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썸 네 일 논 란

 

우주32(2025)년의 시월은 예년보다 늦게 찾아왔다. 구월 내내 물러가지 않던 더위가 시월 중순에야 겨우 한풀 꺾이여, 사무실 창을 열면 서늘한 바람이 손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날 오전에도 여느때처럼 콤퓨터앞에 앉아 다음주 방송편성표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창밖으로는 은행잎이 절반쯤 노랗게 물들어있었고, 복도 저쪽에서는 편집실 직원들이 렌더링 소리에 섞여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회사를 차린 뒤로 나는 아침마다 전날 올라온 영상들의 반응을 한바퀴씩 훑어보는 버릇이 붙었다. 시청회수가 어떻고 감상글난 분위기가 어떤지를 살피는 일은 성가시다면 성가신 일이지만, 나는 그것을 결코 남에게 미루지 않았다. 사장이 된 사람이 이런 자잘한 일까지 손수 챙겨야 하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지만, 나는 우리 성원들이 어떤 말을 듣고 사는지를 나 스스로 알아야 회사를 옳게 꾸릴수 있다고 믿었다.

그날은 유난히 미기가 자주 내 방문을 두드렸다. 미기는 내 오른팔이라 부를만한 사람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나보다 먼저 알아채고 나에게 물어다주는 성정이였다. 세번째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에는 표정이 여느때와 사뭇 달랐다. 웃음기가 절반쯤 걷힌 얼굴이였다.

《사장님, 이거 좀 보셔야겠습니다.》 미기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화면쪽으로 몸을 돌렸다. 화면에는 타비동지의 방송에 얼마전 올라간 영상 하나가 떠있었다.

영상의 제목은 《에겐 뿡댕이가 좀 많네》였다. 나는 처음 그 제목을 보고서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려 하였다. 타비동지 특유의 짓궂은 말버릇이 묻어나는 제목이였고, 그런 제목이야 우리 방송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나오는 일이였기때문이다.

그러나 미기가 정작 나에게 보여주려 한것은 제목이 아니라 미리보기 그림이였다. 화면 한구석, 타비동지가 손끝으로 무언가를 가볍게 집는듯한 자세를 취하고있었다. 언뜻 보아서는 그저 흔한 손짓의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손모양이 문제라는겁니다.》 미기가 화면을 확대하며 말하였다. 나는 미간을 좁히고 그 손끝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엄지와 검지를 살짝 겹쳐쥔 모양이였다.

나는 그제서야 어렴풋이 짚이는 데가 있었다. 몇해전부터 인터네트 여기저기서 시비가 끊이지 않던 바로 그 손짓이였다. 본디 대수롭지 않던 손모양 하나가 어느 순간부터 특정한 뜻으로 읽히기 시작하여, 그것을 방송이나 광고에 무심코 내걸었다가 곤욕을 치른 이들이 이미 여럿 있다는 소문을 나도 들어 알고 있었다.

《설마 진짜로 그런 뜻이 있었겠니.》 나는 반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미기는 고개를 저으며 콤퓨터 화면을 나에게로 더 밀어놓았다. 벌써 여러 게시판에 그 미리보기 그림을 캡처한 글들이 올라와있었다.

글들의 논조는 제각각이였으나 요지는 하나로 모아졌다. 스텔라이브라는 회사가, 혹은 적어도 그 미리보기 그림을 만든 손이, 특정한 진영의 표현을 은근슬쩍 방송에 실어날랐다는것이였다. 나는 그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속이 답답해지는것을 느꼈다.

글아래에는 캡처와 함께 화살표까지 그려넣은 그림도 붙어있었다. 손끝의 각도가 몇도쯤 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나는 그 정성스러움에 헛웃음이 나면서도 결코 웃어넘길 계제가 아니라는것을 이내 깨달았다. 인터네트이라는 곳은 이렇게 사소한것 하나를 두고도 순식간에 대군을 몰아 진지를 구축하는 재주가 있었다.

오전 열시가 조금 지났을무렵부터 홍보실 전화가 쉴새없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어느 언론사에서는 벌써 취재 문의를 넣어왔고, 다른 곳에서는 아예 기사 초안을 써놓고 회사측 답변만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그 전화벨소리를 들으며 마치 어디선가 경보가 울리는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후날 이 하루를 두고 성원들앞에서 짐짓 근엄한 얼굴로 《우리 회사 력사상 가장 분주하였던 오전》이라 이름 붙이곤 하였다. 전화벨 소리와 콤퓨터 건반 두드리는 소리가 뒤섞여 사무실 전체가 마치 무슨 작전상황실처럼 부산스러웠으니, 지나고 나서 웃자고 그런 이름을 붙였을뿐이지 그 순간만은 결코 웃을 겨를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한참 앞선 시절, 타비동지가 아직 데뷰도 하기전의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그때 나는 신인들을 직접 붙들고 방송에서 조심해야 할것들을 하나하나 가르치던 시절이였다. 타비동지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축이였다.

말투 하나, 몸짓 하나까지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를 두고 다른 성원들은 우스개삼아 내가 타비동지를 《방망이로 팼다》고 표현하곤 하였다. 물론 실제로 방망이를 든 일은 없었다. 다만 방송 하나를 앞두고 몇번이고 되짚어가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의 성정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그렇게 애를 태워가며 키운 후배가 몇해가 지난 오늘, 저 스스로는 아무 뜻도 없이 취한 손짓 하나로 이런 곤욕을 치르게 되었으니 내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나는 미기에게 타비동지를 불러오라고 일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비동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평소의 발랄한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으며 우선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사장님,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타비동지의 목소리가 떨리고있었다. 《그냥 물건 하나 집는 시늉을 한거였는데, 그게 그런 뜻으로 읽힐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였어요.》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우선 진정하라고 하였다. 《네가 무슨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런 자세를 취하였다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다.》

타비동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날 오후 곧바로 관련 부서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편집실, 홍보실, 그리고 문제의 미리보기 그림을 만든 작가측 담당자까지 한자리에 앉혔다.

회의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나는 우선 사실관계부터 차근차근 짚어나가자고 하였다. 언제 그 미리보기 그림이 만들어졌으며, 어떤 의도로 그런 자세를 골랐는지부터 확인해야 하였다.

미리보기 그림 작가는 자신은 그저 흔히 쓰는 손짓 도안 가운데 하나를 골랐을뿐이라고 해명하였다. 실제로 그 손짓은 여러 참고자료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자세였다. 나는 그 해명을 들으며 세상일이라는것이 본디 의도와 무관하게 오해를 사기도 하는 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일이 그냥 넘어갈수 있는것은 아니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몇가지를 분명히 하였다. 첫째로 회사의 공식 립장을 빠르게 정리하여 밝힐것, 둘째로 문제가 된 미리보기 그림을 즉시 내릴것, 셋째로 앞으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절차를 다시 짤것이였다.

《의도가 없었다고 우리끼리만 믿고 넘어가면 안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였다. 《밖에서 보기에 오해살만한 여지가 있었다면, 그 여지를 만든 절차 자체를 손봐야지요.》

회의 도중 법무를 맡아보는 직원 하나가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사장님, 굳이 이렇게까지 빨리 립장을 내야 할까요. 좀더 시간을 두고 여론을 살펴본 다음에 움직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시간을 끄는 사이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법이고, 우리가 침묵하는만큼 밖에서는 온갖 억측이 대신 그 자리를 채우게 마련이였다.

《늦게 내는 사과보다는 서투르더라도 빠른 사과가 낫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회의를 서둘렀다. 직원들은 저마다 자신이 맡은 몫으로 흩어져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편집실은 곧바로 문제의 미리보기 그림을 내리는 작업에 들어갔고, 홍보실은 언론사들의 문의에 응할 준비를 갖추었다.

미기가 그 자리에서 초안을 잡아왔다. 나는 그 초안을 몇번이고 고쳐 읽으며 문구 하나하나를 다듬었다. 사과문이라는것은 짧은 몇줄에 지나지 않지만, 그 몇줄을 쓰는데 하루 온종일이 걸리는 법이다.

결국 우리는 이튿날 공식 립장을 내놓기로 하였다. 《어떠한 의도도 담겨있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는 문구를 첫머리에 놓았다. 나는 이 한마디를 두고도 여러번 고쳐 썼다. 너무 방어적으로 들리지 않으면서도, 사실관계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였기때문이다.

립장문에는 또한 기존 미리보기 그림 작가와의 협업을 이어가지 않기로 하였다는 사실도 담았다. 이것은 누구를 벌주려는 뜻이 아니라, 신뢰가 흔들린 자리에서는 다시 시작하는것이 서로에게 낫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였다. 작가측도 그 뜻에 순순히 동의하였다.

아울러 기존에 만들어진 다른 미리보기 그림들도 순차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교체하겠다는 약속을 덧붙였다. 이 작업은 말이 순차적이지, 실제로는 편집실 사람들이 며칠 밤을 새워야 하는 일이였다. 지난 몇해간 쌓인 미리보기 그림이 수백장을 헤아렸기때문이다.

나는 그 며칠 사이 편집실을 몇번이고 오가며 진행상황을 살폈다. 직원들은 화면앞에 앉아 지난 미리보기 그림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혹시라도 오해살만한 구석이 없는지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치 지난 세월의 자취를 하나하나 다시 검열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가도, 하고 나면 마음이 놓입니다.》 편집실의 한 직원이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미리 없애는 일이란 본디 티가 나지 않는 법이나, 그렇다고 소홀히 할수 없는 일이였다.

검수 절차를 새로 짜는 일도 그 며칠 사이 함께 이루어졌다. 이전에는 작가 한사람이 그린 미리보기 그림을 담당 편집자 한사람만 확인하고 그대로 올리는 구조였다. 나는 이 구조를 바꾸어 최소한 두단계 이상의 눈을 거치도록 하였다.

《한사람 눈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것도 다른 눈으로 보면 다르게 보일수 있다.》 나는 회의 자리에서 그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앞으로 그 다른 눈을 하나 더 두기로 하자.》

성원들 사이에서도 이 일은 금세 화제가 되었다. 유니동지는 소식을 듣고 곧장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사장님, 타비 많이 속상해하지 않아요?》하는 걱정스러운 물음이였다.

나는 유니동지에게 타비동지가 잘 견디고 있다고 답해주었다. 실제로 타비동지는 그 며칠 사이 방송을 쉬지 않고 이어갔다. 다만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하였다.

동지도 소식을 듣고 사무실에 찾아와서는 《저도 방송할때마다 손짓 조심해야겠어요》하며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렇게까지 조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모두가 한번씩 더 생각해보는 버릇은 들이자.》

히나동지는 합방 중에 이 일을 슬쩍 언급하며 타비동지를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고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듣고 성원들끼리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새삼 대견스러웠다. 회사라는것이 아무리 절차를 잘 갖추어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 그것을 받쳐주지 않으면 헛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제동지는 나에게 따로 문자를 보내와 《사장님 이번에도 발빠르게 움직이였네요, 역시 사장님》하며 짐짓 치켜세우는 말을 건넸다. 나는 그 말에 쑥스러워하면서도 내심 고마웠다. 시부키동지와 리코동지도 채팅으로 안부를 물어왔고, 마시로동지와 나나동지, 후야동지까지 저마다 한마디씩 타비동지를 응원하는 말을 남기였다고 하니, 나는 우리 회사의 성원들이 서로를 이렇게까지 챙긴다는 사실에 새삼 뭉클해졌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또 하나 묵은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회사를 처음 차렸을무렵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그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누구에게 먼저 알려야 하는지, 어떤 말을 어느 순서로 해야 하는지조차 정해진 바가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 일은 그래도 한결 정연하게 처리되었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사건이 알려진지 하루만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그 다음날로 립장을 밝혔으니 말이다. 세월이 지나며 우리도 이런 풍파를 다루는 법을 조금씩 배워온 셈이였다.

립장문이 나간 뒤로 여론은 비교적 빠르게 가라앉았다. 물론 개중에는 여전히 회사의 해명을 믿지 않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반응은 회사가 빠르게 대응하였다는 점을 두고 긍정적이였다.

나는 그 반응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며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개운치 않은 여운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의도가 없었다고 하여도, 누군가에게는 그 손짓 하나가 상처로 남았을수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때문이다.

타비동지는 그날 저녁 나에게 따로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사장님이 이렇게까지 나서주셔서 정말 마음이 놓였어요.》 나는 그 말에 손을 내저으며 대답하였다. 《네가 잘못한게 없는데 내가 나서는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이런일로 마음고생 시켜서 미안하다.》

타비동지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조금 웃었다. 《사장님도 참,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오히려 회사가 이렇게 빨리 움직여줘서 감사한걸요.》 나는 그 웃음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 일을 두고 나는 두고두고 짐짓 력사적인 사변이라도 겪은듯이 성원들앞에서 너스레를 떨곤 하였다. 《우리 회사가 손짓 하나로 온 나라를 뒤흔든 대사변을 치렀다》는 식으로 말하면 성원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듯 웃음을 터뜨렸다. 웃자고 하는 말이였지만, 그 밑바닥에는 진지한 반성이 깔려있었음을 나만은 알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일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대단한 사변은 아니였다. 시청회수 몇백만짜리 영상의 미리보기 그림 하나를 두고 며칠 시끄러웠을뿐, 시간이 지나면 대개는 잊혀지는 종류의 소동이였다. 그러나 나는 이런 작은 소동일수록 오히려 더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믿었다.

큰 사고는 사람들이 미리부터 경계하기 마련이지만, 작은 소동은 방심한 틈을 타 스며드는 법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사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사람은 큰일 못지않게 작은 일에도 눈을 밝혀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굳히게 되였다.

검수 절차를 강화한 뒤로 편집실의 일감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직원들은 이따금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였다. 《사장님, 이러다 썸네일 하나 올리는데 하루가 다 갈것 같아요.》

나는 그 볼멘소리에 웃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조금 느려도 좋으니 우리 손을 거쳐 나가는것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빠른것보다 미더운것이 먼저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투덜거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차츰 그 새 절차에 익숙해져갔다.

새로 짠 검수 절차는 이후로도 계속 다듬어져갔다. 처음에는 두단계였던것이 나중에는 상황에 따라 세단계까지 늘어나기도 하였다. 나는 이 절차가 성가시다고 여기기보다는, 우리가 그만큼 신중해졌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 사건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안에서는 이 일을 두고 하나의 우스개 규칙이 생겨났다. 새로운 손짓이나 몸짓을 방송에 쓰기전에는 반드시 미기에게 먼저 물어보라는것이였다. 성원들은 우스개삼아 이를 《미기 검열관》이라 불렀다.

미기 본인도 이 별명을 싫지 않게 받아들였다. 《제가 검열관이 아니라 안전벨트라고 생각해주세요.》 미기는 그렇게 농담을 던지곤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과연 옳은 비유라고 생각하였다.

타비동지는 그 뒤로도 한동안 손짓 하나를 취할 때마다 스스로 몇번씩 확인하는 버릇이 붙었다고 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결코 나쁜 버릇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무심함이 죄가 되는 시대에는,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미덕이 되는 법이다.

나는 그무렵 성원들과의 자리에서 이 일을 두고 또 한번 짐짓 엄숙하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번 시월의 사변으로 값진 교훈 하나를 얻었다.》 성원들은 그 말투가 우스웠는지 다들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정색을 하고 말을 이였다. 《작은 손짓 하나에도 세상은 눈을 밝히고 있다는것,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월이 다 가고 십일월로 접어들무렵, 이 소동은 대체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옅어져갔다. 새로운 화제거리들이 그 자리를 채워나갔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방송으로 돌아갔다. 타비동지도 예전의 발랄한 기색을 조금씩 되찾아갔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그저 지나간 소동으로만 남겨두고싶지 않았다. 나는 그무렵 회사의 신입 편집자들을 앉혀놓고 이 일을 사례로 들어 교육을 하였다. 《의도가 없었다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해살 여지를 미리 없애는것이 우리의 일이다.》

신입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이 소동이 헛되지 않았다는것을 느꼈다. 하나의 작은 곤욕이, 뒤에 오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교훈으로 남을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가 겪은것은 크게 보아 대수롭지 않은 소동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사를 꾸려나가는 사람의 자리에서는 그런 작은 소동 하나하나가 결코 가벼울수 없다는것을, 나는 그해 시월을 지나며 다시금 깨달았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언제나 뜻하지 않은 오해가 끼여들 여지가 있다. 다만 그 오해가 생기였을 때 얼마나 빠르고 정직하게 마주서느냐가, 그 회사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그날 그 잣대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서있으려 애를 썼다.

타비동지는 그 뒤로 방송에서 종종 이 일을 스스로 우스개삼아 꺼내기도 하였다. 《저 이제 손짓 하나도 마음대로 못해요》하며 웃어넘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가 이 일을 이미 훌훌 털어내였다는것을 느끼고안도하였다. 아픈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웃음의 재료가 되는 법이다.

그해 늦가을, 우리 회사는 이 작은 소동을 뒤로 하고 곧 또 다른 큰 일을 앞두고 있었다. 성원 전원이 처음으로 한 무대에 함께 서게 될 날이 머지않아 다가오고 있었던것이다. 나는 그 준비에 몰두하면서도, 이 시월의 소동을 잊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새겨두었다.

크고 화려한 무대를 앞둔 회사일수록, 작은 곳에서부터 신뢰를 다져두어야 한다는것을 나는 그때 다시 배웠다. 무대우에서 성원들이 마음껏 빛나려면, 그 뒤에서 우리가 놓치는것 없이 촘촘히 살펴두어야 하였다. 이 시월의 작은 소동은, 그 큰 무대를 앞두고 우리에게 온 하나의 예방주사와도 같은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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