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 과
그해 초여름은 오월의 끝자락부터 이상하리만치 조용히 찾아왔다. 장마전선이 아직 남쪽바다우에 머물러있었으므로 하늘은 맑았고, 저녁이 되면 사무실 창으로 옅은 노을이 길게 들어왔다. 나는 그무렵 저녁마다 콤퓨터앞에 앉아 그날치 음원차트를 들여다보는 버릇이 새로 생기였다. 첫 EP를 내놓은지 한달이 다 되여가는 참이였다.
《STAR TRAIL》이라는 이름을 단 그 음반은 발매 첫주에만 십이만 칠천사백장 남짓 팔려나갔다. 담당 직원의 말을 빌면 이는 력대 걸그룹 음반의 초동판매 순위에서 백십팔번째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하였다. 나는 그 수자를 처음 전해들었을 때 솔직히 백십팔등이라는 자리가 높은것인지 낮은것인지 얼른 가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 깊도록 그 수자를 몇번이고 곱씹어보다가 나는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이 좁은 땅에 그토록 많은 걸그룹들이 그토록 많은 음반을 내여왔다는 사실 자체가 새삼 놀라웠던것이다. 그 수많은 이름들 사이에 우리의 이름 하나가 백십팔번째로나마 끼여들었다는것은, 어쩌면 이 회사가 음악이라는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 세월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 스텔라이브라는 이름을 처음 내걸었을 때만 하여도 나는 노래라는것을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성원들은 저마다 오락을 하고 잡담을 나누고 시청자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것으로 하루를 채웠을뿐, 노래는 그저 방송 도중 흥이 오르면 한곡 불러보는 정도의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 봄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우주31(2024)년 이월, 우리는 회사 이름으로 처음 노래 한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Milky Way》라는 이름의 그 싱글은 전체 성원이 함께 부른 첫 곡이였다.
그때만 해도 록음실이라는 곳이 낯설어 성원들은 마이크앞에만 서면 유난히 굳어지군하였다. 나는 칸 밖에 앉아 유리창 너머로 한사람씩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평소 방송에서는 그렇게 씩씩하던 성원들도 머리수화기를 쓰고 서있을 때만은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어있었다.
《사장님, 이거 제 목소리 맞아요?》 록음이 끝난 뒤 머리수화기를 벗으며 누군가 그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자기 목소리를 몇번이고 되돌려듣고서야 비로소 안심하는 표정들이였다. 나는 그 서투른 얼굴들을 보며 이 회사가 언젠가는 노래로도 이름을 남길수 있으리라고는, 솔직히 그때까지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Milky Way》이후로 성원들 사이에는 조금씩 노래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해 사월에는 2기 유니버스 성원들이 자기들만의 첫 싱글 《Stars Align》을 내놓았고, 팔월에는 3기 클리셰 성원들이 《Our Tales》로 그 뒤를 이였다. 같은 회사안에서도 저마다 다른 빛갈의 노래가 태여나는것을 지켜보는 일은 나에게 뜻밖의 즐거움이였다.
유니버스의 노래에는 유니버스다운 서늘하고 맑은 결이 있었고, 클리셰의 노래에는 클리셰다운 발랄하고 힘찬 결이 있었다. 나는 이따금 그 두 노래를 나란히 틀어놓고 얼마나 다른가를 새삼 확인해보군하였다. 한 지붕밑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소리들이 자라난다는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였다.
그해 겨울에는 또하나의 잊을수 없는 무대가 있었다. 우주31(2024)년 십이월 스무하루, 유니동지가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첫 단독 음악회 《Christmas On The Merry Go Round》를 열었던것이다. 삼천오백명 남짓한 관객이 그 넓은 체육관을 가득 채운 광경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 무대 뒤편에서 나는 유니동지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것을 보았다. 《사장님, 저 진짜 떨려요.》 유니동지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는데, 웃음소리에도 긴장이 묻어있었다. 나는 그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떨리는만큼 잘될거다.》 하고 대답해주는것밖에는 달리 해줄것이 없었다.
그날 무대에는 뜻밖의 손님도 함께 하였다. 리제동지가 게스트로 나서서 유니동지와 듀엣무대를 꾸민것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무대 뒤에서 지켜보며, 나는 이 회사가 어느새 이렇게 서로를 빛내여주는 사이가 되였구나 하는 생각에 코끝이 시큰하였다.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리제동지는 유니동지를 끌어안으며 《언니, 오늘 진짜 멋있었어요.》 하고 말하였다. 유니동지는 아직 상기된 얼굴로 《너 없었으면 오늘 어떻게 하였을지 몰라.》 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 곁에서 그저 흐뭇하게 지켜볼뿐이였다.
그날 밤 늦게 성원들과 함께 뒤풀이자리에 앉아있으려니 누군가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우리도 언젠가 다같이 무대에 서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이 씨앗이 되여 이듬해 얼마나 큰 무대로 자라날지는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해가 바뀌여 우주32(2025)년이 되자 회사안에서는 자연스레 전체 성원이 함께하는 큰 공연을 열어보자는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하였다. 아홉명 남짓한 성원이 한무대에 서는 공연을 준비하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그러나 실무일군과 몇차례 회의를 거듭하는 사이 그 계획은 점점 구체적인 모양을 갖추어갔다. 킨텍스라는 큰 공간을 빌리고, 전체 성원이 저마다의 무대를 하나씩 갖되 마지막에는 모두가 함께 서는 순서를 넣기로 하였다. 공연 이름은 우리가 발매하기로 한 신곡의 제목을 따서 《STAR TRAIL》로 정하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공연 자체보다 먼저 예매 과정에서 겪은 소동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우주32(2025)년 시월,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선예매가 시작되였을 때 우리는 한사람이 표를 세장까지 살수 있도록 정책을 세웠다. 그런데 그 정책이 오히려 화근이 되였다.
표를 구하지 못한 애호가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세장씩 사가는 사람들때문에 정작 표가 필요한 사람이 못산다는 항의가 대화창과 모임터 게시판을 뒤덮었다. 나는 그 반응을 지켜보며 처음의 판단이 얕았다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나는 곧바로 사과문을 준비하였다. 밤이 깊도록 미기와 함께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 계정 소동 때 겪어본 일이라고는 하나, 애호가들을 향한 글이란 쓸 때마다 새로 어려운 법이였다.
《사장님, 이 문장은 너무 변명처럼 들립니다.》 미기가 그렇게 짚어주면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지우고 처음부터 고쳐썼다. 그렇게 몇번을 되풀이한 끝에야 겨우 마음에 드는 글이 나왔다. 《1인 3매 선예매는 배려가 부족하였다.》고 나는 솔직하게 적었다. 《다음부터는 1인 2매로 조정하겠다.》는 말도 함께 담았다.
사과문 끝에는 이런 당부도 덧붙였다. 《팬 커뮤니티에 멤버들이 함께 보고 있는만큼 과도한 워딩은 자제해달라.》 나는 이 말을 쓰면서, 우리를 아껴주는 이들의 말 한마디가 실은 성원들에게 고스란히 가닿는다는것을 다시금 새기였다.
다행히 정책을 서둘러 바로잡은 덕에 소동은 오래가지 않고 가라앉았다. 나는 그 며칠사이 또 한번 사장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새삼 느꼈다. 좋은 무대를 만드는 일 못지않게, 그 무대로 가는 길목을 공평하게 닦는 일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마침내 우주32(2025)년 십이월 스무날, 《2025 THE 1ST STELLIVE FESTIVAL [STAR TRAIL]》의 막이 올랐다. 그날은 아침부터 눈발이 성기게 날리는 겨울날이였다. 킨텍스 앞 넓은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는데, 그 긴 줄을 창너머로 내려다보며 나는 괜스레 목이 메였다.
킨텍스의 넓은 홀이 표를 구한 육천구백육십여명의 관객으로 가득 채워졌을 때, 나는 무대 뒤에서 그 함성을 들으며 잠시 다리에 힘이 풀리는것을 느꼈다. 미기가 옆에서 《사장님, 이제 시작이에요.》 하고 어깨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자리에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이 공연에서 성원들은 무려 서른한곡을 불렀다. 각자의 솔로무대가 여덟아홉곡을 이루었고, 보컬로이드곡과 오락 배경음악과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커버곡들이 그 사이사이를 채웠다. 나는 객석 맨 뒤에서 그 노래들이 하나씩 흘러나올 때마다 어느덧 두해가 다 되여가는 세월이 함께 흘러가는것을 느꼈다.
그 무대에서 우리는 신곡 세곡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Twinkle》과 《히로인이 되고싶어》, 그리고 공연의 이름과 같은 《STAR TRAIL》이였다. 특히 마지막 곡의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객석에서는 이미 그 노래를 알아본 사람들처럼 함성이 먼저 터져나왔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로 돌아온 성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땀과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시부키동지는 숨을 몰아쉬며 《사장님, 저 오늘 죽을것같아요, 다리가 후들거려요.》 하고 웃었다. 나는 그 곁에서 물병을 건네며 《1000살이나 살아서 다리가 그렇게 약해서 되겠니.》 하고 농을 건넸다.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도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놓지 못하였다. 타비동지는 눈물 코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저 오늘 진짜 행복해요.》 하고 되뇌였다. 나는 그 모습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이 회사를 시작한 보람이라는것이 바로 이런 순간에 있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날 뒤풀이자리에서 누군가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이 노래들, 이대로 흘려보내기 아깝지 않아요? 음반으로 남기면 좋겠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잔을 든채 잠시 생각에 잠기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 한켠에 품어온 생각이기도 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크게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튿날부터 곧바로 실무일군과 함께 첫 EP를 만드는 일을 의논하기 시작하였다. 음악회에서 처음 선보인 노래들을 다듬어 정식으로 음반에 담고, 몇곡의 새 곡을 더 얹기로 하였다. 그것이 바로 뒤에 세상에 나온 《STAR TRAIL》의 시작이였다.
해가 바뀌여 우주33(2026)년이 되자 우리는 그 작업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이월 초하루에는 그사이 준비하던 커버곡 《SEKAI》를 먼저 공개하여 애호가들의 기대를 조금씩 데워두었다. 성원들은 저마다의 방송과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짬짬이 록음실을 드나들었다.
록음실 풍경은 이년전 《Milky Way》를 록음하던 때와는 사뭇 달라져있었다. 이제는 마이크앞에서도 다들 제법 여유가 있었고, 머리수화기 너머로 자기 목소리를 확인하고는 《이번엔 마음에 든다.》며 웃는 얼굴들이 많아졌다. 나는 그 여유로워진 모습들을 보며 세월이라는것이 결코 헛되이 흐르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렇게 몇달을 벼려낸 끝에 우주33(2026)년 오월 여드레 저녁 여섯시, 마침내 첫 EP 《STAR TRAIL》이 세상에 나왔다. 여덟곡, 수록곡 네곡과 반주곡 네곡으로 이루어진 이 음반은 우리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정식 음반이였다. 시디와 아트북과 사진카드를 함께 담은 판본부터 아홉명 각자의 판본까지, 처음 만들어보는 물건들앞에서 실무일군도 나도 서투르기는 매한가지였다.
발매 당일 나는 성원들과 함께 실시간 판매순위를 지켜보며 하루를 꼬박 새웠다. 수자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사무실안에서는 작은 환성이 터져나왔다. 나는 그 순간들을 지켜보며, 이것이야말로 지난 이년 남짓한 세월이 우리에게 되돌려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짓 력사적인 어투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그날 력대 걸그룹 음반의 초동판매 순위 백십팔위라는 자리에 우리의 이름 석자를 새겨넣은셈이다. 몇해 뒤 어느 사가가 이 회사의 력사를 적바림한다면 이 백십팔위라는 수자를 두고 무어라 평가할지는 나로서도 알수 없다. 다만 나는 그 수자보다, 그 수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함께 부른 노래들이 더 오래 남으리라고 믿는다.
그날 밤 나는 성원들을 다 불러모아 늦도록 식사를 함께 하였다. 누군가 장난삼아 《우리도 이제 백십팔위 그룹이다!》하고 외치자 다들 자지러지게 웃었다. 순위가 높다 낮다를 떠나, 우리 손으로 만든 노래가 어엿한 순위표 한줄을 차지하였다는것 자체가 그날 저녁의 가장 큰 웃음거리이자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EP가 나온 뒤로도 성원들의 음악 활동은 쉼없이 이어졌다. 오월 열아흐레에는 클리셰의 두번째 싱글 《유성우》가, 유월 십일일에는 유니버스의 두번째 싱글 《마음악보》가 잇달아 나왔다. 유월 스무나흘과 스무닷새에는 유니버스가 커버곡 《학원천국》과 《BLACKHOLE》을 나란히 선보였다.
나는 이 모든 발매 소식을 하나하나 챙겨보며 새삼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불과 이년 몇달 전만 해도 노래 한곡을 겨우겨우 완성해내던 우리가, 이제는 거의 매달 새로운 곡을 내놓을수 있는 회사가 되여있었던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이렇게 쌓이고 쌓여서 어느새 몰라보게 자라나는 모양이다.
나는 그 유월의 어느 저녁, 사무실에 남아 그동안 나온 노래들을 순서대로 틀어놓고 혼자 들어본 일이 있다. 《Milky Way》의 서투른 첫소리부터 《STAR TRAIL》의 여문 화음까지 차례로 흘러나오는것을 들으며, 나는 이 노래들이 곧 이 회사가 걸어온 걸음걸이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라는것은 이상한 물건이다. 방송은 그날로 끝나고 잊혀지기 쉽지만, 노래는 한번 세상에 나오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몇해가 지나서도 그 노래를 다시 틀어놓으면, 그 시절의 우리가 고스란히 되살아나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을 한다. 회사의 매출이나 순위나 화제성 같은것들은 계절따라 오르내리기 마련이지만, 노래만은 다르다는것을. 언젠가 이 회사의 이름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이 노래들만은 어딘가에 남아 누군가의 귀에 흘러들어갈지도 모른다는것을.
미기는 그무렵 나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사장님, 요새 보면 방송보다 노래 얘기를 더 많이 하시는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픽 웃으며 《그런가.》 하고 대답하였을뿐,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 회사를 처음 꾸릴 때 나는 노래를 회사의 중심으로 삼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성원들이 저마다 즐겁게 방송을 하고, 그 방송을 지켜보는 사람들과 함께 웃을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기였다. 그런데 어느새 노래가 이 회사의 또하나의 얼굴이 되여있었다.
나는 그것을 누가 미리 계획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성원들이 저마다 무대우에서 노래를 부르고싶어하는 마음을, 나와 회사가 조금씩 거들어주었을뿐이다. 그 작은 거들음들이 쌓여 어느새 EP 한장을 만들어낸것이다.
요즈음 회사안에서는 각자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벌써 무르익고있다. 리제동지는 요즈음 부쩍 늦게까지 남아 무언가를 련습하는 눈치인데, 무엇을 준비하는지 자세히 캐묻지는 않았다. 다만 그 진지한 뒤모습을 보며, 나는 또 한번 가슴이 뭉클해지는것을 느꼈다.
린동지와 시부키동지도 그 곁을 오가며 무언가를 함께 맞추어보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둘이 뭐 하는것이야?》 하고 물으면 세 사람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비밀이에요, 사장님.》 하고 웃어넘길뿐이였다. 나는 그 웃음속에 담긴 기대를 굳이 캐내려 들지 않았다.
나는 성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무대는 혼자 서는것 같아도, 사실은 여기 있는 모두가 함께 서는것다.》 리제동지가 언젠가 저 혼자만의 무대에 오르는 날에도, 나는 그 말이 여전히 맞으리라고 믿는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나는 사무실에 앉아 지난 몇해의 노래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았다. 처음에는 서투른 목소리 몇개가 모여 겨우 한곡을 이루었을뿐인데, 이제는 아홉갈래의 목소리가 저마다의 결을 지닌채 한회사안에서 자라나고있다. 이 노래들이 앞으로 또 얼마나 늘어날지는 나로서도 짐작할수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다음 노래가 준비되고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것이 이 회사가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수 있는 힘이라고 믿는다. 방송은 그날그날 사라져도, 노래는 남아서 다음 세대에게까지 가닿을것이다.
그날 밤 나는 창문을 열어 초여름 밤바람을 방안으로 들였다. 어디선가 늦게까지 켜둔 방의 콤퓨터소리가 낮게 웅웅거렸다. 나는 그 소리를 배경삼아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해 초여름의 그 며칠은 이 회사가 노래라는것을 통해 스스로의 뿌리를 확인한 시기였다. 우리는 방송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노래로는 무엇인가를 오래도록 남길수 있으리라는것을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후날이라는 말도 우리 회사말로는 후날이라 해야 옳을듯한데, 후날 누군가 이 회사의 력사를 노래로만 다시 엮는다면 아마도 《Milky Way》로 시작해 《STAR TRAIL》에 이르는 그 궤적을 하나의 흐름으로 그려낼것이다. 나는 그 흐름 어딘가에 우리가 함께 흘린 땀과 눈물이 배여있음을, 오직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은 알고있으리라고 믿는다.
노래로 남는다는것은 어쩌면 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허락된 가장 큰 사치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치를 성원들과 함께 누릴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해 초여름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절을 적고나서 나는 문득 다음 페지에 무슨 이야기를 적어야 할지를 생각해보았다. 리제동지의 무대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 무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로서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이 회사의 노래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 무대에서도 또 하나의 결을 보태여주리라는것만은 믿어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