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깔 끔 한 마 무 리
유월 스무나흗날 밤, 네사람이 함께한 《배틀그라운드》 합방을 끝내고 대화창이 마지막 인사말들로 가득 찬 채 멎어버린 뒤에도 나는 한참을 그 화면앞에 앉아있었다. 화면의 불빛만이 어두운 방을 비추고 콤퓨터의 랭각기소리가 나직이 돌아가고있었다. 마이크 스탠드에 매달린 팝필터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가늘게 흔들리였다. 창밖에는 초여름밤이 깊어 낮동안 시끄럽던 매미소리도 어느새 그쳐있었다.
책상 한쪽에 놓아둔 차잔은 벌써 식어 김도 오르지 않았다. 벽시계 초침 도는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리던 그 시각에 나는 방금 내 입에서 나온 한마디를 몇번이고 되뇌이고있었다. 《두해 동안 진행하였고 어머니 소개까지 마쳤으며 깔끔하게 끝냈다.》 백곰파와 고수달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그 말이 방송을 끝내고나니 자꾸 목에 걸리였다.
오래 묵혀둔 물건을 무심코 남에게 건네주고나서야 그 무게를 새삼 느끼는것과 같은 심정이였다. 이 회고록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로 나는 그 한마디를 몇번이고 다시 꺼내들었다. 한마디속에 두해가 다 들어있다고 말하기는 쉬우나 실은 그 한마디가 두해를 가리고있는것이기도 하였다. 압축된 말은 편리하지만 그 편리함이 정작 무엇을 눌러버렸는지는 압축한 사람 자신도 나중에야 깨닫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그날 방송에서는 차마 다 하지 못한 나머지 말들을 마저 적어두려 한다. 그날 방송은 백곰파와 고수달이라는 신인 《우결》커플과 함께한 네사람 자리였는데 방송이 끝나갈무렵 자연스레 우리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새 짝이 서로 눈치만 보며 어정쩡하게 구는 모습을 화면 너머로 보고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옛 버릇이 도지였다. 후배앞에서 선배노릇을 하고싶은 마음이야 어느 방송판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뒤 잴 것도 없이 우리의 두해를 한마디로 정리해서 던져버린것이다. 백곰파와 고수달은 그무렵 새로 《우결》을 시작한 신인 짝이니, 우리로서는 말하자면 후배 나라의 사절을 맞이한 셈이였다. 신인이 선배앞에서 조심스러운 것은 어느 판이나 마찬가지여서, 둘은 대답 한마디에도 서로 눈치를 살피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는 자꾸 옛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 한마디를 제대로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해 어느 날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우주25(2018)년, 이 이야기의 첫 페지는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았다. 력사를 쓰는 사람들은 흔히 큰 일의 시작에 무슨 예감이나 조짐이 있었던 것처럼 적기를 좋아하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그것은 그저 방송기획 하나로 시작된 일이였다.
그때 우리는 서로 《강지 님》, 《블루님》하고 부르며 깍듯이 높임말을 썼다. 지금 다시 그 시절 영상제목들을 들여다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강지 님은 이미 제 거잖아요~?》라는 제목이 달린 영상도 있었고 《강지님~ 어제 제 꿈 꾸었어요?》하는 제목도 있었다. 그때 시청자들은 이 높임말투 자체를 두고 《ㅁㅇㅁㅇ》니 무어니 하며 놀려대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벌써 《우결》의 조짐이였던 셈이다.
그 시절 함께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추던 왓구홍길동도 빼놓을수 없다. 홍길동은 나와 친남매 같은 사이였는데 스쿼드에 블루동지가 끼여드는 순간 시청자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나는 여러번 보았다. 시청자들 스스로 《우결을 보는 과몰입 트수 모드》로 단숨에 전환된다고들 하였다. 그무렵 영상 제목에는 《배그 운영자도 축하하는 과몰입 《우결》 커플》같은것도 있었으니 남들이 먼저 알아본 조짐이 우리보다 빨랐던 셈이다.
그무렵 나 자신도 모르게 달라진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목소리였다. 평소 방송에서는 걸걸하게 쌍욕도 서슴지 않던 내가 블루동지앞에서만은 저절로 어조를 낮추고 말을 가려하게 되였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하였던지 벗 악녀는 자기앞에서도 그렇게 좀 말해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한 적도 있다. 그 부탁을 듣고 나는 그저 웃어넘기였지만 사람이 누구앞에서 저도 모르게 달라진다는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방송을 함께 할수록 화면 너머로 오가는 말수가 조금씩 늘었다. 처음에는 게임안에서 서로를 엄호해주는 말 몇마디였던것이 어느새 방송이 끝난 뒤에도 통화로 이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그것을 그때는 그저 방송의 재미가 붙은것이라고만 여기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것이 높임말이 반말로 건너가는 다리였던 셈이다.
말이 높임말에서 반말로 완전히 건너가는 데는 다시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 정확한 날짜를 놓고서는 지금도 말이 갈린다. 정확히 사백여든날째였는지 오백날째였는지는 지금도 갈린다. 블루동지가 만든 영상 제목에는 《500일만에 누나라고 불러보기》라고 적혀있으나 후날 조사해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날짜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모양이니 나로서도 어느 쪽이 맞는지 자신있게 말할 처지가 못된다.
다만 분명한것은 그날부터 블루동지가 나를 《누나》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나는 블루동지를 《바이비》라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호칭이 처음 나온 방송을 나는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블루동지는 그 말을 하고서도 제가 한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듯 한참을 머뭇거렸다. 대화창은 그 장면 하나로 폭발할듯 넘쳐흘렀다.
그날 이후로 우리 둘 사이에는 웃지못할 호칭 소동이 끊이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방송중에 얼결에 《오빠》라는 말을 흘려버린 적이 있는데 그 영상 제목이 《블루 오빠Yee..!!》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온다. 그 제목을 다시 보고 나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서로 부르는 말 하나 바뀌는데 이렇게까지 소란스러울 일인가 싶다가도, 그때는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큰 사변처럼 여겨졌다.
그 시절 영상 제목들을 다시 훑어보면 《밥은 누나가 사는것라고요!》도 있고 《귀엽다고 말해!》도 있다.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제목들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우리나름의 진심이였다.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화면에 남겨두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는 이 회고록을 쓰며 그 낯간지러움조차 귀하게 여기기로 하였다.
누구는 이런 사소한 호칭변화를 두고 무슨 큰일이나 난것처럼 떠들썩하게 말하지만 실은 그저 두 사람이 조금 가까워졌다는 표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방송판의 력사라는 것이 원래 그런 사소한 일들을 모아 큰 사변으로 부풀리는 재주가 있는 법이다. 후날 사람들이 이 시기를 놓고 무슨 왕조의 흥망처럼 연대를 따지고 앉아있는것을 보면 나는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부풀려진 력사속에서 우리는 몇해를 함께 방송하며 지냈다.
그 사이 호칭은 우리 둘만의 것이 아니라 주변에까지 번지였다. 내 지인 강수는 저 자신이 《누나의 남편》인 블루동지의 처남뻘이 된다며 블루동지를 《매형》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시작된 그 호칭이 나중에는 강수의 입에 아예 눌러앉아버렸다. 블루동지도 싫지 않은듯 그 부름에 꼬박꼬박 대답하였다.
감블러라는 벗도 이 시절 이야기에서 빼놓을수 없다. 한동안 우리는 서로를 《감자님》, 《낑깡님》이라 부르며 높임말을 썼는데 지금은 말을 트고 그저 《붕어야》, 《누나》하고 부르는 사이가 되였다. 세월이 흐르면 말투도 이렇게 저절로 헐거워지는 모양이다. 이런 호칭 하나하나가 실은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의 눈금이였다.
또 어느 시기에는 김박사라는 이가 나서서 내 전애인 역할을 자처하고 삼각관계라는 것을 만들어주었는데 그 덕에 방송은 한결 더 볼만해졌다. 《울지마 김박사...》라는 제목의 영상이 그때 나온것이다. 김박사는 《우결》 초반부터 우리와 함께 합방을 하며 이 판을 함께 키운 사람이니 이 회고록에도 마땅히 이름을 남겨야 할 사람이다. 그런 여러 사람들이 곁에서 함께 웃고 함께 판을 벌려준 덕에 이 내용물는 혼자서는 결코 다다르지 못하였을 재미를 얻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변은 역시 어머니를 모신 자리였다. 어느 날 방송에서 나는 실제 어머니를 모셔다가 블루동지와 함께 《배그》를 하게 하였다. 어머니는 오락에는 서툴렀지만 자리는 조금도 서투르지 않았다.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화들짝 놀라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합방이 끝난 뒤 어머니는 대뜸 《강지 사위감으로는 블루가 100점》이라고 말씀하였다. 그 말에 블루동지는 어쩔 줄 몰라하며 웃음도 아니고 울음도 아닌 얼굴을 하였다. 카메라에 잡힌 그 표정 하나로 그날 방송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였다. 지금 이 대목을 적으며 나는 그때 블루동지의 그 얼굴을 다시 떠올리고 웃는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아예 상견례라는 이름의 내용물까지 만들었다. 두 남자와 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밥상머리에 둘러앉힌 그 방송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겁없는 기획이였다. 카메라앞에 앉은 어머니는 시종 흐뭇한 얼굴이였고 김박사와 블루동지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밥그릇만 만지작거렸다. 방송용 가상결혼을 두고 실제 상견례까지 치른 셈이니 이만하면 나라 사이의 국서교환에 못지 않은 격식을 갖춘 셈이다.
누가 이것을 두고 지나친 과장이라 해도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우리 방송판에서는 원래 작은 일도 크게 부풀려야 재미가 사는 법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그날 방송에서 《어머니 소개까지 마쳤다》는 말을 자신있게 할수 있었던것이다. 그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였다.
두해라는 세월에는 물론 화면속의 일만 있었던것은 아니다. 손을 맞잡는 데만도 육백날이 걸렸다는 우스개가 나올만큼 우리는 매사에 더디였다. 그러다 마침내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고 합방을 하던 날에는 전세계 《트위치》 시청자 순위 2등을 찍었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그 더딘 걸음이 헛되지는 않았던 셈이다. 화면 밖에서 조심스레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화면안의 그 오랜 장난도 사람들 눈에 그저 장난으로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두해가 시종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우결》 중에도 크게 위기라 불릴 만한 때가 한번쯤 있었으나 그 자세한 속사정까지 이 자리에서 다 풀어놓지는 않으려 한다. 지나간 다툼을 시시콜콜 적어놓는 것이 이 회고록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다만 그런 고비를 넘기고도 우리가 몇해를 더 함께 갔다는 사실만은 적어두고 싶다.
이야기가 이렇게 옆으로 흘렀으나 다시 유월 스무나흗날 그 방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날 화면속에서 백곰파는 어정쩡하게 웃고 고수달은 곁에서 말을 아끼고있었다. 머리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총소리 사이사이 정적이 길어질 때마다 나는 저 둘이 무슨 말이든 해야할 텐데 하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블루동지도 나와 같은 생각이였던 모양이다.
블루동지가 먼저 입을 열어 두 사람을 나무라듯 말하였다. 《애매하게 하지 말고 할 거면 적극적으로 해버려라.》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마디를 더 보태였다. 《자꾸 빨아먹기만 하고, 여지만 열어두고 뭐하는것이야.》
대화창이 그 말에 웃음소리 자막으로 뒤덮이였다. 고수달은 머쓱한듯 《메모하는 중》이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백곰파는 그 특유의 넉살로 《50년짜리 계획을 세우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대답에 블루동지도 나도 한바탕 웃고말았다.
후배들앞에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우리 둘의 모습이 스스로도 우스웠던 까닭이다. 돌이켜보면 그날 나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능청스럽게 《선배노릇》을 하였다. 몇해 전만 해도 높임말이나 겨우 뗀 신출내기였던 내가 이제는 후배들에게 훈수를 두는 처지가 되였으니 세월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방송판에서 두해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라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참 소리를 듣는 자리에 올라서있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던진 말이 《두해 동안 진행하였고 어머니 소개까지 마쳤으며 깔끔하게 끝냈다》는 한마디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후배에게 주는 조언이라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주는 정리에 가까웠다. 두해라는 세월을 한 문장으로 눌러담으려니 자연히 뼈대만 남고 살은 다 깎여나갔다.
《깔끔하게 끝냈다》는 표현도 그 자리에서는 가볍게 흘러나왔지만 실은 가볍게 나온 말이 아니였다. 우주27(2020)년 시월 엿샛날 밤, 우리는 마지막 합동방송을 마쳤다. 그날 나는 방송을 마치고 홀로 앉아 대화창이 텅 비어가는것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날 이후로 세상은 우리를 두고 여러 말을 하였으나 우리는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그 뒤끝을 정리하는 영상은 며칠을 두고 나뉘어 올라갔다. 내 방송에는 그달 열여드렛날에, 블루동지 방송에는 이틀 뒤인 스무날에 각기 《우결 종료》라는 영상이 올라갔다. 마치 두 나라가 따로 조약문을 내걸듯 하루이틀 시차를 두고 같은 소식을 알린 셈이니, 이것도 다시 보면 우습고도 정겨운 우리식이였다.
후날 누군가에게 나는 《우리는 해볼만큼 해봤고 그래서 미련이 없다》는 뜻의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토씨 하나하나까지 내가 정확히 기억하는것은 아니다. 다만 뜻만은 지금도 뚜렷하다. 무슨 일이든 힘껏 하고나서 결과가 어느만큼 나오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미련이라는 것이 잘 붙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우리가 《우결》을 접을 때의 심정에 가장 가까운 설명일것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그때 왜 꼭 그 시점에 끝을 내야 하였는지, 그 참된 리유를 다 알지 못한다. 방송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시작에는 분명한 계기가 있어도 끝에는 여러 사정이 겹쳐 하나로 잘라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 다만 끝을 낼 때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깨끗이 마무리지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자신있게 말할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표현을 《깔끔하게》라고 골랐던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하나 덧붙이자면, 우리가 정확히 몇번의 방송을 《우결》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였는지 나는 지금도 정확한 수자를 대지 못한다. 워낙 여러 방송에 흩어져 올라간 내용물라 누군가 일일이 세어보지 않는 한 그 총수는 아마 앞으로도 정확히 밝혀지기 어려울것이다. 다만 그 수자를 모른다고 해서 그 세월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종영 두달 뒤에 올라온 영상 제목이 《이미 우린 끝났잖아.. 누나》였던것을 나는 기억한다. 끝이 나고도 호칭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사람 사이의 정이라는 것이려니 생각한다. 방송을 접고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놀리고 서로를 챙기며 몇해를 보냈다.
그로부터 반년 남짓 지난 우주28(2021)년 오월에는 《이젠 어색해진 우리 사이》라는 제목의 영상도 올라왔다. 부제에는 전썸녀에게 련락한지 사흘만에 답장이 왔다는 우스개가 달려있었다. 리별한 사이에도 이런 실없는 장난을 주고받을수 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통한 노릇이다.
그 몇해 사이에도 우리 이야기는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옛 영상은 어느 알고리즘의 손을 타고 이따금씩 다시 사람들앞에 나타나기를 되풀이하였고, 그때마다 대화창과 감상글난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북적이였다. 나는 그 되풀이를 보며 이것도 방송이라는것의 한 성질이려니 여기였다.
그렇게 시청자들은 우리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장작을 지폈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장작이 알아서 탄다》고 표현하였는데 참으로 적절한 말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옛 화면 몇조각만 다시 돌면 그 불씨는 금세 되살아났다. 그것은 우리가 애써 지피지 않아도 저 혼자 타오르는 묘한 불이였다.
이 권을 《재조명》이라 이름붙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번 끝난 이야기가 몇해 뒤에 다시 빛을 받아 새 모양으로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유월 밤에 겪은 일이였다.
그러다 우주32(2025)년 봄, 우연히 옛 영상들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였고 그 흐름을 타고 우리는 오랜만에 함께 방송대에 앉게 되였다. 그날 밤의 그 《배틀그라운드》 합방이 바로 그 결실이였다. 방송사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이런 순환을 지켜보는 일은 묘한 감회를 준다. 한때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새 이야기의 씨앗이 되는 광경을 나는 여러번 보아왔다.
스텔라이브 성원들도 이 사정을 대개는 알고있었다. 리제동지는 예전에 내 퍼스날컬러가 블루동지라고 슬쩍 흘린 적이 있고 시부키동지나 리코동지도 합방자리에서 《우결》 이야기가 나오면 짐짓 아는체하며 웃곤 하였다. 성원들 사이에서는 나를 두고 《엄마》라 부르고 저희끼리는 《딸내미들》이라 부르는 장난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나는 처음에는 그 말을 딱 잘라 부정하였으나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그날 밤 방송을 마치고 정리를 하는데 미기가 오른팔답게 옆에서 장비를 챙기며 한마디 거들었다. 《사장님, 오늘 방송 좋았습니다.》 나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을뿐이다. 미기는 늘 이렇게 말을 아끼는 사람이지만 그 짧은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그날 밤 늦도록 나는 그 한마디, 《두해 동안 진행하였고 어머니 소개까지 마쳤으며 깔끔하게 끝냈다》는 말을 곱씹었다. 말이란 참 이상한것이어서 뱉을 때는 가볍던 것이 되새길수록 무거워진다. 두해라는 세월도, 어머니를 모신 그 하루도, 시월 엿샛날의 그 조용한 마무리도 모두 그 한마디속에 눌려담겨 있었다. 나는 그것을 후배들에게는 조언삼아 가볍게 던졌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하나의 매듭을 짓는 말이였다.
어떤 사람은 두해라는 세월을 두고 짧다 하고 어떤 사람은 길다 할것이다. 나로서는 그 길이를 셈하기보다 그 안에 무엇을 채웠는가를 더 소중히 여긴다. 높임말이 반말이 되고 남이 가족이 되고 방송이 삶의 한 토막이 되였으니, 두해라는 수자 하나로는 다 담을수 없는 부피가 그 세월에는 있었다.
이 한마디를 남기고 그날 밤 방송을 마쳤을 때만 해도 나는 이것이 그저 후배들에게 던진 덕담 한마디로 끝나리라 여기였다. 그러나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한번 세상에 나가면 저 혼자 걸어다니는 법이다.
그날은 미처 몰랐다. 그 매듭 하나가 후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건드리게 될지,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옛 장면들을 뒤늦게 찾아본 사람들이 새삼 눈물을 훔치게 되리라는 것도, 그 눈물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게 되리라는 것도, 그날 밤의 나는 알지 못한채 그저 화면 불빛앞에 오래도록 앉아있었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