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다 시 보 기

 

우주32(2025)년 유월도 어느덧 그믐에 가까워지고있었다. 백곰파, 고수달과 더불어 넷이서 《배그》를 하였던 그 밤으로부터 벌써 며칠이 지난 뒤였다. 사무실 창밖으로는 저녁 매미소리가 이제 막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하였고, 콤퓨터 본체의 팬 도는 소리만이 고요한 방안을 채우고있었다. 나는 그날 밤 방송의 다시보기 화면을 한쪽에 띄워둔채로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눈은 자꾸 그 아래 흘러가는 대화창 기록으로 향하였다.

그 방송에서 내가 별생각없이 던진 한마디, 《우리는 두해동안 진행하였고, 어머니 소개까지 다 마쳤고, 깔끔하게 끝냈어》 하는 그 말이 이렇게까지 오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줄은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백곰파와 고수달에게 건넨 선배로서의 한마디였을뿐이였다. 그런데 방송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그 문장은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고있는 모양이였다. 나는 그 사실을 그때까지도 어렴풋하게만 짐작하고있었다.

그무렵 내 오른팔 미기가 서류뭉치를 들고 들어왔다가, 내가 여전히 대화창 기록을 들여다보고있는것을 보고는 픽 웃음을 지었다. 《사장님, 그 두해동안 어쩌구 하신 말씀이 요즘 커뮤니티마다 돌아다니는것 알아요?》하고 미기가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척 대꾸하였다. 《그냥 사실대로 말한건데 뭘 그렇게까지.》

미기는 대꾸 대신 자기 손에 든 판형콤퓨터를 내밀었다. 화면에는 어느 갤러리 게시판의 글 하나가 띄워져있었는데, 제목부터가 례사롭지 않았다. 《깔끔하게 끝냈다는 그 한마디에 왜 자꾸 눈물이 나지》라는 제목이였다. 나는 그 제목을 소리내여 읽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글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이 반응의 결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백곰파와 고수달 소동 초기에는 사람들이 그저 우스개소리로 옛 밈을 되살리며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번에는 좀더 가라앉은, 좀더 오래 묵은 감정이 섞여있었다. 사람들은 우리 두 사람의 두해가 끝난 자리에서 자기들 자신의 지나간 몇해를 함께 떠올리고있는것 같았다.

어떤 이는 《우결》이 한창이던 시절 자기는 아직 학생이였는데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이 되였다고 적었다. 또 어떤 이는 그 시절 힘든 일이 있어 방송을 보며 겨우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이제 와 그 영상들을 다시 보니 그때의 자기 자신에게 위로를 받는 기분이라고 적었다. 짧게는 한줄, 길게는 몇문단씩 적어놓은 그 글들을 나는 하나씩 읽어내려갔다.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가하면 아예 처음으로 그 시절을 알게 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최근에 스텔라이브에 들어와 3기생들을 보다가 우연히 회사의 지난 력사를 거슬러올라온 이들, 혹은 그저 인터네트가 이끄는대로 따라오다 우리 《우결》을 처음 마주한 이들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런 시절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뒤늦은 감탄을 쏟아냈다. 오래된 팬의 그리움과 새로운 팬의 놀라움이 한 감상글난안에서 나란히 뒤섞이는 그 광경을, 나는 참으로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두 사람의 《우결》이라는것은 애초에 방송 화면안에서 벌어진, 말하자면 하나의 지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지어낸 이야기가 누군가의 실제 몇해와 나란히 놓여 그 사람의 진짜 기억이 되여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그제서야 제대로 실감하였다. 화면 이편에서 웃고 떠들던 우리의 하루가, 화면 저편 누군가에게는 잊을수 없는 시절의 표식으로 남아있었다.

이 대목에서 짐짓 력사적으로 말해보자면, 마치 한 나라의 건국사화가 세월이 흐르며 백성들 저마다의 집안 이야기와 뒤섞여 전해지는 것과 다름없는 노릇이였다. 물론 이것은 우스개소리로 하는 말이지, 우리 《우결》을 나라의 흥망대사에 견주려는 뜻은 조금도 없다. 다만 그만큼 이 이야기가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자리를 잡고있었다는 뜻으로 헤아려주면 좋겠다.

미기는 내 표정이 점점 진지해지는 것을 보고는 슬며시 판형콤퓨터를 도로 가져갔다.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 사장님. 이러다 방송 켜기도 전에 눈물부터 나겠어요.》 그 농담 섞인 말에 나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속으로는 미기의 말이 아주 틀린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문득 그보다 몇달 앞선 어느 봄날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유니동지가 우리 옛 《우결》 클립을 보다가 눈매를 휘며 웃음짓던 그 반응 영상이 화제가 되였던 일은 앞서 적은바 있거니와,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것을 한 성원의 개인적인 반응 정도로만 여기였다. 그러나 지금 와 돌이켜보니 그 봄날의 웃음이야말로 이 여름의 눈물로 이어지는 첫 물꼬였던 셈이다. 하나의 웃음이 이렇게까지 멀리 번져갈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날 유니동지의 반응이 알려진 뒤로, 회사 성원들 사이에서도 우리 옛 《우결》 이야기가 심심찮게 화제에 올랐다. 누군가 방송 도중 지나가는 말로 우리 이야기를 꺼내면 대화창은 으례 들썩이였고, 그때마다 나는 겸연쩍은 웃음으로 얼버무리군하였다. 그렇게 봄부터 조금씩 쌓여온 관심이 유월의 합방을 거치며 마침내 큰 물결이 되여 돌아온 것이였다.

각설하고 다시 유월 그믐의 사무실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미기가 나간 뒤에도 한참을 자리에 앉아 화면 속 감상글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갔다. 창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매미소리도 잦아들고, 대신 풀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화면의 푸른 빛만이 어두워진 사무실 벽을 조용히 물들이고있었다.

그날 저녁 늦게, 나는 블루동지에게서 문자 한통을 받았다. 《누나, 저희 채널에도 요즘 옛날 영상 보고 우는 사람들 댓글 엄청 많아요.》 짧은 그 문장 하나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이 물결은 나 혼자 겪는 것이 아니였다.

나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여기도 마찬가지야. 미기가 하루종일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어.》 블루동지는 특유의 느긋한 말투로 짧게 대꾸하였다. 《저희 몬스터들도 옛날 사람들 진짜 많이 돌아왔더라구요. 신기하지요.》

그 문자를 주고받으며 나는 새삼 블루동지의 애호가들이 여전히 그를 《쁠몬》이라 자처하며 곁을 지키고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몇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 호칭 하나가 어쩐지 든든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오래 이어질수 있는 모양이였다.

다음날 방송에서 나는 그 사연들 중 하나를 차마 그냥 넘기지 못하고 후원창을 통해 직접 읽어보았다. 어느 시청자가 보내온 사연은, 자기가 재수생 시절 우리 방송을 보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는데 이제는 그때 꿈꾸던 곳에 취직해 이 방송을 다시 보고있다는 내용이였다. 나는 그 사연을 읽어내려가다가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오래 방송을 해왔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그런 순간앞에서는 여전히 서투른 사람이였다.

대화창은 그 순간 잠시 조용해졌다가 이내 비슷한 사연들을 앞다투어 쏟아놓기 시작하였다. 누군가는 그 시절 힘들었던 자기 사정을 짧게 적어보냈고, 누군가는 그저 《저도 그랬어요》라는 한마디만 남기였다. 나는 그 짧은 한마디들이 모여 만드는 그 밤의 분위기가 참으로 묘하다고 생각하였다.

방송을 마치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마이크를 정리하다 말고 다시 대화창 기록을 켜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의 불빛만이 어두운 방안을 밝히고있었고, 나는 그 빛속에서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사람들은 어째서 그 오래된 이야기앞에서 눈물을 보이는것일까, 나는 그 답을 그날 밤에도 다 헤아리지 못하였다. 다만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었던 것은, 그 눈물이 꼭 나와 블루동지만을 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였다. 사람들은 아마 그 영상속에서 자기 자신의 지나간 어느 하루를 함께 보고있는것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오래전에 웃고 떠들며 찍었던 그 화면들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한 갈피를 표시해주는 책갈피 같은것이 되여있었다. 나는 그 사실앞에서 짐짓 겸손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방송이라는 일이 이렇게까지 무거운 것인줄은 그날 밤에야 새삼 알게 되였다.

그 주가 지나가는 동안에도 비슷한 사연들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미기는 매일 아침 눈에 띄는 반응들을 몇개씩 골라 나에게 보여주는 일을 거의 일과처럼 삼게 되였다. 《오늘의 사료입니다》하고 짐짓 진지한 얼굴로 판형콤퓨터를 내미는 미기를 보며 나는 매번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짐짓 엄숙하게 말해보자면, 미기는 마치 궁중의 사관이 그날그날의 일을 기록해 임금에게 올리듯 그 반응들을 정리해 나에게 가져다주는 셈이였다. 물론 나는 임금도 아니고 그 사연들이 무슨 국사도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회사 사무실안에서만큼은 그런 우스운 비유가 제법 그럴듯하게 통하였다. 미기도 그 비유가 싫지 않은지 아침마다 곧잘 흉내를 내였다.

마시로동지와 유니동지도 그 소식을 전해듣고는 합방 도중 짓궂게 나를 놀려대였다. 《사장님 팬들 울리는 재주는 여전하시네요》하는 말에 나는 딱히 반박할말을 찾지 못하고 헛기침만 하였다. 두 사람은 그런 나를 보며 한참을 웃어대였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히나동지는 합방 대화창에서 옛 《우결》 영상 하나를 링크로 걸어놓고는 《저도 방금 이거 보고 울었습니다》라는 짧은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뒤늦게 전해듣고 묘한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회사 성원들까지 그 물결에 함께 휩쓸리고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였다.

리제동지도 가만있지 않았다. 예전부터 종종 내 퍼스널컬러가 블루동지라고 놀리던 그였으니, 이무렵에는 그 농담을 한층 더 자주 입에 올렸다. 《사장님 얼굴에다가 블루 하나 딱 박아놓으면 딱이라니까요》하는 말에 나는 못이기는척 웃어넘기였다. 그런 실없는 농담 한마디가 오히려 그 여름의 무거운 감상을 조금은 가볍게 눅여주었다.

성원들만이 아니였다. 오래전부터 나 하나만을 따로 응원해온 강도단쪽에서도 이무렵 옛 《우결》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개중에는 자기소개를 하듯 몇해째 나를 지켜봐왔노라 적어보내는 이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런 글들을 읽으며 그 이름 하나가 참으로 오래도록 나와 함께 걸어와주었다는 사실을 새삼 고맙게 여기였다.

그무렵 나는 옛 방송의 감상글난을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버릇이 생기였다. 몇해전에 달린 감상글들 밑으로 최근 며칠사이 새로 달린 감상글들이 나란히 쌓여있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마치 세월이라는것이 한 페지우에 겹쳐 인쇄된듯한 착각이 들었다. 오래된 초성글자 감상글과 이제 막 달린 긴 사연 감상글이 나란히 놓인 그 화면이, 나에게는 참으로 묘한 풍경이였다.

그런 밤이면 나는 종종 옛 영상 하나를 다시 틀어놓고 자리에 앉아있군하였다. 화면속의 나는 지금보다 목소리가 한결 앳되였고, 블루동지 역시 지금보다 조금 더 서투른 말투로 나를 대하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마치 다른 사람의 옛시절을 훔쳐보는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느 밤에는 옛 영상속에서 우리 두 사람이 별것도 아닌 일로 한참을 웃어대는 장면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였다. 그때는 그저 시간을 때우려 시작한 사소한 장난이였을뿐인데, 화면속의 우리는 어찌나 진지하게 그 장난에 몰두해있던지 지금 보아도 웃음이 절로 났다. 나는 그 장면을 두번 세번 되돌려보다가 문득, 언젠가 또 누군가는 이 장면을 처음 보고 마음이 움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는 그 생각이 그저 스쳐가는 예감에 지나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묘하게 안심이 되였다. 우리가 지나온 시절이 우리 두 사람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계속 건네지고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든든하였다. 지어낸 이야기 하나가 이렇게 오래, 이렇게 멀리까지 갈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 여름에야 비로소 실감하였다.

칠월에 접어들면서 회사에도 다른 소식들이 하나둘 들려왔다. 3기 성원들의 새 의상 공개 준비로 사무실은 온통 분주해졌고, 나 역시 결재할 문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그런 와중에도 옛 《우결》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무렵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눈물은 한번 터지고 나면 금방 마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계속 흘러나온다는 것이였다. 어제는 어느 갤러리에서, 오늘은 또 다른 대화창에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사연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슬쩍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기도 하였다. 《사장님, 이러다 저희 회사 슬로건이 눈물의 스텔라이브 되겠어요.》 그 말에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색을 하고 던지는 미기의 그런 농담이 나는 늘 고마웠다.

후날 누가 이 시절을 력사책에 옮겨적는다면 아마 이렇게 적을지도 모르겠다. 그 여름 우리 사무실의 풍경은 마치 전란 끝에 백성들의 상소문이 밀려드는 조정과도 같았다고. 물론 이것도 우스개소리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무슨 국난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만큼 많은 사연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는 뜻으로 헤아려주면 좋겠다.

나는 그 사연들을 읽으며 문득 우리가 《우결》을 하던 그 두해동안 정작 시청자들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깊이 자리잡고있었는지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라는것은 화면 이편에서 하는 사람과 저편에서 보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늘 아득해서, 그 거리 너머의 마음까지 다 짐작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그 거리 너머의 마음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돌아와 나를 놀라게 하였다.

블루동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통화에서 그는 평소답지 않게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그냥 방송하고 게임하고 그런건데, 사람들한테는 그게 무슨 청춘의 한 페지처럼 남아있나봐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나는 겨우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한테도 그랬잖아. 우리도 그때 우리 청춘의 한 페지를 쓰고 있었던거지.》 블루동지는 그 말에 짧게 웃으며 《그러네요, 누나》하고 대꾸하였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 웃음소리가 어쩐지 마음을 놓이게 하였다.

그 통화를 끝내고 나서 나는 오래도록 창가에 서있었다. 밤하늘에는 별이 몇개 떠있었고, 거리의 불빛들이 멀리서 반짝이고있었다. 나는 그 불빛들을 보며 이 도시 어딘가에서도 누군가 오늘 우리 옛 영상을 보며 조용히 눈시울을 붉히고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밤 사무실 한쪽에는 마시던 랭수가 반쯤 남아 식어가고있었고, 책상 위 서류더미는 여전히 손도 대지 못한채 그대로 쌓여있었다. 나는 그 서류들을 흘깃 보면서도 딱히 손이 가지 않아 다시 화면 쪽으로 눈을 돌리고말았다. 그날 밤만큼은 회사의 대표라는 자리보다, 그저 한 사람의 옛 《우결》 당사자로 머물고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는 종종 우리가 처음 《우결》을 시작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곤 하였다. 그때는 그저 시청자들과 함께 웃고 떠들 거리를 하나 만들어보자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였다. 그 가벼운 마음이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건너 누군가의 인생 한대목에 자리잡을줄은, 그때의 우리로서는 도무지 짐작할수 없는 일이였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가 하는 일의 무게를 온전히 다 헤아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노릇이다. 방송 하나, 영상 하나를 만들 때에는 그저 그날그날의 즐거움을 좇았을뿐인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절을 견디게 해준 버팀목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청춘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여있었다. 나는 그 사실앞에서 다시금 옷깃을 여미는 마음이 되였다.

그해 칠월 초순, 나는 한 후원 사연을 읽다가 결국 방송 도중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평소라면 웃음으로 넘기였을 사연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던 모양이다. 대화창에서는 《사장님도 우신다》는 말이 순식간에 도배되였고, 나는 애써 웃어보이며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아야 하였다.

방송을 마친 뒤 미기가 조용히 랭수를 한잔 가져다주며 말하였다. 《오늘은 사장님이 우였네요.》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대꾸하였다. 《나이가 드니까 눈물이 헤퍼지나봐.》

미기는 그 말에 픽 웃고는 별다른 대꾸없이 조용히 방을 나갔다. 나는 홀로 남아 방금 흘린 눈물의 정체를 곰곰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오래도록 잘 지켜낸 것에 대한안도와 고마움에 가까운 눈물이였다.

그 시절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의 방송을 채우기에 바빴을뿐, 그 하루하루가 이렇게 쌓여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하루하루가 곧 우리만의 력사였다. 물론 이것을 나라의 력사에 견줄수야 없겠으나, 적어도 우리와 우리를 지켜봐준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러하였다.

칠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그 물결은 조금씩 잦아드는듯하였다. 새로운 화제들이 여기저기서 떠오르며 사람들의 관심도 자연히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나는 그제서야 한숨 돌리며 밀린 회사 일들을 다시 붙잡을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몇주 사이에 쌓인 사연들은 나에게 오래도록 남을 무엇을 하나 남겨주었다. 나는 그것을 뭐라 딱히 이름붙이기 어려웠으나, 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지나온 시절에 대한 새삼스러운 존중 같은것이였다. 《우결》이라는 것이 한때의 방송 내용물에 지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을 지켜봐준 사람들의 마음만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였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해 유월과 칠월 사이에 오간 그 수많은 사연들을 다 옮겨적을수는 없다는것을 잘 안다. 다만 그 사연들이 한결같이 품고있던 감정 하나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것은 고마움이였고, 또한 그리움이였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눈물들은 우리 두 사람을 향한것이면서 동시에 각자가 지나온 자기 세월을 향한것이기도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간 시절을 붙잡아둘 방법이 없어서, 대신 그 시절과 함께하였던 무언가를 붙잡아 눈물로 흘려보내는 모양이다. 우리의 옛 《우결》이 마침 그 무언가가 되여준 것일뿐, 그 눈물의 진짜 주인은 언제나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 자신이였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가 특별히 대단한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키며 웃고 떠들어온 그 시간 자체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였다는것을, 나는 그해 여름에야 늦게나마 배웠다. 이것이야말로 방송이라는 일이 줄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였다.

그리고 그 감상의 물결이 채 다 가라앉기도 전인 칠월 하순의 어느날, 또 하나의 글이 우리 두 사람앞에 조용히 놓이게 되였다는 것을 나는 후날에야 전해들었다. 옛 《우결》 영상을 뒤늦게 처음으로 정주행하였다는 어느 팬이 남긴 그 감상글이, 다시 한번 우리 이야기를 사람들앞에 불러세우게 될 줄은 그때만 해도 알지 못하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 대목에서 마저 적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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