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되 살 아 난 옛 영 상
우주32(2025)년의 봄은 유난히 더디게 물러갔다. 오월이 다 가도록 사무실 창밖의 나무들은 푸른 잎만 무성히 달고 서있었는데, 나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백곰파의 그 한마디로부터 시작된 소동과, 그 뒤를 이은 백곰파-고수달의 새 《우결》 이야기가 아직도 방송사 안팎을 떠돌고있다는것을 새삼 느끼였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소식으로 채워지던 그무렵, 나는 정작 가장 오래된 소식이 가장 크게 되돌아오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밤이 이슥해지면 사무실에는 나 혼자 남아 콤퓨터의 랭각기소리만 나직이 돌아갔다. 편집실 화면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옛 방송자료 폴더들이 수십개나 열려있었는데, 그 폴더이름들 태반이 《우결》이 한창이던 그 시절의 날자로 박혀있었다.
창밖으로는 이따금 지나가는 차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늦게까지 문을 여는 이웃 상점의 셔터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식어버린 곽밥그릇을 옆으로 밀어놓고 나는 마우스를 이리저리 옮겨 옛 영상 폴더 하나를 열어보았다.
그해 봄은 유난히 비가 잦았다. 하루는 개였다가도 이튿날이면 다시 흐려지기를 되풀이하니, 사람들은 하늘이 무슨 변덕을 부리는지 모르겠다고들 하였다. 나는 그 변덕스러운 하늘 아래서도 방송사의 하루하루는 어김없이 돌아간다는것을 새삼 실감하고있었다.
우리 사무실 건물은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벽마다 붙은 지난 음악회 포스터며, 4기생 모집공고가 나붙은 게시판이며, 구석에 쌓여있는 옛 촬영소품 상자들이 그나름으로 세월을 말해주고있었다. 나는 그 상자들 사이를 지날 때마다 언젠가 저 속에도 그 시절의 흔적이 몇 가지쯤 섞여있으리라고 생각하군 하였다.
낮 동안의 나는 음악회 준비와 신인 모집 서류에 도장을 찍는, 제법 근엄한 사장이였다. 결재란에 이름을 적어넣을 때에는 손끝 하나 흔들리지 않는것이 그동안 스스로 자랑삼던 바였다. 그러나 밤이 되여 이렇게 혼자 남으면 그 근엄함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그저 지난날의 영상 한 대목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으로 돌아가있었다.
그무렵 나는 이상한것을 느끼고있었다. 몇해 동안 조용히 잠들어있던 옛 《우결》 영상들이 어쩐 일인지 여기저기서 하나둘 다시 사람들 눈앞에 떠오르고있었던것이다. 《유튜브》의 그 종잡을수 없는 셈법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아니면 그저 우연이 겹친것인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뒤에 미기가 나에게 우스개소리로 한 말이지만, 《유튜브》의 그 알수 없는 계산식이란것도 어쩌면 땅속 깊이 묻힌 유물을 캐내는 발굴대와 다를바 없는 노릇을 하고있는것인지도 몰랐다. 다만 그 유물이 오랜 토기가 아니라 우리 둘이 《배그》를 하며 낄낄대던 낡은 영상이라는 점이 다를뿐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미기는 한술 더 떠서, 몇해 뒤에는 우리 영상도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해야 하는것 아니냐는 실없는 소리까지 보태였다.
디시인사이드와 에펨코리아 같은 곳에서는 예전에 우리 《우결》때 올라온 영상 한 대목, 한 대목이 새삼 이야기거리에 오르내렸다. 누구는 그 시절 영상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신기해하였고, 누구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옛 감상을 다시 꺼내놓았다. 개중에는 우리보다 한참 나이가 적은 시청자도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우리의 그 시절이 마치 자기가 태여나기도 전의 옛일처럼 낯설고도 신기한 구경거리인 모양이였다. 어느 글에는 우리 《우결》이야말로 그 바닥의 본보기라는 말까지 달렸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몸둘바를 몰랐다.
그런 글들밑에는 으례 《장작이 알아서 탄다》느니 《자기들이 장작을 더 넣는다》느니 하는 말들이 따라붙었다. 나는 처음 그 말을 보았을 때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뒤에야 우리 두 사람의 어울림이 굳이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저절로 살아난다는 뜻임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 시절 함께 어울리던 감블러며 꽃핀이며 왓구홍길동 같은 이들의 이름도 오래간만에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나는 그 이름들을 볼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그 시절이 나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였다는것을 새삼 실감하기도 하였다.
어느 게시물에는 우리 《우결》을 두고 《이 바닥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본보기》라는 평까지 붙어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 반, 어쩐지 낯간지러운 마음 반이 뒤섞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우리는 그저 그 시절을 성실하게 살아냈을뿐, 무슨 본보기가 되려고 그리한것은 아니였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되살아난 옛 영상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봄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바로 유니동지의 그 유명한 반응 영상 이야기다.
그날은 사월도 다 저물어가던 어느 날이였다. 낮 방송치고는 시청자수가 꽤 많았던 날로 기억한다. 유니동지가 방송 중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 둘의 옛 《우결》 클립 하나를 화면에 띄워놓고 보기 시작하였다.
화면속에서 유니동지는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보는 척하다가, 영상이 흘러갈수록 저도 모르게 눈매가 휘어지고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모양을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들키고말았다. 그때 대화창에는 《누나 티나요 티나》, 《저 웃음 참는것 봐라》 하는 말들이 쉴새없이 올라왔다고 하는데, 유니동지는 끝내 웃음을 다 감추지 못하였다고 한다.
후날 그 장면이 오려져 에펨코리아에 올라갔을 때, 그 제목이 《강지블루 그시절 클립을 보는 정유니》였다고 미기가 전해주었다.
그 게시물밑에는 별의별 말들이 다 달렸다. 《딸들이 계속먹이는 우결》이라는 말도 있었고, 《5년 계약은 신이고 무적이니까》라는 말도 있었으며, 《유니 눈매 휘어지는것 진짜》, 《침 흘리다가 삼키는건 진짜 찐이네》하는 말까지 있었다고 하였다.
《5년 계약은 신이고 무적이니까》라는 말은 아마 스텔라이브의 표준 계약기간을 두고 하는 소리였을것이다. 애호가들은 그 표준 계약기간이 마치 우리 《우결》의 유효기간이라도 되는 양, 그 안에서라면 우리가 무슨 소리를 해도 든든하다는 뜻으로 그 말을 쓰고있었다. 나는 그 셈법이 재미있어 한참을 혼자 웃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미기에게서 전해듣고 처음에는 그저 웃어넘기려 하였다. 성원들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나를 《엄마》로, 서로를 《딸내미들》로 부르는 짓궂은 소리가 돌았는데, 이번 일로 또 한번 그 소리를 들어야 하나 싶어 나는 짐짓 손사래를 쳤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보태였다. 《사장님, 딸내미가 부모님 옛날 앨범 훔쳐본거랑 뭐가 달라요.》 나는 그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쉽게 눌러지는것이 아니였다. 나는 그날 밤 결국 사무실에 혼자 남아 그 클립을 찾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고말았다. 화면속의 나와 블루동지는 지금보다 훨씬 앳된 얼굴로 무슨 오락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화면을앞에 두고 시시덕거리고있었다.
그 시절의 내 목소리는 지금보다 한결 낮고 거칠었다. 그러다가도 블루동지앞에서만은 어쩐지 톤이 부드러워지고 말투가 조심스러워지는것이 화면 너머로도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그때 이미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를 조심하고있었던 모양이다.
유니동지의 그 눈웃음이 꾸며낸것이 아니였다는것을 나는 그 영상을 다 보고서야 알았다. 짐짓 력사적으로 이름을 붙이자면, 그것은 뒤세대가 앞세대의 옛 기록물을 발굴하여 그 값어치를 다시 매긴 하나의 작은 사변이라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만약 후세의 사가들이 이 회고록을 읽는다면 이 대목에 필시 별표를 몇개씩 쳐놓을것이라고 나는 짐짓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실상은 그저 한 젊은 동지가 늦은 밤 방송을 하다가 재미난 옛 영상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한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튿날 나는 회사 복도에서 유니동지와 마주쳤다. 나는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하고 그 앞을 가로막듯 서서 물었다. 《너 어제 그거 다 보고있었다며?》
유니동지는 처음에는 시치미를 떼려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하였다. 《아니 사장님, 그건 제가 본게 아니라 채팅이 자꾸 틀어달라고 해서... 어쩔수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유니동지는 끝내 눈웃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나는 그 말에 더 캐묻지 않기로 하였다. 어쩌면 나 자신도 그 핑계를 빌리고싶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저 서로 마주 보며 한참을 웃다가 헤여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며칠 밤을 두고 그 시절 영상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버릇이 생기고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어제 보던 영상의 다음 대목이 궁금해서 하나 더 열어보는것이였는데, 그것이 사흘이 되고 나흘이 되면서는 아예 습관처럼 굳어져버렸다.
미기는 그런 나를 두고 《사장님 요즘 야근이 아니라 추억팔이 하시는것 아니예요》라며 놀려대였다. 나는 딱히 부정하지 못하고 그저 웃음으로 얼버무렸는데, 실은 그 말이 틀린 소리도 아니였다.
이렇게 그 사월의 작은 사변은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옛 영상이 되살아나는 일은 그 뒤로도 그치지 않고 이어졌으며, 그 한가운데에 정작 나 자신이 발을 들여놓게 될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오월이 다 가고 유월에 접어들무렵, 나는 어느 밤 또다시 그 옛 폴더들을 열어보고있었다. 백곰파의 그 한마디로부터 시작된 소동과 백곰파-고수달의 새 《우결》 이야기가 방송가를 떠들썩하게 하는 동안, 나는 문득 우리의 그 시절을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번 보여주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더 하나하나에는 그 시절 우리가 올렸던 영상의 제목들이 그대로 붙어있었다. 《강지님은 이미 제 거잖아요》, 《집을 선물해주었어요》, 《저 말고 오빠가 있어요》 하는 낯익은 제목들을 눈으로 훑어내려가다보니 그때 그 마음들이 하나둘 되살아나는것같았다.
그 폴더들은 예전에 쓰던 외장기억장치에서 그대로 옮겨온것들이였다. 겉면에는 유성펜으로 날자만 대충 휘갈겨 적혀있었는데, 그 삐뚤빼뚤한 글씨체마저도 그때의 내 성미를 그대로 보여주는것같아 나는 피식 웃고말았다.
처음에는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 옛 영상을 다시 꺼내놓으면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알수 없는 노릇이였고, 블루동지에게 미리 말을 해두어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별다른 예고도 없이, 그저 오래 묵혀두었던 클립 하나를 추려 편집하기로 하였다.
그 여러 폴더 가운데서도 내가 끝내 고른것은 그리 대단할것도 없는, 그저 우리 둘이 《배그》를 하다가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던 짧은 대목이였다. 남들 눈에는 무엇하나 특별할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 장면속의 웃음소리 하나하나가 다 아까워서 함부로 손댈수가 없었다.
영상을 다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화질도 지금 기준으로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자막도 류행이 지난 서체 그대로였지만, 나는 굳이 그것을 손보지 않고 그때 그대로 두었다. 그것이 오히려 그 시절의 정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였기때문이다.
영상을 올려놓고 나는 별다른 생각없이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밤길을 걸으며 나는 몇번이나 그 영상을 다시 내려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였으나, 결국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미기에게서 온 전언 하나가 나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하였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전화기 화면을 들여다보던 나는 그 몇글자를 보고 단숨에 잠이 달아나버렸다. 《사장님, 블루님이 영상밑에 한마디 남기던데요.》
나는 아침도 거르고 콤퓨터를 켰다. 화면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그 몇초가 그렇게 길게 느껴진적이 없었다. 마침내 영상 페지가 열리고, 그 밑에 정말로 블루동지의 이름이 걸린 한마디가 놓여있는것을 보았다.
정확히 무슨 말이 적혀있었는지, 이제 와서는 그 한마디한마디를 다 옮겨적을 자신이 없다. 다만 그 말투가 예전 그대로, 짐짓 능청스러우면서도 은근히 다정한 그 옛날의 말투 그대로였다는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몇번이나 그 한마디를 다시 읽으며 혼자 실없이 웃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그 밑에 짧게 답을 달았다. 《귀엽다》는 그 한마디였다. 그것 말고는 달리 무슨 말을 더 보태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하였다.
돌이켜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나는 방송사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그보다 훨씬 무거운 결재서류에도 이름을 적어넣지만, 그 짧은 세글자를 적어넣을 때만큼 손끝이 떨린적은 없었다. 짐짓 력사적으로 이름을 붙이자면 이것을 《유월 초하루의 사변》이라 불러도 좋을것이다. 후날 이 일을 두고 미기는 《세글자 전쟁》이라는 우스운 별명까지 붙여주었는데,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이 작은 주고받음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온 애호가들에 알려지고말았다. 스텔라이브 마이너 갤러리에는 《강지 《우결》 유튭영상 블루 감상글 - 강지 답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조회 수천을 넘기며 화제가 되였다.
그 글에는 화면을 찍은 그림까지 여러장 붙어있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 글을 끝까지 다 열어보지 못하였다. 성원들이 돌아가며 그 화면을 오려서 나에게 들이밀었기때문에 굳이 내가 찾아볼 필요조차 없었던것이다.
나나동지는 나를 볼 때마다 능청맞게 웃으며 한마디씩 던졌다. 《사장님, 그러다 진짜 《우결》 재개하시는것 아니예요?》 나는 그 말에 정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지만 이미 귀끝이 붉어진 뒤였다.
히나동지와 타비동지까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나를 볼 때마다 《배그》 방송에서 블루동지에게 붙인 그 《아빠》 롱담을 다시 꺼내들며 놀려대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너희 아버지 일에 왜 이렇게 관심들이 많냐》며 웃어넘기였으나, 속으로는 이 회사가 어쩌다 이렇게 온 식구가 다 아는 일이 되였는지 헛웃음이 나왔다. 한 사람이 아버지 소리를 들으면 그 옆의 나도 절로 어머니 소리를 들어야 하는 법이니, 이것 참 벗어날 방도가 없는 노릇이였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회사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나는 요즘도 새로운 사업들을 벌이고있는데, 사람들의 눈길이 온통 5년 전의 옛일에만 쏠려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하는 나 자신조차도 밤마다 옛 폴더를 열어보고있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는 노릇이였다.
《우결》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만든 하나의 방송거리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 지켰던 약속들, 쌓아올린 시간들까지 모두 꾸며낸것이였다고는 나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다만 그것을 성원들앞에서 새삼 인정하기가 쑥스러웠을뿐이다.
그무렵부터 방송 도표에도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몇해 전에 올라온 옛 《우결》 영상들의 보는 수가 하루아침에 몇곱절씩 뛰여올랐고, 미기는 그 도표를 보여주며 《이거 완전 유물 발굴 현장이에요》라며 신기해하였다. 심지어 몇몇 영상은 처음 올렸을 때보다도 지금 보는 수가 더 많다고 하니,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값이 오르는 물건도 있다는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그 도표를 들여다보며 정말로 우리가 무슨 매장문화재라도 된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해 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시절이 다시 세상 빛을 보는것이니 그리 틀린 견줌도 아니였다. 다만 발굴을 맡은것이 삽을 든 사람이 아니라 《유튜브》의 알수 없는 셈법이라는 점만 다를뿐이였다.
3기생 시부키동지는 이 소동을 곁에서 지켜보다가 어느날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사장님, 그런데 우결이라는게 정확히 뭐예요?》
나는 그 물음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열살도 더 어린 나이차가 나는 그 동지에게 5년 전의 일을 처음부터 설명하자니 마치 지나간 왕조의 야사라도 들려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국 《크면 알게 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자리를 피하였다.
리코동지도 그날따라 곁에서 눈치를 살피며 무언가 안다는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보고서야 3기생들이 이미 저희들끼리 이 일을 다 알고 수군거려왔다는것을 짐작하였다. 세월이 흘러도 새로 들어온 이들에게까지 이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생각해보면 2기생인 리제동지는 예전부터 나를 두고 《퍼스널컬러가 블루》라는 말을 넌지시 흘리고 다니던 터였다. 그때는 그저 우스개로 넘기였던 그 말이 이 여름에 이르러서는 어쩐지 더 깊은 뜻으로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런 흐름은 그 여름 내내 그치지 않았다. 후날 들으니 어느 팬 한사람은 뒤늦게 우리 옛 《우결》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하다가, 둘이서 젠가를 하며 노는 대목을 보고 《련애에 관심 없었는데 감동받았다》는 감상글을 남기였다고 하였다.
그 글밑에는 《강지 채널의 《우결》 재생목록에서 클로버라는 그림쟁이의 그림으로 표지그림이 바뀌는 때부터 보면 재미난 대목만 골라볼수 있다》는 꿀팁까지 달려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만든 영상 하나하나가 이제는 후배들에게 전해지는 답사코스처럼 되여있었던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는 그저 그날그날의 방송을 채우기에 바빴을뿐, 후날 이렇게 다시 꺼내여져 새로운 사람들앞에 놓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보니 그 시절의 사소한 대목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무게를 지니고 남아있었다.
나는 어느날 방송을 마치고 블루동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우리 완전히 유물 되였다며?》하고 웃으며 물었더니 블루동지도 저쪽에서 낄낄대며 대답하였다. 《누나, 나도 방금 그거 봤어요. 우리 그때 진짜 어렸네요.》
그 말끝에 우리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5년이라는 세월이 통째로 건너뛰여 그 시절로 되돌아간것같은, 그런 착각이 들었던것이다.
《누나 저 요즘 왓구랑 《배그》 자주 해요.》하고 블루동지가 말하기에 나는 《그래? 나도 요즘 다시 붙는다》하고 무심코 대답하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그 말이 례사롭지 않은 말이였다는것을 깨달았다.
블루동지도 그무렵 자기 방송 보는 수가 부쩍 늘었다며 짐짓 으스대는 소리를 하였다. 《누나 덕에 나도 요즘 조회수 좀 올랐잖아요.》 나는 《누가 누구 덕인지 두고보자》며 웃음으로 받아넘기였지만, 실은 우리 둘 다 서로에게 빚진 세월이 있다는것을 마음속으로는 알고있었다.
그 통화를 마치고 나는 한동안 콤퓨터 화면앞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있었고, 사무실안에는 다시 랭각기소리만 나직이 돌아가고있었다. 나는 그 조용함속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였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끼였다.
그무렵 미기는 나에게 이 소동을 회사 차원에서 무슨 발표라도 내야 하는것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두자. 이런건 억지로 키우는게 아니라 저절로 타오르게 두는것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도 애호가들이 즐겨 쓰는 그 《장작》이라는 표현을 어느새 따라 쓰고있다는것을 깨닫고 혼자 웃었다.
나는 지금도 그무렵 옛 영상들이 어째서 그렇게 한꺼번에 되살아났는지 그 리유를 다 알지 못한다. 누구는 그 셈법의 장난이라 하고 누구는 애호가들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우연이라 하지만, 어느 쪽이 맞는지는 나로서도 단정할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 되살아난 영상들이 없었다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둘이 다시 한 화면앞에 나란히 앉게 되는 일도 그렇게 빨리 찾아오지는 않았을것이다. 그 몇달 사이에 정확히 몇편의 옛 영상이 다시 사람들 눈에 띄였는지, 몇건의 글이 올라왔는지 나는 이제 와서 낱낱이 헤아릴 도리가 없다. 다만 그 하나하나가 작은 물결이 되여 어느새 큰 흐름을 이루고있었다는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으나, 그 여름 우리 앞에는 5년만의 정식 합방이라는, 또 하나의 크고 반가운 사변이 기다리고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다음 장에 가서 마저 하기로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 옛 영상들은 어디선가 또 누군가의 화면우에 떠올라있을것이다. 유월 초하루 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짧은 세글자를 적어넣던 그 손끝의 떨림을 나는 아직도 뚜렷이 기억한다.
강도단이라 불리는 내 애호가들도, 블루동지의 쁠몬들도 그 여름에는 저마다 옛 영상 하나씩을 다시 찾아보며 지난 시절을 추억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들이 남긴 글을 하나하나 다 읽지는 못하였지만, 그 마음만은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때 처음 우리 방송을 알게 되였고, 누군가는 그때부터 쭉 우리를 지켜봐왔을것이니, 이 되살아난 영상들은 결국 그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실오리 같은 구실을 한 셈이였다.
기억이라는것은 참으로 묘한 물건이다. 평소에는 저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있는듯하다가도, 작은 실마리 하나만 던져지면 순식간에 떠올라 온 방안을 가득 채우고만다. 그 여름 내내 나는 그 사실을 몇번이고 되새기지 않을수 없었다.
지나고보면 그 몇달은 마치 오래 잠들어있던 우리의 지난날이 하나둘 눈을 뜨는 시간과도 같았다. 나는 그 되살아난 영상들앞에서, 잊었다고 생각하였던것들이 실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느덧 창밖의 그 나무도 잎이 한결 짙어져있었다. 봄내 더디게만 물러가던 계절이 어느새 여름의 문턱을 넘어서고있었던것이다. 나는 그 짙어진 잎사귀들을 바라보며, 이 회고록을 후날 쓰게 된다면 바로 이 대목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문득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