니,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게 뻗어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부르는 이름도 그동안 여러번 바뀌였다. 한때는 성질 사납다고 《강형》이라 불리다가, 다시 《15강지》를 거쳐 《감자》라는 애칭으로 불리였고, 회사를 차린 뒤로는 성원들이 《정사장》이니 《샤쵸》니 하는 말로 나를 놀려댔다. 그 숱한 이름들 가운데서도 유독 《바이비》를 부르던 그 목소리 하나만은 지금도 뚜렷이 떠오른다. 사람의 이름이란 결국 누가 어떤 마음으로 불러주었는가로 남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새 화제를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 해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우결》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우리 두 사람이 어쩌다가 그 길에 들어서게 되였는지, 그 래력을 모르고서는 이번 소동을 온전히 리해할수 없기때문이다. 세월을 한참 거슬러올라가야 하지만, 짧게라도 그 시절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우결》이 처음 시작되던 우주25(2018)년, 블루동지와 나는 서로를 깍듯이 높여불렀다. 《강지 님》, 《블루님》하고 부르는 그 말투에는 어색함과 설렘이 반반씩 섞여있었다. 화면속에서 우리는 《배그》판우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을뿐인데, 그 만남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마다 온갖 상상을 보태여 웃고 떠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우리는 이 길이 몇해나 이어질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무렵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얽혀들었다. 삼각관계를 이루어 《우결》 초반부터 합방을 하며 친해진 김박사가 있었고, 나와 친남매 같은 궁합를 보여준 왓구홍길동도 있었다. 그들이 한 스쿼드에 모이는 날이면 시청자들은 단숨에 《우결을 보는 눈》으로 전환하여 화면앞에 매달리군하였다. 그렇게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그 시절 우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인연들 가운데는 방송 밖에서도 이어진 것들이 있었다. 나와 오래전부터 서로를 감자님, 낑깡님이라 부르던 감블러는 지금도 말을 트고 지내는 사이가 되였다. 같은 고향 출신임을 알고부터 블루동지와 유난히 가까워진 꽃핀 언니도 그 시절부터 우리 곁을 지켜준 사람이였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둘 곁에 있었기에 그 오랜 《우결》의 세월을 나 혼자 견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후날 우리 사이가 반말로 넘어가고 블루동지가 나를 《누나》라 부르게 된 그날을 두고, 세간에서는 사백여든날째라는 말도 있었고 오백날째라는 말도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나조차 그 셈을 정확히 헤아려본 일이 없으니 어느 쪽이 맞는지는 나도 자신있게 말할수가 없다. 다만 그날 이후로 나는 블루동지를 《바이비》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그 호칭은 《우결》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이어졌다. 사람들의 기억속에 날짜보다 오래 남는것은 결국 그 부름소리였던 셈이다.
또 어느 날엔가는 내가 처음으로 블루동지를 향해 《오빠》라는 말을 입밖에 낸 일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두고두고 그날을 이야기하였다. 나로서는 그저 순간의 흐름을 따라간 것이였을뿐인데, 화면 밖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무슨 큰 사변처럼 여겨진 모양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만큼 다들 이 이야기에 진심으로 몰입해있었다.
그 사이 나의 어머니까지 방송에 등장하여 《사위감으로는 블루동지가 백점》이라는 폭탄선언을 하였던 일도 있었다. 그날 블루동지의 당황하던 얼굴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짐짓 력사적인 회담이라도 되는 양 상견례까지 치른 우리 두 사람의 《우결》은, 이를테면 한 왕조의 성립에 못지않은 무게로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였다. 물론 이것은 웃자고 하는 말이지, 실제로 나라를 세운 일에 견줄바는 못된다.
호칭은 화면 밖 사람들에게까지 번져나갔다. 나의 지인 강수는 《우결》 상대의 남편이라는 설정을 핑계삼아 블루동지를 《매형》이라 불렀고, 블루동지는 그 호칭을 겸연쩍어하면서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어느새 주변 사람들의 놀이가 되여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놀이야말로 《우결》이 그토록 오래 사랑받은 리유가 아니였을까 싶다.
그렇게 두해 남짓을 끌어온 우리의 《우결》은 우주27(2020)년 시월엿샛날 저녁에 막을 내렸다. 《우결 종료》라는 짧은 제목의 그 영상 하나로 우리는 그 오랜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날 왜 하필 그때 끝을 맺기로 하였는지, 그 참된 리유를 나는 아직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 둘 다 그 시절을 후회없이 지나왔다는 사실뿐이다.
종료 이후에도 서로를 부르던 호칭만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두달 뒤에 올라온 어느 영상에는 《이미 우린 끝났잖아, 누나》라는 제목이 달려있었는데, 그 제목을 볼 때마다 나는 웃음이 나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아릿하였다. 사람 사이의 정이란 방송의 끝맺음과는 다른속도로 흘러가는 모양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결》이라는 형식은 접었어도 서로를 대하는 마음까지 접지는 못하였다.
세간에서는 우리가 정말 왜 그날 《우결》을 끝맺었는지를 두고 온갖 추측이 떠돌았다. 어느 자리에서 내가 《우리는 해볼만큼 다 해봤고 그래서 미련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 워딩이 정확히 맞는지는 나 스스로도 자신이 없다. 다만 열심히 하고나서 결과물이 어느 정도 나오면 그에 대한 미련이 사라진다는 그 마음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나름의 답을 지어내여 이야기하는것을 보면서도, 나는 굳이 그 추측들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각설하고 다시 우주32(2025)년 오월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옛일을 이렇게 한바탕 되짚고 나니, 새 짝의 소동이 왜 그렇게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는지 조금은 알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지나온 봄을 남의 봄에서 다시 발견하는 법이다. 백곰파와 고수달의 《우결》은 애호가들에게 그런 봄의 재현이였던 셈이다.
소동은 유월에 접어들어서도 사그라들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백곰파와 고수달 두 사람의 방송에는 우리 옛 대사를 인용하는 시청자들이 날마다 늘어갔고, 두 사람도 그 반응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는 눈치였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들으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남의 련애사를 두고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나 자신이 새삼 우습기도 하였다.
소동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유월 어느날, 나는 블루동지에게서 오래간만에 련락을 받았다. 《백곰파랑 고수달이 저희 좀 놀리는 방송에 나와달라는데, 같이 나가실래요?》하는 말이 대화창 너머로 날아왔다. 나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왕 이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판에 굳이 피할 리유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넷이서 《배그》판우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내가 방송을 하는 방은 회사 사무실과는 따로 떨어진 작은 방으로, 벽 한쪽에 화면 세대가 나란히 걸려있고 그 아래로 머리수화기와 마이크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오랫동안 《배그》판을 켤 일이 없어 책상우에는 얇게 먼지가 앉아있었고, 나는 방송을 앞두고 그 먼지부터 닦아내는 것으로 준비를 시작하였다. 창밖으로는 어느새 유월의 짙은 초록이 우거져있었다. 오월의 궂은비는 그새 그치고 없었다.
그날은 유월 스무나흗날이였다. 늦은 오후부터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마이크를 손보고 카메라 각도를 맞추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들떠있었다. 오랜만에 《배그》를 켜는 것도 오랜만이였고, 더구나 블루동지와 나란히 한 스쿼드에 앉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였다. 화면 저편에서 백곰파와 고수달이 차례로 접속하는 신호가 뜨는 것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네 사람이 한 팀으로 묶이자 대화창은 곧바로 들끓기 시작하였다. 《원로 《우결》 커플 등판》이라는 후원 문구가 연달아 올라왔고, 시청자들은 이 조합을 두고 마치 큰 행사라도 벌어진듯 떠들썩하게 반응하였다. 백곰파는 특유의 넉살로 인사를 건넸고, 고수달은 다소 긴장한 기색으로 우리 둘에게 안부를 물었다. 블루동지는 여느때처럼 느긋한 목소리로 응답하며 분위기를 눅여주었다.
지금 와서 짐짓 력사적으로 말해보자면, 그날의 자리는 이를테면 원로 두 사람이 신진 두 사람을 불러앉혀놓고 훈시를 내리는 자리와 다름없었다. 물론 이것은 우스개소리에 지나지 않으나, 그 자리의 공기만큼은 제법 진지하였다. 백곰파와 고수달은 저희 딴에는 신입생처럼 다소곳한 태도로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하였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여 자꾸 웃음이 새여나왔다.
오락이 한창 무르익어갈무렵, 백곰파가 넌지시 우리 《우결》에 대해 물어왔다. 나는 별다른 수식 없이 있는 그대로 대답하였다. 《우리는 두해동안 진행하였고, 어머니 소개까지 다 마쳤고, 깔끔하게 끝냈어.》 그 한마디에 대화창이 온통 감탄사로 뒤덮이는 것을 보며 나는 새삼 그 두해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였음을 실감하였다.
블루동지도 가만있지 않고 한마디를 보태였다. 《애매하게 하지 말고, 할 거면 적극적으로 해버려.》 그러고는 짐짓 나무라는 투로 덧붙였다. 《자꾸 빨아먹기만 하고, 여지만 열어두고 뭐하는것이야.》 그 말투가 어찌나 단호하던지, 오락 화면 속 총소리보다 그 잔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듯하였다.
고수달은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받아적는 시늉을 하며 《메모하는 중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그 진지한 태도에 스쿼드 전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백곰파는 짐짓 너스레를 떨며 《저희는 오십년짜리 계획을 세우겠습니다》하고 되받아쳤다. 그 대꾸에 블루동지는 어이없다는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락이 다시 시작되자 블루동지는 례의 그 무자비한 솜씨를 발휘하였다. 적을 하나 둘 쓰러뜨릴 때마다 특유의 말투로 《아하하하핳 너무 많이 죽여버렸네》하고 웃어대는 통에 대화창은 또 한번 들썩였다. 나는 그 옆에서 오랜만에 조준선을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서투름조차 즐거웠다.
자리를 잡고 물자를 그러모으는 동안 백곰파는 곽밥 이야기를 꺼내며 게임 속 남새며 닭알 아이템을 두고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고수달은 그 농담에 어이없다는듯 웃으면서도 착실하게 배낭을 채워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떠올렸다. 게임 속 사소한 장난 하나에도 사람 사는 정이 묻어나는 법이다.
백곰파와 고수달은 우리 둘의 손발이 맞아들어가는 모습을 신기하다는듯 지켜보았다. 몇해를 떨어져있었어도 한 스쿼드에 앉으면 절로 맞춰지는 그 호흡을 두고 고수달은 《이게 바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인가봐요》라며 감탄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조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도 남는것은 결국 이런 사소한 손발맞음이였다.
그날의 방송은 후날 애호가들 사이에서 《신구 세대가 한자리에 모인 력사적 회동》이라는 우스운 별명으로 불리게 되였다. 물론 나라의 흥망을 가르는 회담에 비길바는 못되나, 적어도 그 밤의 대화창만큼은 온 나라가 들썩이는듯한 기세였다. 후원 문구들이 쉴새없이 올라오고, 실시간 시청자 수도 평소보다 훌쩍 뛰였다. 나는 그 열기를 보며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고도 정직한것이라 생각하였다.
방송이 끝나갈무렵, 나는 문득 이 모든 소동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보았다. 백곰파와 고수달의 《우결》이 새삼 화제가 된 것도, 우리 옛 《우결》이 다시 소환된 것도, 따지고보면 사람들이 여전히 그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워하기때문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그리움이 결코 나쁜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따뜻한 구석이라 여기게 되였다.
방송을 마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밤, 나는 혼자 방에 앉아 오랜만에 《배그》를 다시 켜보았다. 로비 화면에 뜨는 낯익은 음악을 들으며 나는 묘한 감회에 젖었다. 마지막으로 이 화면을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였다. 다시 접속단추를 누르는 손끝이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화면이 켜지는 동안 나는 예전 어느 날 탄약을 주고받으며 서로 프로포즈라 불렀던 그 우스운 장난이 언뜻 떠올랐다. 그 장난의 자세한 경위는 지금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날 화면속에서 서로 마주보며 웃던 기억만은 뚜렷하였다. 사람의 기억이란 사건의 앞뒤보다 그 순간의 웃음소리를 더 오래 붙들어두는 모양이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켠 화면에서 예전 전적을 뒤져보니 낯선 수자들이 줄지어 나왔다. 언제 이렇게 많은 판을 치렀는지 나조차 놀라울만큼 방대한 기록이였다. 그 수자들 사이사이에 블루동지와 함께한 판도 적지 않게 섞여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 목록을 내리읽으며 지나간 시간의 무게를 새삼 가늠해보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배그》를 켜는 날이 잦아졌다. 예전만큼 잘하지는 못하였으나, 화면속에서 락하산을 타고 내려서는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가슴이 뛰였다. 성원들과 어쩌다 합방을 하면 예전 실력이 녹슬었다며 놀림을 받기도 하였으나, 나는 그런 놀림마저 반가웠다. 잊고 지내던 즐거움 하나를 되찾은 기분이였다.
한번은 유니동지와 리제동지가 합방 도중 내 조준 실력을 놓고 한참을 놀려댄 일도 있었다. 《사장님 감 다 죽었네요》하는 짓궂은 말에 나는 애써 태연한척 응수하였으나, 속으로는 그 놀림조차 반가웠다. 회사의 대표로서 늘 무게를 잡던 자리에서 벗어나 그렇게 편하게 놀림을 받는 시간이 도리여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가끔 이렇게 체면을 내려놓아야 숨통이 트이는 법이다.
내 개인 애호가들인 강도단쪽에서도 이 소식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배그》를 켠 나를 두고 저희끼리 《드디여 사장님이 돌아왔다》며 떠들썩하게 반기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들었다. 나는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새삼 부끄러웠다. 이렇게 사소한 일 하나에도 마음을 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만 여기고 지냈던 것이다.
지금 이렇게 그날의 일을 글로 옮기며 생각해보면, 백곰파와 고수달의 《우결》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배그》를 다시 손에 잡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새 세대의 이야기가 옛 세대의 기억을 흔들어깨우고, 그 기억이 다시 오늘의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은 참으로 신통한 순환이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소동이 벌어지기 전까지 《배그》라는 오락을 그저 지나간 한 시절의 물건으로만 여기고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한번 마음을 붙였던 것은 좀처럼 완전히 떠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잠깐 밀쳐두었을뿐, 계기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준비가 되여있었던 것이다. 백곰파와 고수달이 그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니, 나로서는 두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없지 않다.
누군가는 이런 일을 두고 그저 한때의 우스운 이야기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화제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멀리까지, 또 얼마나 깊이까지 데려다놓는지를 그해 유월에 직접 겪었다. 백곰파와 고수달에게는 이제 막 시작하는 봄이였고, 나와 블루동지에게는 이미 지나간 봄을 다시 한번 어루만지는 시간이였다. 그 두 봄이 나란히 놓인 그해 유월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