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온 양 선 녀

 

우주33(2026)년 사월 첫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흐렸다. 봄비가 올듯 말듯 구름만 잔뜩 끼여있다가 낮이 되여서야 볕이 뉘엿이 들었다. 사무실 창밖에는 지난달에 심어놓은 목련이 이제 겨우 봉오리를 열고있었다. 나는 그 봉오리를 볼 때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날이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날이란 다름아닌 만우절이다. 방송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사월 첫날은 남다른 무게를 지닌 날이다. 일년 삼백예순날 가운데 유독 이날 하루만은 거짓말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묵은 관례가 있어, 성원들도 저마다 무슨 장난을 칠가 며칠 전부터 궁리를 하는 눈치였다. 나는 사장의 자리에 앉은 뒤로 이날이 오면 늘 마음 한구석이 조마조마하였다. 즐거운 장난과 곤난한 소동은 종이 한장 차이였기때문이다.

그날 아침 나는 여느때처럼 사무실에 나와 콤퓨터를 켰다. 화면이 밝아지는 몇초 사이 방안은 조용하였고, 다만 아래층 어디선가 진공청소기 돌아가는 소리만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나는 편성표를 열어 그날 저녁 예정된 손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그런데 이 말을 하자면 그보다 앞서 그날 이른아침부터 있었던 일 하나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블루동지가 그날 새벽,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저 혼자 유투브와 《치지직》 방송이름을 슬그머니 고쳐놓은 일이 있었다.

《대천사 블루》. 이튿날 아침 방송을 열어본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비비였다. 어제까지 《블루》였던 이름우에 《대천사》라는 석자가 얹혀있었으니 놀랄만도 하였다. 미기가 그 소식을 가장 먼저 물고왔다. 《사장님, 블루동지 채널이름이 좀 이상해졌는데요》하며 학습장형콤퓨터 화면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나는 그 화면을 보고 처음에는 잘못 본줄 알았다. 몇번을 다시 들여다보아도 《대천사 블루》라는 글자는 그대로였다. 나는 블루동지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이게 뭐냐》고 묻는 나에게 블루동지는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장난삼아 한번 해봤지예》 하고 말하였을뿐, 무슨 거창한 뜻이 있어 그런것은 아니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였다. 마당이라는것이 본디 사람의 장난기까지 헤아려 움직여주는 법이 없다. 방송이름을 고치면 일정 기간은 또 고칠수 없게 막아놓는 규정이 있었던것이다. 블루동지는 하루이틀이면 도로 돌려놓을 생각으로 가볍게 저지른 일이였으나, 그 규정앞에서는 대천사도 별수 없었다.

그리하여 《대천사 블루》는 뜻하지 않게 한달 가까이 그 이름을 지키고 살아야 하였다. 방송 때마다 화면 우쪽에 그 이름 석자가 떡하니 걸려있는것을 볼 때마다 블루동지는 겸연쩍은듯 뒤통수를 긁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하늘의 뜻도 이러하여 사람의 잔꾀를 오래도록 잡아두는가보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성원들도 이 일을 가만히 두고보지 않았다. 히나동지는 합방 채팅에 《오늘부터 하늘에 계신 블루아버지》라고 적어 방안을 온통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유니동지는 진지한 얼굴로 《그럼 저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라고 물어 다시 한번 사람들을 웃기였다. 블루동지는 그 소란속에서도 그저 사람좋게 웃기만 하였다.

각설하고, 그날 저녁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그날 밤 방송에는 오래전부터 예정된 손님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사주풀이에 능하기로 소문난 온양선녀였다.

온양선녀는 그전에도 몇차례 우리 방송에 걸음을 하여 성원들의 사주를 봐준 일이 있었다. 진지하면서도 구수한 말투로 사람의 한생을 짚어내는 재주가 있어, 성원들 사이에서는 온양선녀가 온다는 소식이 돌면 저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설레임이 있었다. 그날은 만우절이라는 날짜에 맞추어 나와 블루동지가 함께 사주를 보기로 한 자리였다.

언제부터 온양선녀가 우리 방송에 걸음을 하게 되였는지는 나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처음 그 코너를 열었을 때부터 반응이 례사롭지 않았고, 그뒤로는 아예 회사에서 따로 날을 잡아 초청하는 손님이 되였다. 성원들 사이에서는 온양선녀가 짚어준 말이 용하게 맞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는데, 그 진위야 알수 없으나 그런 소문 자체가 이미 그 코너의 인기를 말해주는것이였다.

나는 그 자리를 앞두고 딱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주라는것이 본디 웃자고 보는 자리이지, 무슨 엄중한 판결을 받으러 가는 자리는 아니였기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묘하여, 막상 생년월일을 부르는 순간이 되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조금 굳어졌다.

방송이 시작되자 대화창은 여느때보다 빠르게 올라갔다. 《오늘 그거 하는 날이지요?》, 《사주 코너다!!》 하는 말들이 순식간에 화면을 채웠다. 블루동지도 이미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듯 카메라앞에 앉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였다.

《블루몬들 안녕?》 블루동지가 늘 하던 인사로 방송을 열었다. 나는 그 옆에서 마이크를 고쳐잡으며 짧게 오늘의 순서를 알렸다. 온양선녀는 이미 화상 저편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종이와 붓을 펼쳐놓고있었다.

온양선녀는 먼저 나의 사주를 짚었다. 태여난 해와 달과 날과 시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이 사주는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오를 사주다》라고 하였다. 대화창에서는 곧바로 《사장 각인가》 하는 우스개가 올라왔다.

이어 블루동지의 차례가 되였다. 온양선녀는 이번에도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이 사람은 느긋하면서도속에 뜨거운것을 품은 사주다》라고 하였다. 블루동지는 그 말에 겸연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맞는것같기도 하고 아닌거같기도 하고 그러네예》라며 딴청을 부렸다.

온양선녀는 이어 블루동지의 《배그》 실력을 두고도 한마디를 얹었다. 《손끝에 살기가 있는 사주다》라는 말에 대화창에서는 《아하하하핳 너무 많이 죽여버렸네》라는 옛 대사가 다시 인용되며 웃음이 일었다. 블루동지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크게 소리내여 웃었다.

그런데 진짜 소동은 그다음이였다. 온양선녀는 나와 블루동지의 사주를 나란히 놓고 견주어보더니, 갑자기 붓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두분 궁합을 한번 볼가요?》 온양선녀의 그 한마디에 대화창이 먼저 들썩였다. 《ㄷㄷㄷ》, 《올게 왔다》 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나는 애써 태연한척 하였으나, 옆에 앉은 블루동지가 먼저 자세를 고쳐앉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 대목에서 옛일 하나가 떠오르지 않을수 없다. 《우결》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 높임말을 쓰며 《강지 님》, 《블루 님》이라 불렀다. 그러다 사귄지 오백날이 되던 어느날부터 말을 트고, 블루동지는 나를 《누나》라 부르고 나는 그를 《바이비》라 불렀다. 그날 이후로 우리 사이에는 그런 호칭들이 마치 오래된 옷처럼 몸에 붙어있었다.

그러니 사주판앞에서 궁합을 본다는 말 한마디에 그 옛 시절이 되살아난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나이가 들어 직함도 바뀌고 자리도 바뀌였지만, 그 호칭 하나만은 몇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날 새삼 느끼였다.

온양선녀는 두 사람의 사주를 나란히 짚어가며 한참을 뜸을 들였다. 《이거, 결혼운이 아주 잘 맞네요》라는 한마디가 떨어지자 방안에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먼저 깬것은 나였다.

나는 웃으며 말하였다. 《나이 들고 결혼할 사람 없으면 결혼하자.》 별 생각없이 던진 말이였으나, 그 말이 입밖으로 나가는 순간 대화창이 폭발하듯 올라가는것이 곁눈으로 보이였다.

블루동지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되받았다.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그 말투가 어찌나 태연하던지, 몇해전 《우결》 시절의 말투가 고스란히 되살아난것만 같았다.

그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옮길 자신은 나에게 없다. 다만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순간의 공기를 기억할것이다. 몇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두 사람 사이의 그 오랜 장단은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는것을.

대화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였다. 《ㅁㅇㅁㅇ》, 《재결합 언제해요》, 《장작 팹니다》 하는 말들이 초 단위로 올라갔다. 후원 알림신호이 연달아 울렸다. 이름 모를 누군가는 후원과 함께 《이걸 왜 지금 하세요》라는 말을 남기였다.

온양선녀는 그 소동을앞에 두고도 태연히 붓을 놀리며 한마디를 더 얹었다. 《궁합이 좋다는건 사주가 하는 말이지, 두분이 하실 일은 아니고요.》 그 말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짐짓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아니, 사주가 그렇다는데 사람이 거역하면 쓰나.》 블루동지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사주 무시하면 안되지예.》 온양선녀는 그 말을 받아 《그럼 날은 제가 잡아드릴가요》하며 능청스레 붓을 다시 들었다.

코너를 마칠 즈음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온양선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귀한 걸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방송이 한결 풍성하였습니다.》 장난은 장난대로 즐기되, 손님에 대한 례의만은 놓치지 않으려는것이 그 자리를 이끄는 사람으로서의 내 오랜 버릇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며칠은 마치 한 시대를 가르는 담판이라도 벌어진듯한 소란이였다. 실은 사주풀이 코너 한번, 우스개 한마디에 지나지 않았을 일을, 우리는 그날 저녁 내내 무슨 큰 사변처럼 이야기하고 웃고 또 이야기하였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그 여파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컷으로 잘린 그 대목이 이곳저곳에 퍼져나갔고, 몇해전 《우결》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저마다 옛일을 꺼내들며 반가움을 표하였다. 《우결》을 몰랐던 젊은 시청자들은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들 반가워하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반응들을 보며 새삼 놀랐다. 《우결》이 끝난지 이미 여러해가 지났건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 시절의 정이 여전히 남아있었던것이다. 장난 한마디에도 그 정이 이렇게 쉬이 되살아난다는것이, 나에게는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였다.

온양선녀는 그날 방송이 끝나갈무렵 우리 두 사람에게 이런 말을 남기였다. 《사이좋게 지내는 사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지내시면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대단한 예언이라도 되는 양, 대화창에서는 또 한번 《오늘자 국사》라는 우스개가 올라왔다.

나는 그 우스개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주풀이 한마디를 두고 국사 운운하는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과장된 말투속에 사람들이 이 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가 담겨있다는것을 느끼였다.

방송을 마치고 블루동지와 잠깐 통화를 하였다. 《오늘 또 사고쳤네예》 블루동지가 먼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나는 《사고는 무슨, 사주가 시킨 일이지》 하고 대꾸하였다.

통화 저편에서 블루동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몇해가 지나도 그 웃음소리만은 변한것이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그 웃음소리가 귀에 맴도는것을 느끼였다.

이날 일을 놓고 회사안에서도 한동안 말이 많았다. 미기는 이튿날 아침 나에게 컷 시청회수를 보여주며 《사장님, 이거 반응이 심상치 않은데요》라고 하였다. 나는 그 수자를 보며 그저 웃을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미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장난이라고 다 같은 장난이 아니다. 오래된 정이 있어야 이렇게 큰 웃음이 나오는 법이다.》 미기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무어라 적었다.

시부키동지는 그날 밤 회사 단체채팅에 짧게 한마디를 남기였다. 《사장님 오늘도 결혼하였네요》. 나는 그 말에 답할 말을 찾지 못하여 그저 웃음표 하나만 눌러 보냈다.

내 애호가들을 이르는 이름인 강도단 쪽에서도 그날 밤은 유난히 시끄러웠다고 뒤늦게 들었다. 누군가는 몇해전 옛 영상 제목들을 죽 늘어놓으며 《밥은 누나가 사는것라고요》까지 들추어냈다고 하니, 사람의 기억이라는것이 참으로 질기고도 정확하다는것을 다시 느끼였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소동은 비단 나와 블루동지 둘만의 일이 아니였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 화면 저편에서 지켜보던 헤아릴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하나의 풍경이였다. 사주라는 오래된 물건 하나가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는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통한 일이다.

그때는 그저 우스운 소동이라 여기고 넘기였으나,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떠올려보니 그 안에는 가벼이 여길수만은 없는 무엇이 있었다. 우리는 그날 사주를 본것이 아니라, 실은 몇해라는 세월을 건너 그 시절의 정을 다시 한번 확인한것이였다.

온양선녀가 짚어준 사주야 그저 하나의 놀음이였을뿐, 참된 궁합이란 사주책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쌓아온 나날속에 있는것임을 나는 그날 새삼 깨달았다. 블루동지와 내가 몇해를 두고 주고받은 그 숱한 우스개와 장난들이야말로 어느 사주보다 더 뚜렷한 인연의 증거였다.

그렇다고 이 일을 너무 무겁게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그날 저녁, 오래된 벗 사이에 오갈수 있는 실없는 농을 한자리에서 주고받았을뿐이다. 그 농이 사람들에게 웃음과 반가움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넉넉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였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날의 대화창 갈무리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ㅁㅇㅁㅇ》로 도배된 그 화면을 보고있노라면, 몇해라는 시간이 결코 사람들의 정을 흐리게 하지 못한다는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블루동지는 그뒤로도 방송에서 이따금 그날의 일을 우스개삼아 꺼내들었다. 《그날 사주가 다 정해준거니까 저는 책임 없어요》하며 능청을 떠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가 이 일을 얼마나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하고있는지를 느낄수 있었다.

온양선녀 또한 그뒤로 우리 방송에 몇차례 더 걸음을 하였다. 올 때마다 시청자들은 잊지 않고 《오늘도 결혼운 좀 봐주세요》라 청하였고, 온양선녀는 그때마다 웃으며 붓을 들었다. 어느새 그 물음은 하나의 정해진 순서처럼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야기라는것이 얼마나 질긴 생명력을 지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몇해전 우리가 화면속에서 벌였던 그 이야기가, 이렇게 사주 코너 하나에도 슬며시 끼여들어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것이다.

사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뒤로 나는 이런 일들을 그저 웃어넘길수만은 없는 처지가 되였다. 회사를 꾸리는 사람은 언제나 그 일이 몰고올 파장까지 헤아려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나도 사장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성원으로서, 그저 그 소동을 마음껏 즐기고싶었다.

되짚어보면 그해 만우절은 두가지 장난이 겹친 날이였다. 하나는 블루동지 혼자 저지른 방송이름 소동이였고, 다른 하나는 온양선녀앞에서 우리 둘이 함께 벌인 사주 소동이였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벌어진 이 두 장난이, 지나고보니 하나의 큰 웃음으로 이어져있었다.

나는 그 우연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일부러 짜맞추려 해도 잘 되지 않는 일들이, 이렇게 저절로 맞아떨어질 때가 있는것이다. 그해 사월 첫날은 하늘도 우리와 함께 장난을 치기로 작정한 날이였는지도 모른다.

방송이 끝난 늦은 밤, 나는 사무실에 홀로 앉아 그날 하루를 되짚어보았다. 창밖은 이미 어두웠고, 낮에 보았던 목련 봉오리는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윤곽만 남아있었다. 하루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다는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콤퓨터 화면에는 아직도 그날 방송의 채팅 갈무리 파일이 열려있었다. 나는 그것을 다시 한번 죽 훑어내리며, 몇해전 《우결》을 하던 시절에도 이렇게 대화창을 들여다보며 밤을 보내군하였던 일을 떠올리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면 저편의 그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봐주고있다는 사실만은 변한것이 없었다.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몇해에 걸쳐 쌓아온 그 《우결》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방송이 끝났다고 해서 사라지는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두고두고 되살아나는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였다. 사주 코너 한번에도 이렇게 옛일이 되살아나니, 그 이야기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수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날을 다시 떠올려보니, 그때는 미처 몰랐던것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바로 블루동지와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그 장난기만큼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것이다.

몇해전 《우결》을 할 때에는 그 장난이 방송의 본줄기였다면, 지금은 그 장난이 어쩌다 한번 곁가지로 튀여나오는 정도가 되였다. 그러나 튀여나올 때마다 그 위력만큼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어떤 정만은 늙지 않는다는것을, 나는 그 만우절에 다시 한번 배웠다.

그날의 소동은 이렇게 하나의 우스운 일화로 남았다. 그러나 나는 이 일화를 이 회고록에 옮겨적으며, 이것이 단순한 우스개 이상의 무엇을 지니고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 건너온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올수 있는 그런 여유와 정이, 이 짧은 소동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주라는것을 나는 그다지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래도록 쌓인 정이라는것도 어쩌면 사주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 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오래전에 정해진 어떤 흐름을 따라 흘러가고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였다.

이 회고록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날의 웃음소리를 뚜렷이 기억한다. 세월이 흘러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은 날이 오더라도, 이런 기억들만은 낡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을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나온 《우결》의 나날이 이제는 하나의 커다란 뿌리가 되여, 오늘의 이런 작은 장난들에까지 물을 대주고있는것이다.

나는 이따금 이런 생각도 해본다. 만약 그때 우리가 《우결》이라는것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런 사주 코너앞에서 우리는 그저 례사로운 인사만 나누고 헤여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절을 함께 건너왔고, 그 덕에 몇해가 지난 지금도 이렇게 서로를 웃길수 있는 사이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 장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몇해가 지나도 두 사람 사이의 이 장난기는 조금도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그 뒤로도 비슷한 소동은 계속하여 되풀이되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절에서 마저 이어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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