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장 난 기

 

그해 초가을, 사무실 창가에 앉아 지난 방송 다시보기 목록을 정리하다가 나는 문뜩 손을 멈추었다. 콤퓨터 화면 한구석에 뜬 대화창 로그속에서 낯익은 문구 하나가 자꾸 눈에 밟혔다. 사월에 오간 말이 구월에도 그대로 대화창에 떠도는것을 보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늙어도 장난기는 좀처럼 늙지 않는 모양이다.

그날은 볕이 유난히 맑았다. 창밖으로 회사 옥상 화단에 심어놓은 남새들이 늦더위에 축 늘어져있었고 랭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사무실안을 채우고있었다. 나는 문서를 정리하다말고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대였다. 몇해전 일들이 순서없이 하나씩 떠올랐다.

《우결》이 끝난것은 우주27(2020)년 10월 6일 저녁 아홉시였다. 그날 방송을 마치고 우리 둘은 서로 잘 지내자는 말만 남기고 화면을 껐다. 그때는 그것으로 한 시절이 온전히 닫히는줄 알았다. 그러나 력사란 언제나 사람의 짐작보다 짓궂은 법이다.

종영한지 해포만에 블루동지가 내 집 초인종을 눌렀다. 우주28(2021)년 10월 9일의 일이다. 합방 약속을 잡아놓고 내가 세시간을 그대로 지각해버린 탓이였다. 기다리다 못한 블루동지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챙겨들고 곧장 우리 집으로 찾아온것이다.

《누나, 이럴거면 그냥 내가 오는게 빠르겠다.》 문을 열자 블루동지가 이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보다 어이가 없어 웃음부터 터졌다. 《우결》이 끝난 사람들이 할 짓은 아니였으나 그날 우리는 두시간 남짓 현실합방을 하였다.

시청자들은 그것을 보고 《우결》 시절 못지않게 달달하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계약이라는것은 방송의 형식을 정하는것일뿐 사람 사이의 장난기까지 정지시키지는 못하는구나 하고. 형식은 끝나도 습성은 끝나지 않는다는것을 나는 그때 처음 실감하였다.

그뒤로 몇해동안 나는 스텔라이브를 세우는 일에 골몰하였다. 유메퍼센트라는 회사의 대표를 지내다가 우주29(2022)년 12월 28일에는 스텔라이브의 대표이사 겸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회사일이 늘어날수록 방송에 나설 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스텔라이브를 처음 꾸릴 때 나는 성원들에게 사장이라기보다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런데 어느틈엔가 성원들이 저희끼리 나를 엄마라 부르고 저희들은 딸애들이라 부르는 밈이 생겨버렸다.

나는 처음에 그 별명을 완강히 부정하였다. 엄마라니, 나이도 얼마 차이 안나는데 무슨 엄마냐고 대화창에 대고 몇번이나 항의하였다. 그러나 밈이라는것은 부정할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다는것을 그때는 몰랐다.

밈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져나갔다. 칸나동지가 무기 스킨 가챠 방송 도중 대화창에서 블루동지를 아빠라고 부른것이 그 시초였다. 정확한 날자는 나도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한마디가 씨앗이 되여 히나동지와 타비동지까지 합방중에 블루동지에게 아빠 소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엄마와 아빠라니, 딸애들이 우리를 그렇게 엮어세운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실소를 금할수 없었다. 《우결》을 몇해나 진행하고도 못 이룬 가정을 성원들이 대화창 한마디로 뚝딱 지어준 셈이였다. 력사가 사람을 놀리는 방식은 참으로 다채롭다는것을 나는 또 한번 배웠다.

블루동지도 처음엔 그 호칭을 어색해하였다고 들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이미 그를 사실상 아버지 취급하는 판이 되고보니 본인도 결국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송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인척 하면서도 실은 딸애들을 통해 은근히 이어져있었다.

스텔라이브의 성원들도 강블 《우결》을 다 알고있었다. 리제동지는 언젠가 합방중에 나의 퍼스널컬러가 다름아닌 블루동지라고 말한적이 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사람은 알아듣고 모르는 사람은 몰랐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뜨끔하였다.

시부키동지와 리코동지도 합방중에 눈치를 보아가며 《우결》 이야기를 슬쩍슬쩍 흘렸다. 성원 대다수가 이미 강블 《우결》의 지난 일을 알고있었던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모르는 척 딴청을 부렸지만 속으로는 그들이 아는것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렇게 몇해가 조용히 흘러갔다. 나는 회사일에, 블루동지는 자기 방송의 여러 내용물에 매달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각자의 길을 걷는듯 하였으나 실은 완전히 갈라선적은 한번도 없었다.

우주32(2025)년 봄, 백곰파동지와 고수달동지라는 두 스트리머가 자기들끼리 새로운 《우결》을 시작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젊은 두 사람의 내용물가 화제를 모으면서 옛 강블 《우결》도 자연스레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우주32(2025)년 4월 27일에는 에펨코리아라는 곳에 강블 《우결》의 옛 클립을 보는 어느 성원의 반응 영상이 올라와 시청회수가 사만을 넘었다고 한다. 유니동지가 아니겠느냐는 말이 많았으나 확실치는 않다. 나는 그 게시물을 뒤늦게 전해듣고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딸애가 부모의 옛 련애사를 몰래 훔쳐보는 꼴이니 그럴만도 하였다.

그 영상밑에는 이런 말이 붙어있었다. 《딸들이 계속 먹이는 《우결》.》 나는 이 말을 보고 정말 딸애들이 우리 사이의 불씨를 부지런히 되살리고있구나 생각하였다.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였다.

우주32(2025)년 6월 24일, 마침내 《우결》이 끝난지 네해 남짓만에 나와 블루동지는 정식으로 다시 합방을 하였다. 이번에는 백곰파동지, 고수달동지와 함께 넷이서 《배그》를 하는 자리였다. 오래간만에 마이크 너머로 그 목소리를 듣는데 이상하게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안하였다.

방송 막바지에 우리는 두 후배 짝에게 한마디씩 조언을 얹었다. 나는 우리의 지난 《우결》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3년간 진행하였고 어머니 소개까지 마쳤으며 깔끔하게 끝냈어.》 정확히 따지면 741일이니 만 2년을 조금 넘겼지만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세 해에 걸쳐있었으니 나로서는 3년이라 부르는게 마음에 더 맞았다.

블루동지는 더 직설적이였다. 《애매하게 하지 말고 할거면 적극적으로 해버려라.》 그가 이렇게 말하자 고수달동지는 메모를 하는 시늉을 하였고 백곰파동지는 웃으며 50년짜리 계획을 세우겠다고 능청을 떨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우리도 한때 저렇게 서투르고 풋풋하였겠구나 생각하였다.

《자꾸 빨아먹기만 하고, 여지만 열어두고 뭐하는것이야.》 블루동지가 한마디를 더 보태자 대화창이 온통 웃음으로 뒤덮였다. 신인 《우결》 짝에게 훈수를 두는 우리 모습이 스스로도 우스웠다. 마치 은퇴한 로장이 후배들앞에서 무용담을 늘어놓는 꼴이였다.

그날 합방 이후로 나는 다시 《배그》에 흥미를 붙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틈만 나면 블루동지를 불러들이고있었다. 우주32(2025)년 7월 29일에는 리코동지와 《배그》를 하다가 블루동지를 호출하였는데 그는 촬영중이던 자기 내용물를 마다하고 곧장 합류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또 다른 합방 자리에서 그를 불러 《마인크래프트》 점프맵을 함께 클리어하였다. 부르면 오고 부르면 오는 사이가 되다보니 나중에는 성원들 사이에서 블루동지가 반쯤 스텔라이브 소속이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나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색하며 아니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백곰파동지는 그해 5월 4일, 블루동지가 어느 《유튜브》 클랜에 가입하였다는 소식을 보고 이렇게 적었다. 《전남편 길드.》 짧은 한마디였지만 이보다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 글을 보고 배를 잡고 웃었다.

전남편이라니, 《우결》이 극중 설정임을 뻔히 아는 사람들조차 우리를 그렇게 부르는것을 보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그럴듯하게 연기를 하였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아니, 연기라는 말도 정확하지는 않다. 그것은 연기라기보다 어느샌가 우리 자신이 되여버린 하나의 습성에 더 가까왔다.

내 지인 강수동지는 예전부터 나를 볼 때마다 블루동지를 매형이라 불렀다. 내가 《우결》의 상대이니 그의 남편이 곧 자기의 매형이 된다는 계산이였다. 그 호칭이 어느새 주변 전체에 굳어져서 지금도 강수동지는 블루동지를 만나면 여전히 매형이라 부른다.

어머니도 한몫 거들었다. 《배그》 합방중에 우리 어머니는 대뜸 블루동지를 나의 사위감으로 백점이라고 매겨버렸다. 블루동지는 그 말에 몹시 당황하며 어쩔줄 몰라하였다고 한다. 나는 옆에서 그 광경을 보며 어머니가 나보다 한수 위라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감블러동지와는 예전에 서로 감자님, 낑깡님이라 부르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말을 트고 지낸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붕어야, 누나 하고 부른다. 붕어라는 별명이 어디서 왔는지는 나도 정확히 설명할수 없으나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난다.

왓구홍길동동지와는 친남매 같은 사이라 스쿼드에 블루동지까지 끼면 시청자들은 곧바로 《우결》 보는 눈으로 돌변한다고 한다. 애호가들 말로는 과몰입 트수 모드라던가.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무슨 국가행사라도 되는듯 하여 우습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우결》이 끝난 뒤에도 우리 둘을 둘러싼 사람들이 저마다 조금씩 그 불씨를 지켜왔다는것을 알수 있다. 강수동지의 매형 소리, 어머니의 사위감 평가, 감블러동지의 붕어 타령, 딸애들의 아빠 놀음까지, 어느 하나도 우리가 시킨것이 아니였다. 사람들은 그냥 저희들끼리 이 장난을 이어갔던것이다.

그러다 올봄 만우절에 온양선녀동지의 사주 코너에서있었던 일은 이미앞에서 자세히 적었으니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겠다. 다만 그날 이후로 이어진 몇가지 뒤이야기만 마저 적어두고 싶다. 결혼운이 잘 맞는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오래 우리를 따라다녔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지 몇주가 지났는지는 나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방송에서 백곰파동지가 나에게 짐짓 치근대는 시늉을 하였다. 나는 정색하고 이렇게 쏘아붙였다. 《친구의 남자를 건드려.》 대화창은 또 한번 뒤집어졌다.

친구라는 말도, 남자라는 말도 다 《우결》이라는 가상이 낳은 말이였으나 나는 그 순간만은 정말로 화가 난 사람처럼 연기하였다. 블루동지의 게시물에 누군가 남긴 글에는 내가 답으로 귀엽다는 말을 남긴적도 있다. 짧은 답 한마디에 지나지 않았으나 옛 《우결》 시절의 말투가 그대로 살아있는것을 보고 나는 신통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우결》 시절 못지않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고개를 젓는다. 못지않다는 말은 옛것을 기준으로 지금을 재는 말인데 나에게는 그냥 이것이 우리 두 사람이 만나면 저절로 되는 상태일뿐이다.

만우절이라면 블루동지도 만만치 않다. 우주33(2026)년 만우절에 그는 《유튜브》와 《치지직》 방송 이름을 대천사 블루로 바꾸어버렸다. 장난삼아 한 일이였는데 정책 탓에 한달이 넘도록 이름을 되돌리지 못하여 사월 내내 천사 노릇을 하고 다녔다.

나는 그 이름을 볼 때마다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악동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떼여버린지 오래인 그가 이번에는 천사를 자칭하였으니 세상일이란 참으로 돌고 도는 모양이다. 별명 하나 짓는데도 이렇게까지 진심인 사람을 나는 달리 본적이 없다.

블루동지의 성정을 말하자면 평소에는 몹시 차분하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아 어지간한 일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런데 《배그》를 하다 상대를 여럿 처치하고나면 갑자기 톤이 확 올라가서 《아하하하핳 너무 많이 죽여버렸네.》 하고 외친다.

그 순간의 목소리와 평소의 목소리가 어찌나 다른지 처음 듣는 사람은 다들 놀란다.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가끔씩 무자비한 모습이라 하는데 나는 그 표현이 퍽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온순한 사람일수록 한번씩 터지는 순간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법이다.

놀라운것은 서울말을 그렇게 오래 쓰고도 당황하면 사투리가 튀어나온다는 점이다. 무슨 일에 몹시 놀라거나 다급해지면 그의 입에서 카는데 하는 말투가 문득 섞여나온다. 대구 사람인 티가 그렇게 숨길수 없게 남아있는것이다.

나는 방송중에 종종 그를 놀리려고 일부러 그런 순간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그가 사투리를 흘리면 나는 못들은척 하다가 뒤늦게 방금 그거 뭐였냐고 캐물었다. 그러면 그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귀까지 붉어지곤 하였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서 사람들은 우리 사이를 여전히 강블지루라 부른다. 강지와 블루를 붙여 만든 그 이름은 《우결》이 한창이던 시절에 생긴 말인데 지금까지도 죽지 않고 쓰인다. 이름이라는것도 한번 사람들 입에 붙으면 당사자의 뜻과 무관하게 제 생명을 얻는 모양이다.

블루동지의 애호가들은 스스로를 블루몬, 줄여서 쁠몬이라 부른다. 그가 방송을 시작할 때마다 하는 인사말은 한결같다. 《블루몬들 안녕.》 그리고 끝날 때는 《사랑해요 블루몬들, 찡긋.》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나는 몇해나 그 인사말을 들으면서도 매번 조금씩 웃음이 났다. 찡긋이라는 말이 저렇게 커다란 덩치에서 나온다는것이 언제 들어도 어울리지 않게 귀엽기때문이다. 사람의 겉모습과 말투 사이의 그런 어긋남이야말로 방송이라는 일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방송 소개문구도 그의 성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안녕하세요 블루입니다. 제 영상을 볼 때만큼은 우리 쁠몬들이 항상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 문구를 다시 읽을 때마다 그가 처음 방송을 시작하던 시절부터 한결같았다는것을 느낀다.

사람은 바뀌어도 근본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하던데 블루동지가 꼭 그런 경우다. 서든어택 클랜에서 만화영화 인물의 색과 파란빛을 합쳐 레인블루라는 이름을 짓던 그 시절이나, 지금 스텔라이브 성원들에게 아빠 소리를 듣는 지금이나, 사람을 대하는 마음씀씀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강형이라 불릴 정도로 말투가 거칠었다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나 정작 《우결》을 할 때만큼은 목소리 어조를 한껏 낮추고 욕도 삼갔다. 친구 악녀동지는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자기앞에서도 그렇게 좀 말해달라고 부탁한적도 있었다.

나는 그 부탁을 듣고 웃으면서도 한편으로 생각하였다. 사람이 누구앞에서 어떤 모습이 되는가 하는것도 결국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의 크기를 보여주는것이 아닐가. 나는 블루동지앞에서만큼은 이상하게도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강형도 아니고 강공지주도 다 지나간 별명이 되였다. 지금은 다들 나를 정사장이라 부르거나 샤쵸라 부른다. 성원들은 나를 스텔라이브 0기생이라 놀리기도 한다.

별명이 이렇게 여러번 바뀌는 동안에도 블루동지와 나 사이의 그 장난기 하나만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강형이던 시절에도, 샤쵸가 된 지금도, 그와 마주치면 나는 이상하게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사람이 늙는속도와 마음이 늙는속도는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모양이다.

나는 이 대목을 쓰면서 짐짓 력사적인 무게를 실어 말해보고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 왕조든 개국공신들의 우정은 세월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았다고들 하지 않는가. 강블지루라는 이름도 어쩌면 그런 개국공신들의 우정에 견줄만한 무엇이 아닐가 하고 나 혼자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스개다. 나라를 세운 공신과 방송을 하던 동료를 나란히 놓고 견주는것부터가 가당치 않은 비유이다. 그러나 몇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것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나라의 대사와 방송의 소사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오래 서로를 놓지 못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계약은 741일로 끝났고 방송의 형식도 벌써 몇해전에 접었는데, 그 형식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것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나는 아직도 그 답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우리 둘이 함께 만든 그 우스운 가상의 세계가 실은 우리에게도 진짜 즐거운 시간이였기때문이 아닐가 싶다. 가짜로 시작한것이 진짜 습관이 되여버린 셈이다.

딸애들도, 애호가들도, 지인들도 모두 이 놀음에 저마다 한몫씩 얹어왔다. 아빠 소리를 지어낸 칸나동지도, 매형이라 부르는 강수동지도, 사위감 백점을 매긴 어머니도, 전남편 길드라 놀린 백곰파동지도, 다들 우리보다 더 이 장난을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 마음들이 없었다면 《우결》은 진작 사람들 기억에서 지워졌을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장작을 넣어가며 이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고맙고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되풀이되는 장난이라는 이 절의 제목을 정하면서 나는 문득 되풀이라는 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되풀이는 흔히 지루함이나 답보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우리의 되풀이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것이였다.

우리의 되풀이는 같은 자리를 맴도는것이 아니라 몇해를 사이에 두고도 서로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에 더 가깝다. 사람이 오래 만나지 않아도 다시 만나면 어제 헤여진 사람처럼 편안해지는 사이가 있다면, 우리가 바로 그런 사이일것이다. 나는 이것을 《우결》이라는 내용물의 부산물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성과라고 여기고싶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벌써 회사의 이런저런 결재서류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되였다. 방송보다 회의가 많고 우스개보다 공문이 많은 나날이다. 그럼에도 블루동지의 이름 석자만 대화창에 떠도 나는 여전히 웃음부터 나온다.

그러나 이 장난기 넘치는 나날이 언제까지나 무사태평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회사를 맡은 사람에게는 웃음 뒤에 반드시 다른 무게가 따라오는 법이다. 성원 하나하나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앉고보니, 장난으로만 넘길수 없는 일들도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그해 4월, 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그런 무게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는 일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마저 적기로 한다. 지금은 다만 그 봄날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그때처럼 웃고있었다는 사실만을 적어두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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