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 혼 하 자 던 만 우 절
우주33(2026)년 사월 초하루는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사무실 창턱에 올려둔 작은 화분에서도 어느새 새순이 돋아 있었고, 한낮의 볕은 완연한 봄기운을 띠였으나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다. 나는 그날 오후 일찍부터 방송준비를 서둘렀다. 콤퓨터 두대가 나란히 돌아가며 랭각기소리를 냈고, 한쪽 화면에는 그날 방송의 진행표가 떠 있었다.
책상우에는 마이크와 머리수화기이 늘 놓이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고, 카메라 렌즈에는 아침에 닦아둔 자국이 아직 남아있었다. 창밖으로는 봄볕에 나선 사람들이 두런두런 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오늘 방송이 여느 날과는 조금 다르리라는 예감을 가지고있었다.
사월 초하루, 곧 만우절이라는 날은 우리 방송가에서 결코 만만한 날이 아니였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성원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과 설렘이 함께 감돌았다. 누구든 이날 하루만큼은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불문률같은것이 오래전부터 자리잡고있었다.
그 불문률을 가장 부지런히 지켜온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블루동지를 꼽겠다. 우주27(2020)년의 만우절, 상대를 바꾸어 《우결》을 진행한다는 특집을 꾸민 그날 블루동지는 평소보다 훨씬 짙고 직설적인 언사를 마구 쏟아내여 시청자들 사이에서 《김레드》라는 새 이름 하나를 얻고 말았다. 그 이름은 한동안 대화창에서 농으로 오르내리였다.
이날, 곧 우주33(2026)년의 만우절에도 블루동지는 한술 더 떴다. 방송을 켜기 며칠 앞서 이미 《유튜브》와 《치지직》의 방송이름을 통째로 《천사 블루》로 바꾸어놓은것이다. 장난삼아 벌인 일이 그만 정책에 걸려 그뒤로 한달을 꼬박 그 이름을 달고 방송을 해야 하였으니, 하루의 장난이 한달의 형벌로 돌아온 셈이였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듣고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니 이날 방송을 준비하는 내 마음도 례사롭지 않았다. 무슨 장난을 쳐도 이상하지 않을 날에, 무슨 말을 들어도 곧이들어서는 안될 날에, 나는 새로운 손님 하나를 방송에 불러들이기로 하였다. 온양선녀라는 이름으로 사주를 봐주는것으로 익히 알려진 이였다.
그 즈음 다른 성원들도 저마다 이날에 맞추어 짓궂은 장난 하나씩을 준비해두고 있다는 소문이 사무실안에 돌았다. 누구는 내용물 예고를 거짓으로 올려두었다는 말이 있었고, 누구는 방송 시작 인사말부터 짐짓 딴사람 흉내를 낸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 소문들을 흘려들으며 내 몫의 장난이나 잘 치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사주코너라는것은 원래 우리 방송에서 이따금 여는 자리였다. 성원들의 신수를 짚어보고 그해의 운수를 가늠해보는 정도의 가벼운 오락이였다. 그러나 이날만은 온양선녀를 부른 리유가 따로 있었으니, 다름아니라 블루동지와 나의 궁합을 한번 짚어보자는것이였다.
방송이 시작되자 대화창에는 곧바로 반가운 이름들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오늘 만우절인데 뭔 사고 치려고 사주코너까지 열었나요》 하는 말이 잇달았고, 개중에는 진작부터 낌새를 챈 이들도 있어 《설마 또 그거 하려고》 하는 짐작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나는 그런 채팅을 곁눈으로 읽으며 짐짓 태연한 얼굴을 하였다.
블루동지는 방송 시작부터 흥이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평소라면 느긋하니 인사말부터 늘어놓았을 사람이 그날은 대뜸 《오늘 뭐 보러 온 사람 많죠》 하고 능청스레 운을 떼였다. 그 말에 대화창이 또 한번 들썩였다.
온양선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먼저 내 생년월일시를 물었다. 나는 순순히 답하였고, 화면 한켠에는 사주팔자를 풀어놓은 표가 하나둘 채워지였다. 마이크 너머로 종이 넘기는 소리인지 카드 넘기는 소리인지 모를 사각거림이 간간이 섞여들었다.
《강지님은 재물운이 참 좋네요.》 온양선녀가 그렇게 운을 떼자 대화창은 곧바로 《역시 사장님》이라는 말로 도배가 되였다. 나는 웃으며 《그럼 우리 회사도 좀 잘 되게 해주세요》 하고 넉살을 부렸다. 그렇게 몇마디 덕담이 오간 뒤에야 온양선녀는 다음 순서로 블루동지의 사주를 짚어보기 시작하였다.
블루동지의 차례가 되자 온양선녀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분은 애정운이 참 독특하시네요》 하고 말하였다. 블루동지는 그 말에 머리수화기를 고쳐쓰며 《독특하다는게 좋은 뜻이지요?》 하고 되물었다. 온양선녀는 웃으며 답을 아꼈다.
그렇게 각자의 사주를 하나씩 짚어본 뒤에야 온양선녀는 본론으로 들어가듯 목소리를 한결 낮추었다. 《그런데 오늘은 두분이 함께 나오였으니, 궁합도 한번 봐드릴까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블루동지가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나 역시 화면앞에서 어깨를 슬쩍 움츠렸다.
사실 이런 자리가 처음은 아니였다. 블루동지와 내가 함께 무엇을 하면 열이면 아홉은 《우결》이라는 그림자가 따라붙는다는것을 나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익히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유난히 그 그림자가 짙어질 조짐이 보였다.
온양선녀는 두 사람의 사주를 나란히 펼쳐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화면 저편에서 종이 뒤적이는 소리가 잦아들고, 방송 특유의 정적이 잠깐 흘렀다. 대화창마저 그 순간만큼은 숨을 죽인듯속도가 느려졌다.
이윽고 온양선녀가 입을 열었다. 《두분, 궁합이 보기 드물게 잘 맞네요. 오행이 서로 모자란 자리를 딱딱 채워주는 모양이 흔치 않은 궁합이에요.》 그 한마디에 대화창은 그야말로 삽시에 폭발하듯 끓어올랐다.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이 그렇게 딱 들어맞을 때가 또 있을까 싶었다. 시청자들은 굳이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스스로 불을 지피고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블루동지는 머리수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아니 그게 그렇게 잘 나올 일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과 은근한 웃음기가 반반씩 섞여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 대뜸 한마디를 던졌다.
《야, 이 정도면 나이 들고 결혼할 사람 없으면 우리 그냥 결혼하자.》 그 말은 딱히 준비하고 꺼낸 말이 아니였다. 그저 그 순간의 흥에 겨워, 옛적 우스개 하나가 절로 튀여나온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방을 삽시에 조용하게 만들었다. 온양선녀도 잠깐 말을 잃은듯하였고, 블루동지 쪽에서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의 길이가 얼마쯤이였는지 지금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다.
침묵 끝에 블루동지가 되물었다.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그 말투는 짐짓 억울한척, 그러나 웃음을 절반쯤 머금은 채였다.
나는 그 되물음에 말문이 막혀 한동안 헛웃음만 흘렸다. 대화창은 이미 걷잡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있었다. 《누나》, 《바이비》 하는 옛 호칭들이 도배되듯 올라왔고, 개중에는 《우결 다시 켜라》는 말까지 섞여있었다.
그런데 이 두 호칭을 두고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한참 앞선 시절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블루동지와 내가 처음 《우결》이라는것을 시작한것은 우주25(2018)년의 일이였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 높임말을 썼고, 《강지 님》, 《블루 님》 하고 깎듯이 부르는 사이였다.
그러던것이 우주27(2020)년 초, 썸탄지 오백일이 되였다는 어느 방송에서 블루동지가 처음으로 나를 《누나》라 불렀고, 나는 그때부터 블루동지를 《바이비》라 불렀다. 그 호칭은 《우결》이 끝난 뒤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종영으로부터 두달이 지난 뒤에 올라온 영상 제목마저 《이미 우린 끝났잖아.. 누나》였을 정도이니, 그 버릇이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짐작할만하다.
우주27(2020)년 시월 엿새, 우리는 마침내 그 《우결》에 마침표를 찍었다. 내 방송과 블루동지의 방송에 며칠 사이를 두고 나란히 올라온 영상은 공교롭게도 제목이 똑같이 《우결 종료》였다. 담담한 제목과는 달리, 그 영상을 올리기까지 우리 둘 다 며칠을 두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였다는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이미 앞서 다른 자리에서 자세히 적어둔 일이 있으므로 여기서 다시 늘어놓지는 않겠다. 다만 한가지는 다시 새겨둘만하다. 세월이 흘러 호칭도 사이도 다 달라졌으련만, 정작 그 두 낱말만은 지금도 우리 둘 사이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몇해가 더 지나 우주32(2025)년 유월, 블루동지와 나는 갓 《우결》을 시작한 신인 짝 백곰파와 고수달앞에서 도리어 훈수를 두는 처지가 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우결》을 두고 《두해간 진행하였고 어머니 소개까지 마쳤으며 깔끔하게 끝냈다》고 자평하였고, 블루동지는 한술 더 떠 《애매하게 하지 말고 할거면 적극적으로 해버려라》, 《자꾸 빨아먹기만 하고 여지만 열어두고 뭐하는것이야》하며 후배들을 몰아붙였다. 그 말을 들은 고수달은 열심히 메모를 하는 시늉을 하였고, 백곰파는 우스개삼아 《50년짜리 계획》을 세우겠다고 받아쳤다.
돌이켜보면 그 자리에서 나는 스스로 미련이 없다고 자부하였다. 정확한 워딩인지는 나도 자신하지 못하나, 대체로 《우결》을 오래 끌고 열심히 하고나서 결과물이 어느 정도 딱 나오고 끝날 때가 되면 오히려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그무렵 나는 자주 하고다니였다. 그런데 이날 사주코너에서 튀여나온 그 한마디를 돌이켜보면, 정말로 미련이 하나도 남지 않은것인지 나 스스로도 새삼 헷갈리곤 하였다.
그러니 이날 대화창이 그렇게 들끓은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시청자들은 오래 묵은 그 호칭들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낚아채였다. 나는 그 반응의 빠르기에 새삼 혀를 내둘렀다.
온양선녀는 그 소란을 지켜보며 그저 웃음을 참는 얼굴이였다. 《두분, 정말 이런 반응 처음이 아니신가봐요.》 그 말에 나는 겸연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블루동지가 그때 다시 한마디를 보태였다. 《아니 근데 사장님이 먼저 결혼하자매요.》 그 말투에는 짐짓 억울함을 가장한 웃음이 묻어있었다.
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야, 그거는 조건부잖아. 나이 들고 결혼할 사람 없으면이라고 하였지.》 그 순간 스스로도 이 말이 얼마나 옹색한 변명인지를 느끼며 웃음이 터져나왔다.
블루동지도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네, 조건부였네.》 하면서도 눈은 여전히 장난기로 반짝이고있었다.
그 짧은 실랑이를 지켜보던 대화창에서는 《저게 몇년째 저러는것냐》는 말이 나왔다. 나는 그 물음에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정말로 몇해나 되였는지, 헤아려보면 셈이 만만치 않았다.
온양선녀는 분위기를 다시 갈무리하려는듯 종이를 뒤적이며 한마디를 더 얹었다. 《아무튼 두분 사주로만 보면 천생연분에 가까운 궁합이에요. 다만 그게 무슨 인연인지는 제가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네요.》 그 말에 대화창은 또 한번 뒤집어졌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이 모든것이 얼마나 우스운 그림인지를 새삼 느끼였다. 방송이라는 자리에서 태여난 우스개 하나가 몇해를 두고 이렇게 되풀이하여 살아나는것을, 그때는 그저 웃어넘기였을뿐 깊이 헤아리지 못하였다.
블루동지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는지 잠깐 말이 없다가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근데 신기하다, 우리 이거 몇년째 우려먹는것지.》 나는 그 말에 《장작이 남아있는 한 계속 우려먹어야지》 하고 능청스레 받았다.
그 대답에 블루동지가 다시 크게 웃었다. 머리수화기 너머로도 그 웃음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대화창에서도 웃음을 나타내는 자음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흘러내려갔다.
사실 그무렵에는 이런 장난기가 비단 그날 하루의 일만도 아니였다. 나는 블루동지에게 실없이 치근대는 이가 눈에 띌 때면 짐짓 정색을 하고 《친구의 남자를 건드려》 하는 말을 던지군하였고, 블루동지도 내 감상글난에 사람들이 몰릴 때면 넌지시 《귀엽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지군하였다. 그렇게 잔불처럼 남아있던 그 장난기가 이날 사주코너를 만나 한번 더 크게 타올랐을뿐이였다.
그러고보면 이런 장난이 두 사람 사이에서만 맴돈것도 아니였다. 한때 내 지인 강수는 자신이 《우결》 상대의 매제뻘이 된다는 억지 설정을 붙여 블루동지를 《매형》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언젠가 《배그》 합방 중에는 우리 어머니마저 블루동지를 두고 《사위감으로 100점》이라 평한 일이 있었다. 그런 말들이 오갈 때마다 블루동지는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런 사람들까지 놀이에 끼여든 덕분에, 이 장난은 우리 둘만의 것이 아니라 어느새 회사 전체가 함께 지켜보고 즐기는 하나의 오랜 놀이로 자리잡게 되였다.
나는 그때 잠깐,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다른 성원들은 이 소동을 어떻게 보고있을지 궁금해졌다. 뒤에 들으니 마시로동지와 유니동지는 사무실 한켠에서 그 방송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고 하였다. 히나동지는 대화창에 슬쩍 들어와 《또 시작이네요》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조용히 사라졌다고 하였다.
미기는 그날 옆방에서 다음 일정을 정리하다가 이 소란을 전해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나중에 내게 말하였다. 《사장님, 이러다 진짜 결혼식장까지 예약하는것 아니예요.》 나는 그 말에 그저 웃을수밖에 없었다.
방송은 그뒤로도 한동안 이 화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온양선녀가 다른 성원들의 사주도 하나둘 봐주었지만, 대화창은 좀처럼 앞선 그 대목에서 헤여나오지 못하였다. 누군가는 《결혼운 다시 한번 봐주세요》라며 짓궂게 요청을 넣기도 하였다.
나는 그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야, 한번 나왔으면 되였지 자꾸 우려먹으면 재미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마음 한구석은 그 소란이 싫지 않았다.
그날 방송이 끝나갈 즈음까지도 대화창 한구석에서는 이따금 《누나》, 《바이비》 하는 말이 되돌아와 떠다니였다. 나는 그때마다 못 본척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짐짓 《왜 자꾸 그러냐》며 손사래를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말들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는것을 나 스스로도 잘 알고있었다.
방송을 마칠무렵, 블루동지가 마이크를 끄기 직전에 나직이 한마디를 건넸다. 《오늘 재밌었다, 누나.》 그 말에는 이렇다할 수식도 없었지만, 나는 그 짧은 한마디가 오래도록 귀에 남았다.
나 역시 마이크를 끄며 대꾸하였다. 《그래, 바이비.》 그 호칭이 몇해만에 다시 입밖으로 나왔는지 나로서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하였다.
방송을 마치고 홀로 사무실에 남아 나는 한동안 화면를 끄지 않은채 앉아있었다. 화면에는 방금까지 흘러내리던 대화창의 마지막 줄들이 그대로 멎어있었다. 《누나》, 《바이비》, 《장작》 같은 낱말들이 화면우에 그대로 얼어붙어있는것을 나는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봄밤의 공기는 아직 서늘하였으나 낮의 볕이 남긴 온기가 창틈으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나는 머리수화기를 벗어 책상 한켠에 내려놓으며 이날 하루를 되새기였다.
온양선녀에게서는 방송이 끝난 뒤에도 짧은 인사 한마디가 따로 왔다. 《오늘 재밌었어요, 두분 덕에 채팅이 너무 뜨거웠네요.》 나는 그 인사에 웃음으로 답하며, 다음에 다시 한번 자리를 마련하자는 말을 남기였다.
그 짧은 몇분짜리 대목은 이튿날부터 여기저기 컷으로 잘리여 돌아다니였다. 《나이 들고 결혼할 사람 없으면 결혼하자》는 그 한마디만 따로 떼여져 제목이 붙은 클립도 여럿 있었다. 나는 그 클립들의 감상글난을 하나둘 들여다보며, 몇해묵은 옛이야기가 이렇게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모양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그 한마디, 《나이 들고 결혼할 사람 없으면 결혼하자》는 말은 딱히 무슨 큰 뜻을 담고 꺼낸 말이 아니였다. 그것은 그저 오래된 습관, 몸에 밴 장난기가 저도 모르게 터져나온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불러온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애호가들은 그날의 방송을 두고 옛 《우결》 시절의 분위기가 그대로 되살아났다며 한동안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 말을 전해들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방송 한마당을 치렀을뿐인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몇해 전의 기억을 되불러오는 문이 된다는것이 새삼 신기하였다.
그때는 미처 몰랐으나 지금 이렇게 붓을 들어 그날을 되짚어보니, 그 만우절 하루가 이 회고록의 뒤편 어딘가에 자리를 잡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력사라는것이 언제나 거창한 사변으로만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라는것을, 나는 그 소소한 하루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어쩌면 뒷세대의 누군가는 이 절을 읽으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사주 한번 보다가 나온 우스개 한마디를 두고 회고록씩이나 써내려간다는것이 다소 과장스럽게 들릴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지나온 나날을 가장 뚜렷이 증명해준다고 믿는다.
《우결》을 시작하던 그해 우리는 스물몇살의 젊은이들이였다. 이제는 서로 나이도 제법 들었고, 각자 짊어진 자리도 그때와는 견줄수 없이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사주코너 한번에 이렇게 쉽게 옛말투로 돌아갈수 있다는것이, 나는 새삼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만우절이라는 날은 본디 거짓과 장난이 허락되는 하루이다. 그러나 그날 우리 사이에서 오간 말들 가운데 어느것이 정말 장난이고 어느것이 진심에 가까웠는지, 나는 아직도 다 갈라내지 못한다. 어쩌면 그 경계가 흐릿한채로 남아있는것이야말로, 우리가 몇해를 두고 이런 장난을 그치지 않고 되풀이해온 진짜 리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