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 S T A R T R A I L 》

 

우주33(2026)년 오월에 접어들면서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여름을 향해 치닫고있었다. 사월의 벚꽃은 진작에 자취를 감추고 거리마다 짙은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이른 아침에도 사무실 창을 활짝 열어놓고 콤퓨터를 켰다. 화면이 밝아지는 짧은 순간, 창밖에서 새소리가 섞여들어왔다.

사월의 소동을 겪은 뒤라 그런지 오월의 첫 며칠은 유난히 조용하게 흘러갔다. 시부키동지의 방송도 제 궤도를 되찾았고, 대화창의 분위기도 예전처럼 화기애애해졌다. 나는 그 평온함이 오래가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종류의 긴장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있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일이 마침내 세상에 나올 날이 코앞으로 다가와있었기때문이다.

그 일이란 다름아닌 회사의 첫 음반, 《STAR TRAIL》의 발매였다. 노래말이 있는 넉곡에 그 노래들의 반주만을 담은 넉곡을 더해 모두 여덟곡으로 이루어진 음반이였다. 발매일은 오월 여드레, 저녁 여섯시로 정해져있었다. 그날짜를 달력에 표시해두고 나는 몇번이나 손끝으로 짚어보군하였다.

발매를 앞둔 한주일 동안 회사의 여러 계정에서는 콘셉트 사진과 짧은 예고편이 하나둘 풀려나갔다. 애호가들은 그 사진 한장, 영상 몇초를 두고 대화창에서 온갖 추측을 쏟아놓았다. 어떤 이는 표지 색을 보고 곡의 분위기를 짐작하였고, 어떤 이는 예고편에 스쳐지나간 소리만으로 노래말 한줄을 알아맞히려 애썼다.

나는 그 추측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웃음짓다가도, 정작 그 추측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였다. 사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나는 아직 그런 사소한 일에 이렇게 마음을 졸이는 사람이였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사장님도 참, 그냥 팬 반응 보는것이잖아요》하고 놀리듯 말하였다.

이 음반을 준비하는 몇달 동안 사무실은 여느때와 다른 소리로 채워지고는 하였다. 록음실에서 돌아온 성원들의 목이 쉬여있었고, 작업용 콤퓨터에서는 밤늦도록 반주가 흘러나왔다. 나는 사장으로서 그 과정을 하나하나 챙기면서도, 한 사람의 팬으로서 그 노래들을 미리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였다.

록음실은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목에 자리잡고있었다. 방음문을 열고 들어서면 늘 은은한 커피 냄새와 함께 머리수화기 여러개가 나란히 걸린 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끔 그 자리에 들러 칸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원의 뒤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군하였는데, 그 진지한 표정을 볼 때마다 절로 숙연해지고는 하였다.

타이틀곡을 정하던 자리도 잊혀지지 않는다. 넉곡의 후보를 모두 틀어놓고 성원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곡을 두고 의견을 나누었는데, 좀처럼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결국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손을 들어 셈하는 방식으로 결정을 내렸는데, 나는 그 광경이 무슨 대단한 회의라도 되는 양 신중하게 지켜보았다.

표지 사진을 고르는 자리에도 나는 직접 참석하였다. 디자이너가 몇가지 시안을 늘어놓았을 때, 나는 별이 길게 궤적을 그리며 지나가는듯한 그림 하나에 눈이 갔다. 《STAR TRAIL》이라는 이름과도 잘 어울렸고, 무엇보다 우리 회사의 이름에 담긴 별이라는 뜻과도 통하는듯하여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이 음반 이야기를 제대로 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그것은 우주30(2023)년 늦가을, 한 오락전문매체와 나눈 인터뷰자리에서였다. 그때 나는 아직 회사가 자리를 완전히 잡지 못하였다고 여기고있었고, 인터뷰라는것도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기자는 나에게 스텔라이브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려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다음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잘할수 있고 좋아하는것을 할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어쩌면 뻔한 대답이였을지 모르나, 그때 나는 그 말에 진심을 실었다.

나는 이어서 이런 말도 하였다. 《앞으로 빠른 페이스로 음악 콘텐츠로 다양한 시도를 할 예정이다.》 그때는 그저 인터뷰를 마치기 위한 다짐 정도로 여기였을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이란 한번 세상에 나가면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무게를 지니게 되는 법이다.

나는 그 인터뷰 자리에서 지난 실패담도 숨기지 않고 꺼내였다. 예전에 다른 회사를 꾸리다가 《원하는만큼의 시청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결국 회사를 접어야》 하였던 그때의 일을 나는 담담히 이야기하였다. 그런 실패를 한번 겪은 사람인지라, 음반이라는 새 도전을 함부로 벌이지 못하고 몇해나 저울질만 하고있었던것이 사실이다.

같은 자리에서 나는 유니동지와 칸나동지에 대해서도 몇마디를 보태였다. 유니동지를 두고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밝게 웃으며 포기하지 않는 친구》라 하였고, 칸나동지를 두고는 《항상 밝은 모습과 열정을 보여주는 친구》라 하였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야말로 《오히려 내게 힘이 돼주는 친구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날 인터뷰의 마지막에 나는 이런 말로 끝을 맺었다. 《우리를 통해 많은 팬들이 행복을 얻을수 있는 그런 미래를 꿈꾸고있다.》 인터뷰가 실린 페지를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서 나는 스스로 한 말이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하였다. 그러나 그 말을 실제로 노래 여덟곡으로 여물릴 때까지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릴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사람이 마음속으로 품은 다짐이라는것은 씨앗과 같아서, 심어놓은 그 순간에는 그것이 언제 싹틀지 아무도 알수 없다. 나는 그 인터뷰 이후로도 몇해 동안 음악 이야기를 여러 자리에서 꺼내었으나 좀처럼 구체적인 계획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회사가 커가는속도에 맞추어 하나씩 순서를 밟아가야 하였기때문이다.

음반을 정식으로 준비하자는 이야기가 회의 자리에서 처음 나왔을 때에도 나는 선뜻 그러자고 대답하지 못하였다. 성원들의 방송 편성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빠듯하였고, 거기에 록음과 작곡, 편곡까지 더하자면 감당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였기때문이다. 그러나 미기를 비롯한 직원들이 몇번이나 계획서를 다시 짜서 가져오는것을 보고, 나는 결국 그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야기를 다시 오월로 돌려놓아야겠다. 발매일 당일, 나는 아침부터 사무실에 나와 회의실 자리를 정리하였다. 그날은 성원들 전체가 한자리에 모여 발매 순간을 함께 지켜보기로 한 날이였기때문이다.

미기가 아침 일찍부터 큰 화면을 회의실 벽에 걸고 콤퓨터와 련결하는 일을 맡아하였다. 미기는 이런 자리마다 늘 앞장서서 준비를 도맡는 사람이였다. 《사장님, 여섯시 정각에 딱 맞춰서 새로고침 누를수 있게 미리 페지 열어놓을게요.》 미기가 그렇게 말하며 콤퓨터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나는 문득 그날이 오월 여드레라는것을 다시 떠올렸다. 어버이날이였다. 회사안에서는 성원들이 나를 두고 《엄마》라 부르고 저희끼리는 《딸내미들》이라 부르는 말이 어느새 자리를 잡아가고있었다.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그저 회사를 이끄는 사람일뿐이지 누구의 어머니는 아니라고 몇번이나 잘라 말하였다. 그러나 말이란 한번 퍼지면 좀처럼 되돌릴수 없는 법이어서, 오월 여드레가 다가오자 성원들은 짐짓 그 말을 다시 꺼내들었다.

《엄마, 오늘 어버이날인거 아였어요?》 유니동지가 회의실에 들어서면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는 짐짓 모른체하며 화면을 들여다보았으나 귀끝이 슬며시 뜨거워지는것을 느꼈다. 미기가 그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내여 웃었다.

《엄마 아니라니까.》 나는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성원들은 그런 나를 보며 더욱 신이 나서 저희끼리 눈짓을 주고받았다. 오후 시간이 그렇게 왁자하게 흘러갔다.

오후 세시가 지나자 회의실에는 하나둘 성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가 나란히 들어와 뒤편 자리에 앉았고, 리제동지는 학습장형콤퓨터를 옆구리에 끼고 들어와 발매 페지를 미리 열어보았다. 타비동지는 문앞에서 신발을 벗다 말고 《떨린다, 진짜 떨린다》를 몇번이나 되뇌였다.

시부키동지는 여느때처럼 느긋한 얼굴로 들어와 소파에 몸을 기대였다. 《떨긴 뭘 떨어, 나는 1000살입니다, 할머니에요. 이런 날 한두번 겪어본줄 알아?》 그 말에 회의실안이 웃음으로 채워졌다.

동지와 나나동지도 나란히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동지는 표지 그림이 인쇄된 종이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몇번이나 들여다보았고, 나나동지는 그 옆에서 노래를 낮게 흥얼거리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하였다.

리코동지와 후야동지도 뒤이어 들어왔다. 리코동지는 3기로서 아직 회사 일에 서투른 부분이 많았지만, 그날만은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여 자리를 정돈하는데 손을 보태였다. 후야동지는 그런 리코동지의 어깨를 툭툭 치며 《오늘 하루는 그냥 즐기면 된다》고 다독여주었다.

누군가는 곽밥을 사들고 왔고, 누군가는 편의점 봉지에서 남새김밥과 초콜릿을 꺼내 탁자우에 늘어놓았다. 회의실은 금세 소풍이라도 나온것 같은 분위기로 바뀌였다. 나는 그 소란스러움이 싫지 않았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새삼 이 회사가 여기까지 왔다는것을 실감하였다. 몇해전만 해도 나 혼자 콤퓨터앞에 앉아 방송편성표를 짜던 밤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화면을 바라보며 같은 순간을 기다리고있는것이다.

시간이 다섯시 반을 넘어서자 회의실안의 말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다들 저마다 손에 손전화를 쥐고 시계바늘을 흘끔거렸다. 미기는 콤퓨터앞에 바짝 붙어앉아 새로고침 단추우에 손가락을 올려놓고있었다.

《오분 남았습니다.》 미기가 낮은 목소리로 알렸다. 그 한마디에 회의실안의 공기가 한층 팽팽해졌다. 나는 무릎우에 올려놓은 손을 가만히 그러쥐였다.

유니동지가 옆자리의 타비동지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타비동지는 그 손을 마주잡으며 애써 웃어보였으나 눈빛에는 긴장이 역력하였다. 히나동지는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조용히 되뇌이고있었다.

《일분 남았습니다.》 미기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는 화면 오른쪽우에 뜬 시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초침이 마지막 몇바퀴를 도는 소리가 마치 귀에 들리는것 같았다.

여섯시 정각, 미기가 새로고침 단추를 눌렀다. 화면이 잠깐 하얗게 깜빡이더니 이내 《STAR TRAIL》이라는 글자가 앨범 표지와 함께 떠올랐다. 회의실안에서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함성이 터져나왔다.

유니동지는 그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이였다. 나는 처음 보는 그 표정에 순간 말을 잃었다가, 이내 손을 뻗어 유니동지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잘하였다, 정말 잘하였다.》 그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나동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되였다! 진짜 나왔다!》 나나동지의 목소리가 회의실 벽을 쩌렁쩌렁 울렸다.

타비동지는 노래를 재생시켜놓고 눈을 감은채 가만히 듣고있었다. 몇달 동안 록음실을 드나들며 흘린 땀을 그 순간에 되새기는듯 하였다. 나는 그 옆얼굴을 보며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히나동지는 두손으로 눈을 가리고있다가 함성 소리에 놀라 손을 떼고는 화면을 다시 확인하였다. 마시로동지는 그 옆에서 말없이 박수를 치며 미소지었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였는데, 그 짧은 몸짓만으로도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는듯 하였다.

시부키동지만은 여전히 여유있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있었으나, 화면에 뜬 앨범 표지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걸로 나도 1000년 뒤까지 이름을 남기게 되는건가.》 그 능청스러운 한마디에 회의실은 또 한번 웃음바다가 되였다.

리제동지는 조용히 화면을 찍어 개인 계정에 올릴 준비를 하였다. 《팬들한테 제일 먼저 알려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리제동지의 손끝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동지와 나나동지도 서로의 손을 맞잡고 방방 뛰였다.

리코동지는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으려는듯 회의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후야동지는 그런 리코동지의 등을 밀며 《이런 날은 평생 몇번 없다, 잘 봐둬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속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면서 오래전 인터뷰에서 하였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앞으로 음악 내용물로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던 그 다짐이, 삼년이 지난 이 저녁에야 비로소 눈앞의 화면으로 나타난것이였다. 사람의 말이 이렇게 여물기까지 걸리는 세월을 그때는 짐작도 하지 못하였다.

발매 순간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이번에는 다들 판매량 수자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하였다. 미기는 음원 페지와 별도로 실물음반 집계 페지를 계속 새로고침하며 수자를 확인하였다. 《초동이 벌써 이만장을 넘었어요.》 미기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묻어났다.

그날 저녁부터 하루밤사이, 회의실을 나선 뒤에도 나는 몇번이나 손전화로 그 수자를 확인하였다. 자정을 넘기고 새벽으로 접어들면서 수자는 계속 불어났다. 결국 초동 판매량은 십이만 칠천사백여장에 이르렀다는것을 나중에 미기의 보고로 확인하였다.

그 수자가 어느 정도의 자리에 해당하는지 나는 처음에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어느 차트가 이를 두고 력대 녀성그룹 음반 초동 순위 118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는 말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랐으나, 그 순위를 매긴 차트의 원 페지를 내 손으로 직접 열어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그 순위를 단정지어 적을 처지는 못된다. 다만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수많은 녀성그룹들의 음반들 사이에 우리의 첫 음반이 이름 석자를 나란히 올려놓았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고 여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발매를 이틀 앞둔 밤, 나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완성된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일이 있다. 창밖은 이미 캄캄하였고 콤퓨터 화면의 불빛만이 방안을 밝히고있었다. 여덟곡이 차례로 흘러나오는 동안 나는 몇번이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을 애써 참아야 하였다.

회사를 차린지 여러해가 지났지만 이런 종류의 감격은 처음이였다. 방송으로 얻는 기쁨과 음반으로 얻는 기쁨은 그 결이 사뭇 달랐다. 방송은 그 순간이 지나면 흘러가버리지만, 음반은 손에 쥐고 두고두고 꺼내볼수 있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였다.

나는 그날 밤 미기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말을 몇번이나 되풀이하였다. 미기는 겸연쩍은듯 《제가 한게 뭐 있나요, 다 성원들이 노래를 잘 만들고 잘 불러서 그런거죠》라며 웃어넘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 뒤에서 미기가 몇달 동안 서류와 일정을 챙기며 밤을 지새운 날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발매 며칠 뒤 물류창고에서 실물음반 견본이 회사로 배달되여왔을 때, 나는 다른 일을 다 미뤄두고 그 상자부터 뜯어보았다. 상자속에서 나온 음반을 손에 쥐고 표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별이 길게 궤적을 그리며 지나가는 그림이 조명 아래서 은은하게 빛을 냈다. 나는 그 조그마한 물건 하나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줄은 몰랐다.

대화창에 뜨는 수자와 손안의 음반은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방송을 하는 동안에도 시청자 수나 후원 수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화면안에서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것이였다. 그러나 이 음반은 서랍속에 넣어두면 몇해가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을 물건이였고,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차오르는것을 느꼈다.

나는 문득 이 여덟곡 가운데 반주만 남은 넉곡을 두고 왜 굳이 그런 구성을 하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일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음반을 두툼하게 채우려는 뜻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담당자에게 들으니, 애호가들이 직접 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볼수 있게 하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나니 나는 그 넉곡의 반주가 사뭇 다르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노래말이 없는 그 자리에는 대신 애호가들 각자의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가 비여있는 셈이였다. 방송이 성원과 팬을 마이크 하나로 잇는 일이라면, 이 반주곡들은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애호가들 스스로가 노래의 주인이 되게 하려는 뜻이 아니였을가 싶다.

발매 직후 대화창과 여러 페지에는 우리말뿐 아니라 낯선 나라의 글자들도 함께 올라오고있었다. 나는 그 글자들을 다 읽지는 못하였으나, 그 밑에 나란히 찍힌 하트표와 느낌표만으로도 어떤 마음인지 넉넉히 짐작할수 있었다. 바다 건너에서도 우리 노래를 듣고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왔다.

발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사무실 콤퓨터앞에 앉아 밤사이 쌓인 반응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대화창과 여러 페지에는 축하의 말들이 끝없이 이어지고있었다. 후원 창에는 축하 쪽지와 함께 후원이 쏟아졌다는 보고도 미기를 통해 들었다.

나는 그 화면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지난 사월에는 계정 논란으로 밤잠을 설쳤던 이 자리에서, 이제는 음반 축하 쪽지를 읽으며 다시 밤을 지새우고있었다. 회사를 꾸린다는것은 이렇게 위기와 기쁨이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나날의 련속이라는것을 나는 그 아침에 새삼 깨달았다.

유니동지는 그날 오후 자신의 방송에서 밤새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고 시청자들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그 방송을 지켜보며 유니동지가 인터뷰에서 내가 하였던 말 그대로, 힘든 순간에도 밝게 웃으며 포기하지 않던 사람이라는것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그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밤들이 숨어있었을지 나로서는 다 헤아릴수 없었다.

칸나동지는 이제 이 회사의 성원이 아니였으나, 나는 그날 문득 인터뷰에서 그를 두고 하였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밝은 모습과 열정이라는 짧은 말로는 다 담을수 없는 사람이 바로 칸나동지였다. 그가 있었더라면 이 노래들을 두고 얼마나 신이 나서 이야기하였을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시부키동지는 그 뒤로도 종종 《내가 앨범도 낸 사람이다, 1000살 할머니가 앨범까지 냈다》는 농담을 방송에서 곧잘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사월의 소동이 언제 있었냐는듯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어려운 고비를 넘고나면 이렇게 다시 농담을 할 여유를 되찾는다는것을, 나는 시부키동지를 통해 거듭 배웠다.

며칠 지나지 않아 회사안에서는 이 음반을 두고 짐짓 거창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하였다. 누군가는 이날을 두고 《스텔라이브 음악사의 원년》이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회사를 세운 이래 가장 큰 사변》이라 하였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짐짓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여덟곡짜리 음반 하나 낸 일을 두고 사변이라 부르는것은 지나친 과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과장을 굳이 나서서 바로잡지 않았다. 작은 회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런 과장 섞인 농담들이야말로 우리를 버티게 해준 힘이였다는것을 나는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후날 이 회사의 력사를 따로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오월 여드레를 두고 무슨 대단한 전략적 결단이라도 있었던것처럼 풀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그날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회의실에 모여앉아 곽밥을 먹으며 새로고침 단추 하나를 함께 기다린것뿐이였다. 력사라는것은 이렇게 소박한 순간에도 종종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싶어하는 법인가보다.

미기는 그 며칠 사이 판매량 수자를 정리한 표를 만들어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사장님, 이거 액자에 넣어서 회의실에 걸어놓을가요?》 나는 그 말에 웃으며 손사래를 쳤으나, 며칠 뒤 정말로 그 표가 회의실 한켠에 걸리는것을 보고는 못이기는척 그냥 두었다.

나는 그 표를 볼 때마다 오월 여드레의 그 저녁을 떠올린다. 여섯시 정각, 화면 가득 떠오르던 《STAR TRAIL》이라는 글자와, 그 앞에서 함성을 지르던 성원들의 얼굴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옆에서 짐짓 모른체하면서도 귀끝이 뜨거워졌던 나 자신을 떠올린다.

그날은 미처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저녁은 회사가 방송을 넘어 다른 길로도 걸어갈수 있다는것을 처음으로 증명해보인 자리였다. 우리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노래로 애호가들과 만날수 있다는것을 그날 배웠다. 그것은 방송 하나로만 애호가들을 만나오던 우리에게 새로운 문 하나가 열린 셈이였다.

그 저녁 이후로 회사안에서는 이 노래들을 무대우에서 직접 불러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이 조심스레 오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자신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으나, 성원들의 눈빛에는 이미 다음 꿈이 어른거리고있는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 꿈이 어떤 모양으로 여물어갈지는 그때의 나로서는 알수 없는 일이였다.

나는 요즘도 이따금 그 여덟곡을 순서대로 틀어놓고 사무실 일을 본다. 노래가 흐르는 넉곡의 자리에서는 성원들의 목소리가 귀에 익어 절로 흥얼거리게 되고, 반주만 남은 넉곡의 자리에서는 언젠가 애호가들이 그 자리를 채워 부를 노래를 상상해본다. 그럴 때마다 오월 여드레의 그 회의실 풍경이 다시금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날 밤 늦게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도 짧게 전화를 걸어 오늘 첫 앨범을 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어머니는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몇번이나 축하한다는 말을 되풀이하였고, 나는 괜히 겸연쩍어 그저 별거 아니라고만 대답하였다. 전화를 끊고나서야 나는 그날이 어버이날이라는것을, 정작 나 자신도 누군가의 딸이라는것을 새삼 떠올렸다.

어버이날에 발매되였다는 우연 하나를 두고도 성원들은 두고두고 그 말을 놓지 않았다. 《엄마가 딸내미들 첫 앨범 받은 날》이라는 말이 한동안 대화창에서 돌았고, 나는 그때마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제는 그 말에 예전만큼 손사래를 치지 않게 되였다. 사람이 부르는 말을 억지로 막을수는 없다는것을, 나는 이 회사를 꾸리며 조금씩 배워가고있다.

후날 누군가 스텔라이브의 력사를 노래로만 적바림한다면 이 오월 여드레는 아마 그 첫장에 놓일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한줄 뒤에 숨은, 록음실에서 흘린 땀과 회의실에 모여앉아 초침 소리에 귀기울이던 그 저녁의 공기를 잊지 못할것이다. 력사라는것은 언제나 그렇게 사람들의 숨결로 채워진 뒤에야 한줄로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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