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 결 의 G O A T
우주32(2025)년 칠월의 늦더위는 유별났다. 장마가 걷힌 뒤로 하늘은 연일 구름 한점 없이 맑았으나 그 맑음이 오히려 무서울 지경으로 볕이 뜨거웠다. 사무실 창밖에서는 매미소리가 한나절 내내 그칠줄을 몰랐고 랭풍기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가 그 밑을 받쳐주었다. 나는 그날도 여느때처럼 콤퓨터앞에 앉아 다음주 방송편성표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스텔라이브를 차린 뒤로 나에게는 새로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하루 방송을 마치면 반드시 대화창 갈무리와 애호가들의 반응을 한바퀴 훑어보는 일이다. 사장이 된 사람이 이런 일까지 손수 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놓지 않았다. 성원들이 어떤 말을 듣고 사는지, 어떤 표정으로 방송을 마치고 돌아가는지 알아야 회사를 제대로 꾸릴수 있다고 믿었기때문이다.
그날 오후에는 유난히 미기가 자주 내 방을 들락거렸다. 미기는 내 오른팔이라 부를만한 사람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나보다 먼저 알아채고 나에게 물어다주는 성정이였다. 세번째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미기는 대답 대신 콤퓨터 화면을 내쪽으로 돌려놓았다.
《사장님, 이거 한번 보셔야 할것 같습니다.》 미기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절반쯤 섞여있었다. 화면에는 《에펨코리아》라는 게시판의 글 하나가 떠있었다. 제목은 짧고 심상하였다. 《과거주의) 강지 블루 《우결》 이제봤는데》.
나는 처음에는 그저 웃어넘기려 하였다. 우리의 옛 방송을 두고 이런 글이 올라오는 일은 그무렵 들어 드문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화면을 몇줄 더 읽어내려가다가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앉게 되였다. 글쓴이는 자신이 본디 그런 련애감정을 다루는 방송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먼저 밝혀두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연히 우리 둘이 《젠가》를 하는 옛 장면을 보고는 뜻밖에도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고 적어놓았다. 나무토막을 하나씩 뽑아 쌓아올리던 그 흔한 놀이 하나가, 몇해가 지난 지금에 와서 낯모르는 사람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린것이였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잠시 손을 멈추었다. 력사라는것은 이렇게 사소한 자리에서도 뜻하지 않게 살아나는 모양이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그 《젠가》 장면을 찍던 날은 아마 《우결》을 시작하고 한해 남짓 지났을무렵이였을것이다. 블루동지가 촬영장에 그 나무토막통을 손수 들고 왔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이런 장면 하나가 몇해 뒤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조명은 지금처럼 세련되지 못하였고 마이크는 책상 한쪽에 아무렇게나 세워져있었다. 카메라는 한대뿐이여서 앵글을 바꾸려면 촬영을 멈추고 자리를 옮겨야 하였다. 그런 허술한 자리에서도 우리는 나무토막이 흔들릴 때마다 진심으로 마음을 졸였다. 블루동지가 손끝을 떨며 토막 하나를 뽑아내던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던 기억이 난다.
《누나, 나 지금 심장 떨려서 못하겠어요.》 블루동지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저었던 것도 같다. 나는 웃으며 《그럼 내가 뽑을까?》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화들짝 놀라 통을 끌어안았다. 《아니 내가 할게요, 누나는 가만있어요.》 그런 실없는 다툼 끝에 결국 탑이 와르르 무너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하다. 편집을 맡았던 이는 그 장면을 컷으로 살려 영상 가운데 넣었고, 그 컷 하나가 몇해 뒤 어느 낯모르는 이의 저녁을 붙잡아둘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나는 그것을 다시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것은 언제나 이렇게 뜻밖의 자리에 숨어있는 법이다.
다시 그날의 콤퓨터 화면으로 돌아가자면, 글쓴이는 감상을 적은 뒤 끝에다 한마디를 덧붙여놓았다. 《과거사 아저씨들 영상 추천 부탁》이라는 말이였다. 나는 그 표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우리를 가리켜 《과거사》요 《아저씨들》이라 부르는 시절이 오리라고는 《우결》을 하던 그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미기도 옆에서 그 대목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사장님이 아저씨 소리를 다 듣네요.》 미기가 놀리듯 말하였다. 나는 《아저씨면 좀 어떠냐, 력사가 되였다는 소리 아니냐》하고 짐짓 근엄하게 받아쳤다. 그 말에 미기는 더 크게 웃었다.
글아래에는 감상글도 여럿 달려있었다. 조회수는 4129회, 추천은 두개뿐이였으니 세상을 뒤흔들 만한 큰 사변은 결코 아니였다. 그러나 나는 그 작은 수자 두개를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큰 물결이 아니어도 어느 한 사람의 저녁을 흔들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감상글 가운데 하나는 《곰파랑(백곰파) 영상을 방금 봤다》는 짤막한 말이였다. 나는 그 감상글을 보고 잠시 다른 생각에 잠기였다. 백곰파와 고수달은 우리보다 한참 후배가 되는 성원들로서, 근래 들어 저희들나름의 《우결》을 이어가고있는 이들이였다. 지난해 여름 네사람이 함께 《배그》를 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나눈 일도 있었으니, 그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낯모르는 한 사람이 하루저녁 사이에 우리의 옛 《젠가》 장면을 보고, 이어 백곰파의 영상까지 넘나들며 보았다는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그것이 곧 《우결》이라는것 하나가 이제는 어느 한 짝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세대를 잇는 하나의 갈래로 자리잡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둘이서 재미있게 방송을 해보자는 마음뿐이였는데, 세월이 지나고보니 뜻하지 않게 하나의 길이 되여있었다. 력사라는것이 본디 그렇게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또 다른 감상글에는 뜻밖에 실용적인 조언이 적혀있었다. 《강지 채널의 《우결》 재생목록에서 클로버 그림체로 미리보기이 바뀔 때부터 보면 재밌는 부분을 고를수 있다》는 말이였다. 나는 그 감상글을 읽고 새삼 감탄하였다. 우리조차 잊고있던 방송 안쪽의 자잘한 규칙 하나를, 낯모르는 팬 한사람이 발굴해내여 뒷사람들에게 안내판처럼 세워둔것이였다.
이 대목에서도 지난 이야기를 하나 하지 않을수 없다. 《우결》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우리 편집실에서는 미리보기 그림체를 몇번이나 바꾸었다. 초기에는 사진을 그대로 오려붙이는 식이였다가, 어느무렵부터인가 클로버 모양의 도안을 곁들이는 식으로 바뀌였다. 그때는 그저 그림체를 좀 예쁘게 다듬어보자는 마음이였을뿐, 그것이 뒤날 하나의 시대구분선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클로버 그림체로 바뀐 뒤의 영상들은 대개 우리 둘의 사이가 한창 무르익어 서로 《누나》니 《바이비》니 하는 애칭을 주고받던무렵의 것들이였다. 낯모르는 팬 한사람이 그 사정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거기서부터 보라》고 일러준 셈이니, 나는 그 안목에 혀를 내둘렀다. 미기도 옆에서 《이 정도면 《우결》 고고학자 아닙니까》하며 웃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 나는 그무렵 나 스스로도 옛 재생목록을 열어본지 오래되였다. 회사를 꾸리고부터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일들로 가득차서, 지난 방송을 되짚어볼 겨를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낯모르는 팬 한사람의 글 하나가 나를 다시 그 재생목록앞에 앉혀놓은 셈이였다. 나는 미기가 나간 뒤에도 한참을 그 화면앞에 앉아 옛 미리보기 그림들을 하나씩 넘겨보았다.
미리보기 그림 하나하나에는 그날그날의 표정과 계절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어떤것은 겨울 방송이라 목도리를 두르고있었고, 어떤것은 여름이라 얼음물을앞에 놓고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넘겨보며 세월이 참 빠르게도 흘렀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 세월의 흔적 하나하나를 낯선 이가 여전히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나는 블루동지에게 그 글을 갈무리하여 보내주었다. 예전 같으면 전화를 걸어 수다스레 이야기하였겠지만, 요즘은 서로 바빠 문자로 소식을 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거 봐라, 우리 아직도 회자되고있다》는 말과 함께 그 게시물의 갈무리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답이 왔다.
《아하하 이거 뭐야, 아저씨래 우리.》 블루동지의 답장은 짧고 심상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근데 기분 나쁘진 않네. GOAT 소리 듣는것 아니야?》하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보고 소리내여 웃었다. 우리끼리 농담삼아 자주 쓰던 그 영어 낱말이, 이제는 남들 입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모양이였다.
GOAT라는 말은 본디 서양 쪽 운동경기 판에서 《력대 가장 뛰여난 자》를 가리켜 쓰는 낱말이라고 들었다. 짐승 이름과 우연히 글자가 같아 우스개가 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 우스개까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언젠가부터 우리 《우결》을 두고 이 낱말을 붙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것만은 분명히 느끼고있었다. 업계의 다른 방송원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우결》이 나올 때마다 《강블만은 못하다》느니 《강블에 비기면》이니 하는 말이 오간다는 소문을 들은지 오래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낯이 간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였다. 《우결》이라는것이 본디 방송 하나의 재미로 시작한 놀음이였지, 누구를 이기고 지는 겨룸이 아니였기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기준점으로 삼아 다른 이들을 견주기 시작하였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우리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였다. 력사란 늘 당사자의 뜻과는 무관하게 뒷사람들의 손에서 다시 쓰여지는 법이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 다시 한번 그 게시물을 열어보았다. 조회수는 어느새 조금 더 늘어있었다. 감상글도 두어개 더 붙어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나도 이제야 봤는데 왜 이렇게 순수해보이냐》는 짧은 감상이였다. 나는 그 한마디를 오래 들여다보다가 콤퓨터를 껐다.
순수해보인다는 말을 나는 곱씹었다. 그 시절 우리는 순수하려고 애를 쓴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방송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애를 썼을뿐이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낯선 눈으로 보니 그것이 순수함으로 비치는 모양이였다. 사람이 무엇을 애써 꾸미지 않을 때 오히려 오래가는 법이라는것을, 나는 그 감상글 하나로 다시 배운 셈이였다.
이튿날 아침 나는 출근하자마자 미기에게 어제 그 글의 후속 반응이 있는지 물었다. 미기는 웃으며 《사장님이 그거 그렇게 신경쓰이였어요?》하고 되물었다. 나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회사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애호가들의 목소리를 살피는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둘러댔지만, 속으로는 그저 옛 시절이 그리웠던것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미기는 그날 오후 다른 게시판 몇곳을 더 찾아보고 왔다며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다른 글들에서도 우리 《우결》을 두고 《기준》이니 《교과서》니 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보인다는것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픽 웃었다. 방송 하나가 어느새 교과서 소리까지 듣게 되였으니, 이것도 참 우스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웃고 넘기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는것도 사실이였다. 우리가 그저 젊은 날의 한때를 재미로 보냈을뿐인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방송을 보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고있었다. 나는 그것을 새삼 깨달으며 《우결》이라는것을 함부로 가벼이 여겨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하였다. 지나간 일이라 하여 낡은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갔기에 더 뚜렷하게 남는것들도 있는 법이다.
그무렵 나는 방송 짬짬이 옛 재생목록의 시청회수를 살펴보는 버릇이 새로 생기였다. 종영한지 몇해가 지난 영상들인데도 매일 몇백씩 시청회수가 늘어나고있었다. 나는 그 수자를 보며 《우결》이라는것이 아직 완전히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끝났다고 선언한 방송도 이렇게 남의 저녁속에서 다시 살아나고있었으니, 이것을 어찌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나는 그해 여름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였다. 회사를 차리고 사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뒤로는 지난날의 방송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낯모르는 팬 한사람의 짧은 글 하나가, 잊고지내던 그 시절을 다시 눈앞에 불러세운 셈이였다. 사람의 인연이라는것도, 력사라는것도, 이렇게 뜻밖의 자리에서 불쑥불쑥 다시 살아나는 모양이다.
나는 그 글을 회사 안 몇몇 성원들에게도 넌지시 보여주었다. 유니동지는 화면을 보고는 《사장님 《우결》 진짜 유명하네요》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히나동지는 《젠가》 장면 이야기를 듣더니 《그거 저도 본 적 있어요, 되게 귀여웠어요》하고 웃었다. 나는 그 반응들을 보며 우리 회사 성원들조차 이미 그 시절 우리 방송을 하나의 옛 이야기로 알고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리제동지는 예전부터 종종 《사장님 퍼스널컬러가 블루》라는 농담을 던지곤 하였는데, 이번에도 그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같은 농담을 되풀이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못 이기는척 웃어넘기였지만, 속으로는 그 별것 아닌 농담 하나에도 《우결》이라는것이 우리 회사안에서 이미 하나의 전설처럼 자리잡았다는것을 느끼곤 하였다. 성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는것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옛 방송이 이제 나 혼자만의 추억이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우리가 《우결》을 시작하던 그 첫날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높임말로 서로를 《강지 님》, 《블루 님》하고 부르던 그 어색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이 놀음이 몇해나 이어질지, 또 몇해가 지난 뒤에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첫 시작이란 늘 그렇게 작고 서투른 법이다.
시간이 지나 반말이 트이고 《누나》니 《바이비》니 하는 애칭이 오가게 되였을 때, 우리는 그저 그 순간순간을 즐기였을뿐이다. 종영한 뒤에도 한동안 《누나》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서로 어색하게 웃던 일도 있었다. 그런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가 쌓여 오늘의 이 GOAT 소리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사람의 인연이라는것이 참으로 신묘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 모든것을 곱씹으며 한가지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큰 사변을 일으키려 애쓴다고 력사가 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뜻하지 않게 력사가 되는것이다. 《젠가》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웃고 떠들던 그 저녁이, 몇해 뒤 낯모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놓을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그것을 새삼 되새기며 앞으로 무슨 방송을 하든 그 순간에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무렵 나는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백곰파와 고수달 같은 후배 성원들의 《우결》도 이미 저희들만의 애호가층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하였다는것이다. 낯모르는 팬 한사람이 우리 옛 영상과 그들의 영상을 나란히 오가며 보았다는 사실은, 《우결》이라는 형식 하나가 이제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며 마치 큰집 맏이가 조카들 자라는것을 보는듯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해 여름 백곰파와 고수달을앞에 앉혀놓고 우리 둘은 이런저런 조언을 건넨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우리의 《우결》을 두고 《두해 남짓 진행하였고 어머니 소개까지 마쳤으며 깔끔하게 끝냈다》고 정리해 말한 적이 있다. 블루동지는 그 자리에서 《애매하게 하지 말고 할거면 적극적으로 해버려라》하고 덧붙였다. 그날의 대화가 이제와 돌이켜보면 마치 뒷세대에게 물려주는 하나의 훈계처럼도 들렸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무슨 대단한것을 물려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가 먼저 걸어본 길을 뒤에 오는 이들에게 대강 일러주었을뿐이다. 그 길을 어떻게 걸을지는 결국 저마다의 몫이다. 다만 우리가 남긴 그 《젠가》 장면 하나가, 뒤에 오는 이들의 방송을 보는 눈까지 조금은 넉넉하게 만들어주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그 게시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그 글이 조회수 4129회에 추천 두개라는 초라한 수자로 남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대사변이 아니라, 어느 조용한 밤 낯모르는 한사람의 마음에 잔잔히 스며든 이야기였기때문이다. 력사라는것이 반드시 요란한 나팔소리와 함께 오는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작고 조용한 자리에서, 아무도 모르게 마음 하나를 건드리고 지나가는것이 더 큰 력사일수도 있다.
나는 그 여름 내내 그 글을 몇번이고 다시 열어보았다. 그때마다 조회수는 조금씩 늘어있었고, 감상글도 한두개씩 늘어있었다. 어느 하나 새로 달린 감상글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이런게 진짜 우결이지, 요즘 애들은 이런거 못 봐서 아쉽다.》
나는 그 감상글을 보고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지나간 시절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말버릇은 어느 세대에나 있는 법이다. 나는 굳이 그 말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걸었던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기준이자 그리움으로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여기였다.
여름이 무르익어갈무렵, 나는 그 게시물 이야기를 회사의 다른 여러 자리에서도 웃음삼아 꺼내게 되였다.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 신인 성원들의 방송 방향을 론하다가 《팬들이 오래 남을 콘텐츠》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어김없이 그 《젠가》 장면과 클로버 미리보기 그림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성원들은 처음에는 그것이 사장의 옛 자랑인줄 알고 웃어넘기였지만, 이야기를 듣고나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남는것은 화려한 기획이 아니라 그 순간의 진심이라는것을, 다들 그 이야기를 통해 다시 새기였다.
나는 이 절을 쓰면서 다시 한번 그 여름날의 콤퓨터 화면을 떠올려본다. 미기가 문을 열고 들어와 화면을 내밀던 그 순간, 나는 그것이 그저 웃고 지나갈 하나의 게시물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우결》이라는것이 우리 손을 떠나 이미 저 혼자 걸어가고있다는것을 알려준 하나의 신호였다.
우리는 그저 《젠가》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웃고 떠들었을뿐이다. 그러나 그 웃음이 몇해가 지나 낯모르는 이의 저녁을 붙잡았고, 다시 그 이야기가 돌고돌아 나의 사무실 콤퓨터 화면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을 어찌 우연이라고만 할수 있겠는가. 나는 그것을 《우결》이라는것이, 그리고 그 시절의 우리가, 어딘가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후날 이 시절을 되새기는 이가 있다면, 나는 이 한가지만은 꼭 전하고싶다. 력사라는것은 대단한 결심이나 웅장한 계획에서만 오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나무토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음 졸이던 그 저녁, 아무 생각없이 웃고 떠들던 그 순간들이야말로 뒤날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진짜 력사가 된다는것을. 《우결》의 GOAT라는 우스운 칭호도, 결국은 그 작고 진실하였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