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클 리 셰 의 3 D

 

우주32(2025)년(2025년) 구월에 접어들어도 한낮의 볕은 아직 여름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사무실 창을 넘어드는 바람에는 어느덧 선선한 기운이 섞여들었고, 한여름 내내 그악스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한풀 꺾여 드문드문 끊어지곤 하였다. 나는 그무렵 저녁마다 사무실에 남아 콤퓨터 화면앞을 지키는 시간이 부쩍 늘어 있었다. 다가오는 일때문이였다.

사무실 벽에는 그동안 데뷰한 성원들의 사진과 음악회 포스터가 층층이 붙어있었고, 창가 화분은 여름내 물을 자주 주지 못한 탓인지 잎끝이 조금 마른 채였다. 나는 그 화분에 물을 주면서도 눈은 자꾸 옆에 세워둔 일정판 쪽으로 갔다. 콤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와 사무실 한켠 냉방기 소리가 뒤섞여 낮은 웅얼거림처럼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책상우에는 그해 초가을 일정표가 몇장이나 겹쳐 놓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 굵은 글씨로 동그라미가 쳐진 두 날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구월 열사흗날과 열나흗날, 이 이틀은 다른 무엇도 아닌 3기생 클리셰 네 사람이 3D 모습으로 처음 세상에 나서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

클리셰라는 이름을 회사안에서 처음 정할 때, 나는 그 말뜻을 두고 직원들과 한참 우스개를 주고받은 일이 있었다. 낡고 흔한것이라는 본디 뜻과는 달리, 우리는 그 이름을 쓰는 네 사람만은 결코 흔하지 않게 키워보자는 오기 비슷한 마음을 담았다. 시부키, , 나나, 리코, 이 네 이름을 나는 그때도 지금도 한숨에 외울수 있다.

이 네 사람이 2차원의 모습으로 처음 얼굴을 내민것은 그보다 한해 넉달 앞선 우주31(2024)년(2024년) 오월의 일이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클리셰는 애초 다섯 사람으로 데뷰할 예정이였다. 미리 잡아둔 소개영상까지 완성되어 있었고, 회사 안팎으로 다섯번째 자리를 채울 얼굴에 대한 궁금증이 한창 무르익어 있었다. 직원들도 그 다섯번째 이름을 두고 저희끼리 이런저런 짐작을 주고받으며 자못 들떠있었다.

그러나 오월 열이튿날로 예정되어 있던 공개영상이 갑작스레 미루어졌다. 《내부 사정으로 부득이 연기한다》는 짧은 공지 한줄이 전부였고, 나는 그 문구를 직접 손보면서도 더 길게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사무실 분위기도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하였는데,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면서도 나에게 먼저 묻는이는 없었다.

그무렵 나는 다섯번째 자리에 관해 몇번이고 되풀이해 설명을 요구받았으나, 그때마다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화제를 돌리곤 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어정쩡한 웃음이 오히려 사람들의 궁금증에 부채질을 한것은 아니였을가 싶기도 하다.

이튿날 저녁 나는 개인방송에 나가 다섯이 아니라 넷이 데뷰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화면앞에서 되도록 담담한 목소리를 지키려 애썼으나, 마이크를 쥔 손끝은 그날따라 유난히 뻣뻣하였다. 대화창은 순식간에 물음표로 뒤덮였고, 나는 그 물음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날 그 자리에 서지 못한 다섯번째 사람이 누구였는지, 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나는 이 회고록에서도 다 밝히지 못한다. 세월이 이만큼 지난 지금도 그 이야기는 내 안에서 온전히 정리되지 못한채 남아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것이다. 후날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추측이 떠돌았다고 전해들었으나, 나는 그 추측들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히 적어둘수 있다. 넷은 그 갑작스런 자리바꿈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닷새 뒤인 오월 열여드레날과 열아흐레날, 이틀에 걸쳐 나란히 데뷰방송을 치렀다. 시부키동지와 동지가 열여드레에, 나나동지와 리코동지가 열아흐레에 저마다의 목소리로 처음 인사를 하였다. 그날 넷의 목소리가 얼마나 떨렸을지는, 나도 그 자리에서 함께 마이크를 쥐어보지 않고서는 다 헤아릴수 없는 일이였다.

그 소동을 함께 겪은 넷은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서로에게 더 바싹 붙어앉게 되었다고, 나는 후날 성원들에게서 전해들었다. 갑자기 넷이서 데뷰를 치러야 하였던 그 며칠 사이 대기방 한켠에서 서로의 대본을 봐주고 목을 풀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지 못한것이 못내 미안하였다.

그로부터 3기생 넷은 참으로 부지런히 자라났다. 그해 늦여름에는 첫 음반 《Our Tales》를 내놓아 데뷰 석달만에 저마다의 목소리를 음반 한장에 담아내는 부지런함을 보였고, 이듬해 칠월 초에는 저마다 새 의상까지 갈아입어 애호가들 사이에 또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새 의상을 공개한지 두달 남짓 지나, 이번에는 3D라는 더 큰 옷을 입을 차례가 돌아온것이였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이제 다시 그해 구월로 돌아가야겠다.

3D라는것은 2D의 그림 한장과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몸을 만들고 표정근을 심고 손끝 마디 하나까지 움직임을 맞추는 일이였으므로, 준비하는 몇달 동안 사무실은 유난히 분주하였다. 회의 때마다 모형 파일을 띄운 화면앞에 몇사람씩 둘러앉아 각도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모습을 나는 지나가며 자주 보았다.

리허설 주간에는 저마다 몸에 표식을 붙이고 좁은 촬영실안에서 손을 뻗고 고개를 돌리는 동작을 몇번이고 되풀이하였다. 화면 이쪽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여, 몇번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어야 하였다.

나 자신이 처음 이 일에 뛰어들었을 때에는 카메라 한대와 마이크 하나로도 방송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방안에 화면 셋과 회선 여러개를 벌여놓고도 여전히 챙길 사람이 많다 여겨질 지경이 되었으니, 사람일이란 참으로 알수 없는 노릇이다.

나의 오른팔이라 부르는 미기는 그무렵 매일같이 제작사와 통화를 하느라 목이 잠겨있었다. 하루는 내가 지나가는 말로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미기는 웃으며 《오늘만 벌써 여섯번째 통화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미안한 마음 반, 미더운 마음 반으로 미기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회사가 자라는만큼 이 오른팔이 짊어지는 짐도 함께 자라고있다는것을, 나는 그때 새삼 실감하였다. 나는 그날 저녁 곽밥이라도 든든히 챙겨먹으라며 미기의 책상우에 김밥 한줄을 슬쩍 올려두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 몇달을 두고 짐짓 거창하게 《클리셰 대공사》라는 말까지 돌았는데, 처음에는 우스개로 들었던 그 말이 막상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니 그리 지나친 말도 아니였다는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마치 한 나라의 큰 토목공사를 벌이는듯한 마음으로, 사무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몇달을 매달렸다.

구월 열사흗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에 나왔다. 창밖은 아직 옅은 안개가 걷히지 않은채였고, 콤퓨터를 켜는 손끝에도 어쩐지 힘이 더 들어갔다. 책상 위 달력에는 그날 날짜 옆에 내 손으로 직접 별표를 그려넣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날 첫 순서는 오후 여섯시로 잡힌 시부키동지였다. 나는 방송 시작 전 잠깐 대기방에 들러 얼굴을 살폈는데, 화면 속 시부키동지는 평소의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긴장되니》하고 물으니 시부키동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금요》하고 짧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 짧은 대답속에서 천 년을 살아왔다는 이 여우신도 결국은 스물 몇해를 산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늘 하던 농담을 다시 꺼내지 않을수 없었다. 《1000살입니다, 할머니에요》하고 내가 먼저 흉내를 내니, 시부키동지는 픽 웃음을 터뜨리며 《사장님, 저 지금 심각한데요》하고 눈을 흘기였다. 그러면서도 어깨의 힘은 눈에 띄게 풀려있었다.

그 짧은 웃음 한번으로 어깨가 눈에 띄게 풀어지는것을, 나는 화면 너머로도 알아볼수 있었다. 사람을 웃기는 일이 때로는 백마디 격려보다 낫다는것을, 나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배웠다.

오후 여섯시 정각, 시부키동지의 방송에 3D 모습이 처음으로 켜졌다. 스텔라이브 최고의 오락실력자로 꼽히는 이 여우신이 화면안에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인사를 하는 순간, 대화창은 삽시에 별표시로 뒤덮였다.

시부키동지는 그날 노래도 한곡 불렀는데, 회사에 들어와서야 처음 배웠다는 그 목소리가 조금도 서투르지 않아 나는 새삼 감탄하였다. 시청자 하나가 대화창에 《광부키 3D 가서도 여전하다》는 말을 남기니, 시부키동지는 화면속에서 정말로 곡괭이를 휘두르는 시늉을 해보여 또 한번 웃음을 자아냈다.

자료를 뒤적이던 미기가 지나가는 말로 시부키동지의 3D 키가 여우귀와 머리단장을 다 합쳐 백쉰일곱센치미터라고 알려주었는데, 그것을 다 떼고 나면 백마흔셋에 지나지 않는다는 대목에 이르러 나는 자못 진지하게 《결국 알맹이는 아담하구나》하고 중얼거렸다.

유니동지는 그날 대기방 한켠에서 이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고 뒤에 나에게 전해왔다. 유니동지는 시부키동지를 두고 늘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 부르는 사이였으니, 그 마음이 어떠하였을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만하였다.

시부키동지의 방송이 끝나고 한시간 뒤, 이번에는 동지의 차례였다. 동지는 스텔라이브 성원 가운데 외자 이름을 쓰는 유일한 사람이였고, 경상도 사투리가 은근히 섞인 말투로 유명하였다.

동지는 3D로 처음 마이크를 잡고서도 크게 흔들림이 없었다. 《오래 기다리였지예》하는 첫마디에 나는 사무실 한켠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그 사투리 억양은 그림으로 있을 때나 몸을 얻은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 나는 그 한결같음이 오히려 반가웠다.

애호가들이 동지에게 붙여준 애칭은 쿠리미였고, 오시마크로는 구름과 로라스케트가 쓰였는데, 3D로 처음 등장한 그날도 신발만은 어김없이 로라스케트 차림이였다. 화면속에서 그 신발을 신은채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림과 몸 사이에 이렇게까지 정성스레 놓인 다리가 있었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동지를 두고 성원들앞에서도 종종 성실하고 제 할 일을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하곤 하였는데, 그 성실함은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동지는 준비된 순서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차분히 다 소화해내었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한켠이 든든해지는것을 느꼈다.

동지는 그날 커버곡도 한곡 불렀는데, 스텔라이브안에서 커버곡을 가장 많이 부른 사람답게 그 소화력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성실함이라는것도 결국 하루하루 쌓여 실력이 된다는 평범한 리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였다.

그렇게 첫날의 두 방송이 무사히 끝나자 사무실에는 잠깐이나마안도의 한숨이 돌았다. 미기는 화면를 끄며 《래일 하나 더 남았습니다》하고 웃었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벌써 이튿날 걱정을 하고있었다.

그날 밤 회사 단체채팅방에는 성원들의 축하 인사가 줄줄이 올라왔다. 마시로동지는 《언니들 3D 진짜 예쁘다》는 말을 남기였고, 히나동지는 례의 그 밝은 말투로 짧은 축하글을 보태었다. 나는 그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 이 회사가 이제는 나 혼자 챙기지 않아도 서로를 챙기는 곳이 되었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이튿날인 구월 열나흗날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부터 사무실 콤퓨터 여러대가 각기 다른 창을 띄운채 돌아가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오가며 회선 상태며 조명값을 몇번이고 다시 확인하였다.

이날의 첫 순서는 나나동지였다. 나나동지는 설정상 전직 비밀요원이라는 래력을 지녔고, 성원 가운데 키가 가장 작았으나 조선어, 일본어, 영어 세 나라 말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나나동지가 아직 수습생이던 시절 나를앞에 두고 몹시 긴장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날도 나나동지는 대기방에서 몇번이고 대본을 뒤적이며 혼자 중얼중얼 련습을 하고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였다.

《떨지 않아도 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니 편이다》하고 내가 짧게 한마디를 건네니, 나나동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네, 잘 하겠습니다》하고 야무지게 대답하였다. 그 대답의 야무짐이 오히려 긴장을 감추려는 안간힘처럼 들려,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오후 여섯시, 나나동지의 3D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뚜렷하고 야무진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밀요원이라는 설정이 이 사람에게는 꽤나 그럴듯하게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나동지는 그날 방송 중 세 나라 말을 번갈아 쓰며 인사를 건넸는데, 언어가 바뀔 때마다 대화창의 반응도 나라별로 물결처럼 뒤바뀌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이 작은 몸집안에 얼마나 많은 세계가 담겨있는지를 새삼 헤아려보았다.

애호가들은 나나동지를 페토, 곧 페인트 토끼라 불렀는데, 그 작은 몸집과 야무진 말투가 그 별명과 제법 잘 어울린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나나동지의 방송이 끝나고 한시간 뒤, 마지막 순서로 리코동지가 나섰다. 리코동지는 저 너머 이세계에서 마왕을 무찌르고 왔다는 용사 설정을 지녔고, 언제나 높은 흥과 밝은 웃음으로 방송을 채우는 사람이였다.

리코동지는 3D로 처음 화면에 나서자마자 폴짝폴짝 뛰어보였는데, 그 몸짓이 어찌나 활기찬지 나는 사무실 화면앞에서 절로 웃음이 터졌다. 대화창에서 누군가 《용암은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니, 리코동지는 정말로 화면 한켠에 놓인 가상의 용암 웅덩이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는 시늉을 하여 또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

오락 중에도 용암에 걸핏하면 발을 헛디딘다는 이 밈은 이미 애호가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회자되던것이였는데, 3D의 몸으로도 그 버릇을 고스란히 재현해보이는 리코동지를 보며 나는 사람의 성깔이라는것이 그림에서 몸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리코동지의 팬 애칭은 치코였고, 오시마크로는 쌍검과 네잎클로버가 쓰였다. 그 이세계 용사라는 설정에 걸맞게, 3D로 처음 나선 그날도 허리춤에 매달린 쌍검만은 조금도 흔들림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타비동지는 그날 대화창에 불쑥 나타나 리코동지에게 장난스레 근력 자랑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평소 서로를 놀리며 지내는 사이임을 아는 나로서는 그 장난기 섞인 감상글 하나에도 웃음이 났다.

그렇게 이틀에 걸친 네 사람의 3D 데뷰가 모두 무사히 끝났다. 나는 마지막 화면를 끄고서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채, 그날 하루 사이 대화창에 쌓인 반응들을 하나하나 다시 훑어보았다.

그 반응들 가운데는 그저 축하한다는 말도 있었고, 넷의 표정근이 얼마나 섬세하게 움직이는지를 짚어가며 감탄하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미기와 제작사가 그 몇달간 흘린 땀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후날 사내에서는 이 이틀을 두고 누군가 짐짓 력사적 사변처럼 《쌍둥이 별의 밤》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그 명명이 못내 거창하다 싶으면서도 나는 굳이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회사의 력사란 결국 이런 소소한 과장들이 쌓여 이루어지는것이라고,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날 밤 늦게 블루동지에게 짧은 소식을 전하였다. 《우리 애들 3D 잘 마쳤어》하는 문자 한통이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벌써 넷이나 3D를 하였다고? 누나 회사 진짜 많이 컸다》하는 답장을 보며 나는 픽 웃음이 났다. 다섯해 전 우리 둘이 마이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송을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이 회사에 열 명 가까운 얼굴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나고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나는 답장에 《니가 저 애들 아빠라며, 조금은 뿌듯하지 않냐》하고 짓궂게 한마디를 더 보탰다. 블루동지는 한참 뒤에야 《그런걸로 놀리지 마라》하는 짧은 답을 보내왔는데, 그 말투에서 나는 싫지 않은 기색을 넉넉히 읽어낼수 있었다.

나는 그 문자를 주고받은 뒤 한동안 콤퓨터 화면을 끄지 않은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겨우 나 하나의 방송만을 걱정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열명 가까운 얼굴들의 첫걸음 하나하나를 함께 챙겨야 하는 자리에 서있었다.

돌이켜보면 이 회사는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리고 시작한것이 아니였다. 성원 한사람 한사람을 붙들어 앉히고, 그 한사람 한사람이 저마다의 몫을 해내는것을 지켜보는 사이 어느덧 여기까지 자라온것이였다.

클리셰 네 사람이 3D의 몸을 얻은 그 구월의 이틀도, 크게 보면 그런 자람의 한 매듭에 지나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매듭 하나하나가 결코 작지 않다는것을, 그 몇달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힘주어 적어두고싶다.

시부키동지는 그 뒤로도 여전히 오락에서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실력을 뽐냈고, 동지는 여전히 묵묵하고 성실하게 저 할 일을 해내었다. 나나동지는 조금씩 긴장을 벗어던지며 저만의 색깔을 찾아갔고, 리코동지는 여전히 용암을 사랑하듯 위태로우면서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넷은 그 뒤로도 서로를 다독이며 함께 자랐다. 시부키동지와 동지가 실력차를 메꾸어가며 오락을 함께 하는 모습이나, 나나동지와 리코동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모습을 나는 지켜보며 이 넷이 그저 한 기수로 묶인것이 아니라 진짜 한식구가 되어가고있다는것을 느꼈다.

그해 겨울 넷은 회사의 모든 성원과 함께 처음으로 큰 무대에 나란히 서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뒤에 다시 자세히 적을 자리가 있을것이다. 지금은 다만 이 네 사람이 그림에서 몸으로 건너온 그 이틀을 여기에 새겨두는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그 구월의 사무실 공기를 떠올려본다. 아직 다 걷히지 않은 아침 안개와, 여섯시 정각마다 켜지던 화면과, 그 화면속에서 저마다 처음으로 몸을 얻어 움직이던 네 사람의 표정을. 그리고 그 옆에서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던 나 자신의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그날 밤 사무실을 나서기 전, 나는 불을 끄다 말고 다시 한번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침의 그 옅은 안개는 이미 걷혀 있었고, 대신 초가을 밤하늘에 별 몇점이 드문드문 돋아나 있었다. 나는 그 별들 사이 어딘가에 시부키동지, 동지, 나나동지, 리코동지의 이름을 하나씩 걸어보는 시늉을 하다가 픽 웃고는 스위치를 내렸다.

별자리라는것은 하루아침에 그려지지 않는다. 한점 한점의 별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을 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것들을 이어 하나의 자리를 그릴수 있게 되는 법이다.

이 회고록의 이 권을 두고 나는 스스로 《더 큰 별자리》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름에 값하는 첫 별 넷이 바로 이 구월의 이틀 사이 저마다의 몸을 얻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한마디만 더 보태고싶다. 클리셰 넷이 이렇게 몸을 얻어 자란 그 며칠 뒤, 회사 문을 두드리는 또 한사람의 새 얼굴이 있었다는것을 말이다. 그 별자리는 이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더 크게 늘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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