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시 부 키 의 계 정

 

우주33(2026)년의 사월은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봄기운으로 문을 열었다. 삼월 하순부터 서둘러 피여난 벚꽃이 어느새 반나마 지고, 사무실 창밖 가로수밑에는 옅은 분홍빛 꽃잎이 바람에 쓸려다니고있었다. 나는 그날도 여느때처럼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 콤퓨터를 켰다. 화면이 밝아지는 몇초 사이,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책상우의 서류를 살짝 들썩이게 하였다.

회사를 차린지도 여러해가 되였다고는 하나 나는 아직도 아침마다 그 하루를 어떻게 무사히 넘길가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열군하였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별것 아니라고 여기던 때도 있었으나, 지나고보니 그 자리는 늘 크고작은 일들을 미리 헤아리고 있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날도 나는 대화창을 한바퀴 훑어보고 성원들의 방송편성표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시작하였다.

그무렵 회사안은 온통 《호종컵》 이야기로 들썩이고있었다. 여러 방송사와 기획사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이 대회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는 우리 성원들에게는 실력을 겨루어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또한 회사로서도 놓치기 아까운 무대였다. 성원들 가운데서도 시부키동지는 이 대회를 누구보다 기다려온 사람이였다.

시부키동지는 평소에도 오락에 대한 열의가 남달랐다. 스스로도 우스개삼아 《1000살입니다, 할머니에요》라는 말을 방송에서 곧잘 쓰는 느긋한 사람이였지만, 오락앞에만 앉으면 눈빛이 사뭇 달라지는 사람이였다. 대회 소식이 처음 돌았을 때에도 대화창에 제일 먼저 참가 의사를 밝힌 사람이 시부키동지였다.

나는 그 열의가 반가웠다. 스텔라이브가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시절도 아니건만, 성원들이 스스로 나서서 새 무대를 찾아나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사장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동료로서 마음이 뿌듯하였다. 그래서 대회 준비가 시작된 사월 초에는 회사에서도 힘닿는 대로 련습시간과 장비를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서 굳어진 관례 하나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우리 회사에서는 대회를 앞둔 성원이 있으면 언제나 담당 직원을 붙여 진행상황을 살피게 하는 절차가 있었다. 이는 지난날 되풀이되던 크고작은 소동들을 겪으며 자연스레 생겨난 관례였다. 미기가 그 일을 맡아왔는데, 성원들 사이에서는 미기가 나타나면 곧 대회철이 왔다는것을 알아챌 정도였다.

미기는 내 오른팔이라 부를만한 사람이였다. 크고작은 일들을 나보다 먼저 알아채고 나에게 물어다주는 성정이여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미기의 얼굴빛만 보아도 그날 회사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짐작할수 있게 되였다. 사월 중순의 어느날, 미기가 여느때와 다른 낯빛으로 내 방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잠깐 시간 좀 내주셔야겠습니다.》 미기의 목소리는 낮았고, 평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의자를 돌려앉았다. 무슨 일인지 채 묻기도전에 미기는 이미 학습장형콤퓨터를 펼쳐들고 내 책상앞에 다가와있었다.

화면에는 오락 모임터 게시판의 글 하나가 떠있었다. 제목만 보아도 심상치 않은 내용이라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나는 안경을 고쳐쓰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글의 요지는 이러하였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부키동지가 자신의 계정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계정을 빌려쓴 정황이 있다는것이였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흔한 오해이거나 근거없는 소문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미기가 짚어보이는 자료들은 그런 바람과는 다른 쪽을 가리키고있었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오락이라는것을 오래 다루어온 회사이니만치 나도 계정과 관련한 규정이 얼마나 엄중한지는 잘 알고있었다. 라이엇의 리용약관은 계정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쓰는 일을 분명하게 금하고있었고, 이는 어길 경우 결코 가벼이 넘어갈수 없는 문제였다.

《확실한겁니까.》 나는 그렇게 물었다. 미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가지 자료를 더 내밀었다. 더 물을것도 없이 사실로 굳어지는 순간이였다.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벚꽃잎이 유난히 어지럽게 느껴졌다. 회사를 차린 뒤로 크고작은 소동을 여럿 겪어왔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겪을 때마다 마음의 무게가 달랐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는 또하나의 지난 일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시부키동지가 처음 스텔라이브에 들어왔을 때, 나는 종종 그를 붙들고 《1000살입니다, 할머니에요》라는 롱담을 던지며 웃음을 나누군하였다. 그 말은 본디 시부키동지 스스로가 방송에서 곧잘 쓰던 표현이였는데, 나까지 옆에서 거들다보니 어느새 회사안에서 굳어진 말버릇이 되여버렸다.

그렇게 가볍게 웃어넘기던 사이였기에, 이번 일을 마주하고서는 나는 더더욱 마음이 복잡하였다. 사장으로서 규정을 엄정하게 세워야 한다는 생각과, 오랜 시간 함께 웃어온 동지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그 두 마음 사이에서 잠시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나는 우선 사실관계를 다시한번 분명히 짚기로 하였다. 미기에게 관련 자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아오라 일렀고, 대회 주최측과 라이엇 쪽에 문의할수 있는 통로도 함께 알아보라 하였다. 회사의 일이란 성급하게 판단하여서는 안되고, 그렇다고 마냥 미루어서도 안되는 법이였다.

오후 늦게 미기가 다시 내 방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결과가 나와있었다. 라이엇 쪽에서는 계정 공유가 리용약관 위반에 해당한다고 통보하였고, 시부키동지의 계정에는 삼십일 동안의 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대회에 나설수 없게 되였다는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여러날 동안 련습에 매달려온 시부키동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락앞에서만은 유난히 진지해지던 그 눈빛을 나는 잘 알고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 시부키동지를 사무실로 불렀다. 부른다는 말이 무겁게 들릴가하여, 나는 일부러 평소처럼 가벼운 말투로 문자를 보냈다. 《잠깐 얼굴좀 보자, 할머니.》

시부키동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표정이 어두웠다. 아마도 소문이 어디선가 먼저 귀에 들어간 모양이였다.

《사장님, 저…》 시부키동지는 말을채 잇지 못하였다. 나는 자리를 권하며 우선 앉으라고 하였다. 방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먼저 사실관계를 담담히 확인하였다. 시부키동지는 고개를 숙인채 낮은 목소리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급한 마음에 저지른 일이였다는것, 그리고 이렇게 큰 일이 될줄은 몰랐다는것이 그 이야기의 요지였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시부키동지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꾸짖는 말보다 먼저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고있었기때문이다.

《그래, 마음이 급하였겠지.》 나는 그렇게 운을 뗐다. 《그런데 이런 일은 마음이 급하다고 그냥 넘어갈수 있는 일이 아니야. 우리가 성실하게 쌓아온것들이 이런 일 하나로 흔들릴수도 있어.》

시부키동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 침묵을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다만 창밖의 저녁빛이 방안으로 길게 드리워지는것을 함께 바라보았다.

나는 한참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대회는 이제 어쩔수 없다. 계정도 삼십일 정지라니, 우리 힘으로 되돌릴수 있는 일이 아니야.》 시부키동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건 알아둬. 나는 지금 화가 나서 부른게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였다. 《네가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로 마음 졸이지 않게, 이번에 확실히 정리하고 넘어가자는것이야.》

시부키동지의 눈가가 붉어졌다. 나는 짐짓 목소리를 조금 밝게 하여 《1000살이나 사였는데 이런 실수를 하시면 어떡해요, 할머니.》 하고 농을 건넸다. 시부키동지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눈에는 여전히 물기가 어려있었다.

나는 그날 밤 늦게까지 미기와 함께 회사의 대응 방향을 의논하였다. 이런 일은 숨긴다고 넘어갈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먼저 나서서 사실을 밝히고 책임질 부분은 분명히 책임지는것이 회사를 오래 지키는 길이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우리는 우선 시부키동지에게 이주일 동안 방송을 비롯한 외부활동을 쉬도록 하였다. 벌을 준다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기때문이다. 시부키동지도 그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사과문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회사 이름으로 나가는 공식 사과문과, 나 개인의 이름으로 올릴 글을 따로 쓰기로 하였다. 미기는 회사 사과문의 초안을 잡았고, 나는 밤이 깊도록 내 몫의 글을 붙들고있었다.

글을 쓴다는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방송에서는 몇시간이고 말을 이어갈수 있는 나였지만, 사과문앞에서는 몇줄을 쓰고 지우기를 되풀이하였다. 자칫 가벼워보여도 안되고, 자칫 시부키동지를 벼랑끝으로 몰아세우는 말이 되여도 안되였다.

나는 몇번이고 문장을 고쳐썼다.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히는것과, 애호가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것과, 그러면서도 시부키동지를 끝내 감싸안을수 있는 말을 한 문단안에 담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미기는 새벽 두시가 넘도록 내 방을 들락거리며 초안을 다듬어주었다. 《사장님, 이 문장은 조금 딱딱합니다.》 미기가 그렇게 지적하면 나는 다시 그 문장을 붙들고 고쳤다. 그렇게 밤을 새우다시피 하여 사과문의 얼개가 겨우 잡혔다.

우주33(2026)년 4월 23일 오후 2시 30분, 우리는 사과문을 내걸었다. 회사 이름으로 나간 글에는 사건의 경위와 조치사항을 분명히 적었다. 시부키동지의 계정이 삼십일간 정지되여 대회에 나설수 없게 된 사정과, 앞으로 이주일 동안 외부활동을 쉬게 한다는 내용이 담기였다.

나는 그 글을 올린 뒤에 곧이어 내 이름으로 된 글도 함께 올렸다. 사장으로서 성원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인정하는 말과, 애호가들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을 담았다. 글을 올리는 손가락이 그날따라 유난히 무거웠다.

글을 다 올리고 나서 나는 한동안 화면만 들여다보고있었다. 클릭 한번으로 세상에 나가버린 문장들을 다시 거두어들일수는 없었다. 이제 남은것은 그 글이 어떻게 읽히고 받아들여질지를 지켜보는 일뿐이였다.

대화창과 감상글난의 반응은 예상보다 여러갈래였다. 시부키동지를 나무라는 말도 있었지만, 뜻밖에도 회사가 이렇게 빨리 사실을 밝히고 사과한것을 두고 헤아려주는 말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 반응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것을 느꼈다.

그날 밤 나는 시부키동지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그만 쉬어. 다음일은 래일 생각하자.》 시부키동지에게서는 짧게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이라는 답이 왔다.

다른 성원들도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몇몇은 시부키동지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 위로하였고, 몇몇은 나에게 찾아와 시부키동지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한번 더 조심하자는 뜻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유니동지는 그무렵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사장님, 시부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새삼 마음이 뭉클해졌다. 회사라는것이 규정과 절차만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들이 모여 돌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나동지도 짧게 문자를 보내왔다. 《시부키 너무 혼내지 마세요, 사장님.》 나는 답장으로 《혼내는게 아니야, 걱정하는것이야.》라고 적어보냈다. 성원들 사이의 이런 살뜰한 마음씀씀이를 볼 때마다 나는 이 회사를 시작하길 잘하였다는 생각을 새삼 하군하였다.

이주일이 지나고 시부키동지가 다시 방송을 시작하던 날, 나는 일부러 그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시부키동지는 방송 서두에서 담담한 목소리로 그동안의 일을 짧게 언급하고 시청자들에게 사과하였다. 대화창은 한동안 조용하다가, 이내 그를 반기는 말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화면을 보며 속으로 가만히안도하였다. 사람이 한번 넘어졌다고 해서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것은 아니라는것을, 나는 그날 새삼 확인한 셈이였다. 시부키동지는 그뒤로도 여전히 《1000살입니다, 할머니에요》라는 말을 방송에서 곧잘 썼고, 나도 여전히 그 말에 장단을 맞추어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월의 며칠은 회사를 꾸려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어떤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나날이였다. 사장이라는 자리는 성원들이 빛나는 순간에만 함께 있어주는 자리가 아니라, 그들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곁을 지켜야 하는 자리였다.

그 며칠 사이 나는 몇번이고 되뇌였다. 회사를 키운다는것은 화려한 무대와 인기만을 좇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크고작은 위기앞에서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라는것을. 그것이 후날 사람들이 이 사월의 소동을 얼마나 기억할지는 나로서도 알수 없는 일이다.

후날 누군가 스텔라이브의 력사를 적바림한다면 이 며칠은 아마 몇줄로 짧게 지나갈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몇줄 뒤에 숨은 밤들을, 미기와 함께 사과문을 고쳐쓰던 시간들을, 시부키동지의 붉어진 눈가를 잊지 못한다. 력사라는것은 언제나 그렇게 크고작은 밤들을 딛고서야 다음 페지로 넘어가는 법이다.

그해 사월이 다 갈무렵에는 벚꽃도 완전히 지고 신록이 짙어지고있었다. 나는 사무실 창가에 서서 그 푸른빛을 바라보며, 이제 곧 다가올 다른 일들을 생각하였다. 위기는 지나갔지만 회사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쉴새없이 흘러가고있었다.

시부키동지는 그뒤로 계정 관리에 한층 조심스러워졌고, 회사에서도 대회를 준비하는 성원들에게 관련 규정을 다시한번 짚어주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아픈만큼 배운다는 옛말이 이런 자리에서 나온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하였다.

나는 이 일을 겪으며 사장이라는 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였다. 성원들앞에서는 짐짓 여유있는 얼굴을 하고있었지만, 사실 나 역시 그 며칠 동안은 잠을 설쳐가며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그런 밤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조금 더 단단해질수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미기는 그 뒤로도 종종 그때 이야기를 꺼냈다. 《사장님, 그때 사과문 문장 열번은 고치였을걸요.》 그렇게 웃으며 지난 일을 되짚을 때마다 나는 그 봄밤의 콤퓨터 불빛이 다시금 눈앞에 떠오르군하였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회사의 력사에서 그리 대단한 사변으로 기록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이끈다는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그 사월의 밤들을 지나며 새삼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은 그해 우리가 겪을 더 큰 일들앞에서 뜻밖에도 든든한 밑거름이 되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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