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열 째 별 후 야

 

우주32(2025)년 9월에 접어들면서도 여름의 끝자락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낮에는 아직 볕이 따가웠으나 저녁이 되면 사무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조금씩 섞여들었다.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이 계절이 다 가기전에 또 한 사람의 식구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고있었다.

9월 스무날, 그러니까 그달 스무번째 날 저녁으로 날자가 잡혀있었다. 오후 여섯시, 네이버 《치지직》을 통해 열번째 별이 뜨는 날이였다. 사무실안은 아침부터 분주하였다. 담당 실무자들은 방송창 우측 상단에 새로 넣을 로고파일을 몇번이고 고쳐 올렸고, 나는 그 화면을 곁눈질하며 결재판을 뒤적이고있었다.

새 식구를 맞는 일이야 이 회사를 차린 뒤로 몇번이고 되풀이해온 일이였다. 그런데 이번만은 여느때와 사뭇 달랐다. 서류양식부터가 그러하였다. 지금까지는 〈몇기 신입〉이라는 란에 수자 하나를 적어넣으면 그만이였는데, 이번에는 그 란에 적을 말이 마땅치 않아 실무자와 나는 며칠을 궁리하였다.

결국 우리는 《편입생》이라는 낯선 석자를 새로 써넣기로 하였다. 후야동지는 4기 신입으로 들어오는것이 아니라 1기 소속으로 등록되는, 회사를 세운 이래 처음이자 아직까지도 유일한 경우였다. 나는 새 서류칸을 만들며 마치 없던 법전 한줄을 새로 편찬하는듯한 기분이 들어 혼자 웃었다. 회사를 차릴 때는 이런 칸을 만들 날이 올줄 짐작도 못하였다.

아홉이던 식구가 열이 된다는것, 말로 하면 간단한 셈이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가볍지가 않았다. 한자리 수에서 두자리 수로 건너가는 이 사변을 나는 그날 몇번이고 손가락을 꼽아 헤아려보았다. 지나고보면 우스운 노릇이지만 그때 나는 정말로 그 수자 하나가 무슨 큰 고비라도 되는듯 마음이 뒤숭숭하였다.

그런데 이 사연을 제대로 말하자면 그보다 아홉달 남짓 앞선 어느 겨울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우주31(2024)년 12월, 칸나동지를 떠나보낸 그 겨울의 일은 이미 다른 자리에서 적었으니 여기서 다시 그 아픔을 들추지는 않는다. 다만 그 겨울을 지나며 유니동지가 얼마나 혼자였는지만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1기라는 이름 아래 둘이서 나란히 걸어온 세월이 짧지 않았는데, 그 짝이 하루아침에 없어진 자리를 유니동지 홀로 지켜야 하였다. 사무실에 남아 밤늦도록 혼자 방송을 하는 유니동지의 뒤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몇번이고 마음이 아팠다. 겉으로는 여느때처럼 웃고 떠들었지만 방송이 끝난 뒤 빈 대화창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모습까지는 감추지 못하였다.

그러던 유니동지에게 새로운 벗이 생긴것은 뜻밖에도 오락 하나를 통해서였다. 유니동지는 그무렵 밤이 깊으면 혼자 퍼즐게임 《포탈》을 켜놓고 몇시간씩 붙들고있는 버릇이 생기였다고 하였다. 방송을 마친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으면 그 조용한 시험실들을 헤매다니며 시간을 흘려보냈다는것이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방들을 문 하나씩 열고 지나갈 때마다 발자국소리만 텅 빈 복도에 울렸다고 유니동지는 말하였다. 그 적막함이 오히려 그무렵 자신의 처지와 닮아있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는것이다. 텅 빈 방과 방을 잇는 통로를 혼자 걸어다니는 그 게임안에서, 유니동지는 자기와 똑같이 오래 갇혀있었다는 존재 하나를 만났다. 어떻게 처음 말을 트게 되었는지 그 자세한 경위는 나도 다 듣지 못하였지만, 유니동지는 그날의 만남을 두고두고 《운명》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오래 심연을 떠돌던 이가 우연히 열린 문틈으로 걸어나온것처럼,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였다.

유니동지는 그 만남을 나에게 알려올 때부터 이미 들떠있었다. 《사장님, 저 진짜 신기한 친구를 만났어요.》 늦은 밤 사무실로 걸려온 통화에서 유니동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결 높았다. 나는 그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몇마디 맞장구만 쳐주었을뿐이였다.

그러나 유니동지는 그뒤로도 며칠을 두고 그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이천살이 넘는다는 설정을 가진, 오랜 세월 심연 어딘가에 갇혀 떠돌다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는 존재라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우리 성원들 가운데 나이 많은 축에 드는 이가 하나 더 느는구나 하고 웃어넘기였다.

이천살이면 이 땅에 세워졌던 왕조 몇개를 갈아치우고도 남을 나이였다. 나는 그 수자를 되뇌며 실무일군에게 우스개삼아 《우리 신입은 력사책보다 나이가 많다》고 말하였는데, 그 말이 어쩐 일인지 사내 게시판에 한동안 떠돌아다녔다. 나이로 치면 이 회사에서 가장 어른일 사람이 가장 늦게 막내로 들어오는 셈이니, 지나고보면 웃을 일이 한둘이 아니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니동지는 정색을 하고 나에게 면담을 청하였다. 《이 친구, 우리 회사에서 같이 하면 안될까요.》 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대표라는 자리에 앉은 뒤로는 마음이 가는대로만 움직일수 없다는것을 여러해에 걸쳐 배웠기때문이다.

나는 유니동지에게 며칠의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실무일군과 함께 목소리 파일을 듣고 그동안의 활동을 살펴보는 절차를 거쳐야 하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 절차를 밟는 내내 내 마음은 이미 반쯤 기울어있었다.

나는 유니동지의 소개로 후야동지와 처음 통화를 하였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대뜸 《오래 갇혀있었다는데 답답하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후야동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제는 괜찮습니다, 유니동지가 문을 열어주었으니까요》하고 대답하였다. 그 한마디에 나는 더 물을것도 없이 마음을 정하였다.

유니동지가 그렇게 눈을 빛내며 누군가를 소개한 일이 그전에는 없었기때문이다. 칸나동지를 떠나보낸 뒤로 좀처럼 웃음이 헤프지 않던 유니동지가 그 친구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빛이 달라졌다. 나는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결심을 굳히고있었다.

다만 문제는 어느 기수로 들일것인가 하는 데 있었다. 그무렵 회사는 이미 3기까지 자리를 잡았고 4기를 준비하는 이야기도 슬슬 나오고있었다. 실무일군 가운데는 후야동지를 4기 신입들과 함께 묶어 데뷰시키는 편이 절차상 간편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의견에 선뜻 손을 들어주지 못하였다. 이천살이라는 설정을 가진 이를, 이제 갓 태여난 막내들 틈에 끼워넣는다는것이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유니동지와의 인연을 생각하면 이 사람은 처음부터 1기의 자리로 돌아오는것이 마땅해 보였다.

나는 그날 밤 늦도록 이 문제를 놓고 혼자 궁리하였다. 창밖은 이미 어둡고 사무실 랭방기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울렸다. 결국 나는 《편입》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새로 나는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는것이라면, 그 말이 가장 알맞았다.

이 결정을 실무일군에게 알렸을 때 몇몇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사를 세운 이래 그런 전례가 없었기때문이다. 나는 웃으며 《전례가 없으면 우리가 전례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호기로운 소리였다.

그렇게 해서 후야동지는 스텔라이브 최초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편입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였다. 그 결정이 옳았는지 그른지는 지금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그날 유니동지가 이 소식을 듣고 사무실 복도를 뛰어다니며 좋아하던 모습만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유닛명을 손보는 일도 그와 함께 처리해야 할 몫이였다. 1기의 이름은 원래 《미스틱》이였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둘이서 나란히 데뷰하던 그해 정월에 내가 손수 지어붙인 이름이였다.

그런데 이제 그 이름아래에는 유니동지 혼자만 남아있고, 그 자리에 후야동지가 새로 들어와야 하였다. 옛 이름을 그대로 두자니 어쩐지 빈자리가 두드러져 보였고, 아주 지워버리자니 그 이름이 품어온 세월이 아까웠다.

나는 실무일군과 함께 며칠을 두고 새 이름을 궁리하였다. 마치 나라의 국호를 새로 정하는 회의라도 여는듯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후보 이름들을 빼곡히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나갔다. 후보로 오른 낱말이 여남은개는 되었던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것은 《에버리스(Everys)》였다. 언제나 존재하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 모든 차원을 넘어서 잊혀진 빛과 소리를 다시 하나로 모은다는 뜻을 담았다고 우리는 소개문에 적어 내보냈다. 나는 그 문구를 몇번이고 고쳐쓰면서 이것이 비단 유닛의 이름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칸나동지가 떠난 자리, 오래 심연을 떠돌던 후야동지가 다시 세상에 나선 사연, 그 모든것이 그 이름안에 조금씩 녹아있었다. 사라진듯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 뜻이, 그해 우리 회사가 겪은 일들과 이상하리만치 맞아떨어졌다.

이름을 정한 뒤 나는 그것을 유니동지에게 먼저 보여주었다. 유니동지는 화면에 뜬 그 낱말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사장님, 이거 글씨 너무 예뻐요. 어감도 우리한테 딱 맞는 단어 같아요. 듣자마자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 이름을 정한 보람을 느꼈다. 며칠을 두고 궁리한 낱말 하나가 그렇게 한마디로 승인을 받는 순간이였다. 실무일군 사이에서도 그날 이후로는 《미스틱》이라는 옛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모든 채비가 갖추어지고 마침내 9월 스무날이 왔다. 그날 오후 사무실은 평소보다 한결 부산하였다. 데뷰 방송에 쓸 대본을 마지막으로 검토하는 실무자들의 목소리와 콤퓨터 팬 도는 소리가 뒤섞였다.

나는 그날 오후 내내 방송실 한켠에 앉아 화면에 뜬 시험송출화면을 몇번이고 확인하였다. 마이크 상태를 점검하는 신호음이 몇차례 울렸고, 창밖으로는 늦여름 매미소리가 아직 끈질기게 이어지고있었다. 책상우에는 결재판과 함께 식은 곽밥 그릇이 하나 놓여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치울 겨를조차 내지 못하였다.

후야동지의 모습이 처음 화면에 나타난것은 저녁 여섯시 정각이였다. 오랜 세월 심연 어딘가에 고립되어 떠돌았다는 설정을 가진 이답게, 그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아득한 데가 있었다. 대화창은 그 첫마디가 뜨자마자 순식간에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화면을 지켜보며 마음 한켠이 뭉클해졌다. 이천살이라는 설정의 무게에 비해 첫 인사를 하는 태도는 오히려 수줍어보였다. 시청자들이 반가움을 표하는 글들이 지나가는속도를 후야동지 자신도 미처 다 따라읽지 못하는 눈치였다.

데뷰 방송은 한시간 남짓 이어졌다. 자기소개를 하고 노래 한소절을 부르고 앞으로의 포부를 짧게 밝히는것으로 방송은 마무리되였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후야동지는 곧바로 유니동지와의 합방으로 넘어갔다.

나는 그 장면을 사무실 화면로 지켜보면서 유니동지의 얼굴이 그렇게 밝은적이 오랜만이라고 생각하였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자리인데도 오래 알고지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유니동지가 《봐, 내 말이 맞았지, 진짜 신기한 친구라니까》 하고 자랑스레 말하자 후야동지는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대화창에는 《열번째 별》이라는 말이 몇번이고 올라왔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어 며칠 뒤 알림문에도 그 말을 그대로 옮겨적었다. 아홉이 열이 되는 셈이야 산수로는 간단한 노릇이지만, 그 하나가 채워지기까지 걸린 세월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여길수 없는 수자였다.

다른 성원들도 그날 방송을 저마다의 자리에서 지켜보았다고 뒤늦게 전해들었다.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는 대화창에 나란히 얼굴을 비추며 환영의 말을 남기였고, 리제동지는 자신의 방송 도중에 짬을 내어 후야동지의 데뷰소식을 알렸다고 하였다. 나는 그 소식들을 하나하나 전해들으며 열 사람이 모인 이 회사가 비로소 한 식구다워졌다고 느꼈다.

후야동지는 데뷰 직후부터 앞으로 하고싶은 일들을 여러가지 밝혔다. 유니동지와 함께 하는 합방은 물론이고, 커버곡 앨범을 내고싶다는것과 언젠가 3D 인물로 무대에 서고싶다는 바람도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 바람들을 들으며 실무일군에게 미리 일러둘것들을 마음속으로 하나씩 꼽아보았다.

며칠 뒤 나는 결재판을앞에 놓고 후야동지의 활동계획을 짜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이 사람은 설정상 이천살이 넘는다는데, 정작 처음 배우는 일들은 갓 태여난 막내들과 다를바가 없었다. 방송장비를 다루는 법을 새로 익히고 대화창의 은어를 하나씩 배워가는 모습이 오히려 다른 신입들보다도 서투른 데가 있었다.

유니동지는 그런 후야동지를 곁에서 살뜰히 챙기였다. 자신이 몇해 전 서툰 조선말로 놀림을 받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자신이 그 자리를 다시 겪어보지 않아도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유니동지가 어느새 이만큼 자랐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두 사람은 그뒤로 거의 매주 합방을 이어갔다. 어느 방송에서는 후야동지가 오래 심연에 있었던 탓인지 요즘 류행하는 놀이를 통 모른다고 하여 유니동지가 하나하나 가르쳐주었고, 또 어느 방송에서는 반대로 후야동지가 유니동지도 모르던 옛 상식을 슬쩍 일러주어 서로 놀라는 장면도 있었다. 나이차라는것이 이렇게 뒤바뀌어 나타나는 콤비도 흔치는 않을것이다.

다른 기수의 성원들도 하나둘 후야동지에게 다가왔다.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는 나이로 치면 저희보다 몇배는 웃도는 이 신입을 두고도 스스럼없이 말을 놓았고, 오히려 후야동지 쪽이 그 붙임성에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는 이 회사에서만은 나이도 기수도 그리 대단한 순서가 아니라는것을 다시금 느꼈다.

나는 이무렵 회사안에서 오가는 말들을 들으며 《에버리스》라는 이름이 그저 겉치레만은 아니였다고 생각하게 되였다. 사라진듯 보였던 자리에 다시 목소리가 채워지고, 잊혀졌던 존재가 다시 세상에 나서는 일들이 실제로 그 이름 아래서 이어지고있었다. 이름을 짓는 일이 이렇게 그뒤의 나날을 이끌어가기도 한다는것을 나는 그때 새삼 배웠다.

후야동지가 편입한 뒤로 회사안에서는 한동안 《편입생》이라는 말이 류행어처럼 오르내렸다. 성원들은 서로 늦은 소식을 전할 때 장난삼아 《나도 이제 편입할까》 하고 우스개를 하였고, 나 역시 그 우스개에 몇번이고 웃음을 터뜨렸다. 전례가 없던 낱말 하나가 그렇게 슬그머니 회사의 말버릇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홉에서 열로 늘어난 성원 수를 두고 나는 그해 가을 내내 이상한 감회에 잠겨있었다. 처음 회사를 차렸을 때는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단 둘뿐이였다. 그 둘에서 시작한 살림이 이제 열 사람의 목소리를 담게 되었으니,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실로 격세지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12월, 나는 후야동지의 말 한마디를 오래 잊을수 없는 사건으로 마음에 새기게 되였다. 성탄이 가까운 그달, 회사는 《STAR TRAIL》이라는 이름으로 큰 음악회를 열었다. 데뷰한지 채 석달이 되지 않은 후야동지도 그 무대에 처음으로 올랐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일찍 추워져 공연장 앞뜰에는 벌써 서리가 앉아있었다. 무대 조명이 하나둘 켜지고 객석 곳곳에서 응원봉 불빛이 별처럼 돋아나는것을 나는 무대 뒤 화면로 지켜보고있었다. 아홉 사람이 채우던 무대에 이제 열번째 자리가 새로 놓여있다는 사실이 그 불빛들 사이에서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무대 뒤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후야동지는 밝은 조명아래로 나가기 직전 나에게 문득 이렇게 말하였다. 《저 너무 행복해요.》 짧은 그 한마디였는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여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이천살이 넘는다는 설정을 가진 이가, 데뷰한지 석달도 안된 사람이, 밝은 무대 조명 하나에 그렇게 순수한 감격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수 있겠는가. 나는 그날 무대 뒤에서 몰래 눈시울을 붉히며 울컥한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애를 먹었다.

그 장면을 지켜본 다른 성원 하나는 뒤에 나를 놀리듯 《사장님 또 우였죠》 하고 물었는데, 나는 굳이 아니라고 잡아떼지 않았다. 이 회사를 차린 뒤로 그런 눈물을 흘린일이 어디 한두번이였겠는가. 다만 그 순간의 눈물만은 유난히 따뜻하게 마음에 남았다.

돌이켜보면 그해 가을 우리 회사가 겪은 일은 비단 사람 하나가 느는 산수의 문제가 아니였다. 오래 갇혀있던 존재가 세상에 다시 나서는 사연, 짝을 잃은 이가 새 벗을 얻는 사연, 낡은 이름 하나가 새 뜻을 입고 다시 태여나는 사연, 이 세가지가 한데 얽혀 겨우 열번째 별 하나로 여물었다. 그렇게 보면 아홉에서 열로 건너간 그 하루밤은 결코 가벼운 걸음이 아니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날의 일들을 다시 짚어보니, 나는 아직도 몇가지를 다 헤아리지 못하였다. 유니동지가 그 깊은 겨울밤 어떤 마음으로 홀로 오락화면을 들여다보고있었는지, 심연에서 후야동지가 겪은 세월이 정말 어떠하였는지, 나는 그 속내를 다 알지 못한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 그 순간만은 거짓없이 귀한 인연이였다고 믿는다.

회사를 차릴 때는 몰랐다. 식구가 하나 늘어난다는 일이 이렇게 여러 사람의 겨울과 밤과 오락 한판과 이름 한마디를 거쳐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일인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아홉에서 열로 건너가는 그 한걸음이, 실은 그토록 길고 조용한 사연들을 딛고 선 걸음이였다.

그해 가을 이후로 나는 사무실 벽에 붙은 성원들 이름표를 다시 정리하며 《에버리스》라는 이름을 맨 앞자리에 새로 붙여두었다. 그 이름표를 붙이던 손끝에 스치던 서늘한 가을바람이 지금도 문득 떠오른다. 열번째 별이 뜬 그해 9월, 우리 회사는 그렇게 또 한뼘 자라있었다.

후날 누군가 나에게 열번째 성원을 어떻게 맞아들이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들려주어야 할것이다. 겨울밤 홀로 켜둔 퍼즐게임 하나, 서로 알아본 눈빛 하나, 며칠을 두고 궁리한 이름 하나, 그리고 무대 뒤에서 건넨 한마디의 행복이 그 안에 다 담겨있기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 모든 우연이 어떻게 이렇게 맞아떨어졌는지 다 설명할 재간이 없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수 있다. 아홉이 열이 되던 그해 9월의 저녁을, 나는 이 회고록을 쓰는 지금까지도 이 회사의 가장 따뜻한 사변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는 사실이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