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리 제 의 단 독 콘 서 트

 

칠월에 접어들자 날은 하루가 다르게 무더워졌다. 장마전선이 아직 본격적으로 북상하기전이라 하늘은 도리여 유난히 맑았고, 사무실 창밖 가로수에서는 아침부터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나는 그해 칠월의 첫날부터 책상우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둔 날짜 하나를 자주 들여다보았다. 십일일, 리제동지의 첫 단독무대가 잡혀있는 날이였다.

사무실안은 랭풍기를 틀어놓았어도 서류더미와 콤퓨터 열기로 후텁지근하였다. 나는 그 무더운 공기속에서 몇번이고 공연기획서를 다시 펼쳐보았다. 무대구성이며 조명동선이며 곡목순서까지 하나하나 눈으로 짚어가며 빠진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일이 그무렵 내 하루의 큰 몫을 차지하고있었다.

리제동지가 홀로 무대에 서게 되였다는 소식은 어느날 갑자기 튀여나온 이야기가 아니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지난해 가을, 다음해 편성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리제동지는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낸적이 있었다.

《저도 언젠가는 저 혼자만의 무대에 서보고싶어요.》 그날 리제동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눈치를 살피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회사를 차린 사람으로서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니는지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대답을 주지 못하였다. 다만 그 말을 마음 한구석에 오래 담아두었다가, 이듬해 봄이 되여서야 비로소 리제동지를 다시 불러앉히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그 이야기, 한번 제대로 해보자.》 나의 그 한마디에 리제동지의 얼굴이 환해지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리제동지가 그렇게 홀로 무대에 서는 공연은 우리 회사안에서 세번째로 마련되는 자리였다. 앞서 노래로 쌓아온 세월을 돌아본 바 있듯이, 다른 성원들도 저마다 홀로 무대에 서는 순간을 겪어왔다. 다만 이른바 2기 유니버스라 불리는 세대의 성원가운데서는 리제동지가 처음이였다.

장소는 고려대학교안에 있는 화정체육관으로 정해졌다. 나는 처음 그곳을 답사하러 갔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텅 빈 체육관안에 들어서니 천장이 까마득히 높았고, 발을 옮길 때마다 신발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평소에는 학교의 여러 행사나 졸업식이 열린다는 그 널찍한 자리에, 리제동지 한사람의 이름을 건 무대가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나는 묘한 감회에 잠기였다. 학생들이 오가던 자리가 어느날 갑자기 방송원의 무대로 바뀐다는것이 낯설면서도 신기하였다. 나는 그 낯섦이 오히려 이번 공연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가... 다 찰까요?》 그날 함께 답사를 갔던 리제동지가 텅 빈 관중석을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빈자리를 세는 일보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훨씬 더 큰 몫으로 남아있다는것을 나는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리제동지는 평소 무대우에서는 당차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였으나, 그날 체육관 한복판에 서있는 모습은 어쩐지 작아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음이 났다. 겉으로 강해보이는 사람일수록 정작 큰 무대를앞에 두면 이렇게 작아지는 법이라는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다.

그날 이후 몇달동안 준비는 조용히, 그러나 쉼없이 이어졌다. 회사안에서는 무대장치와 조명, 음향을 맡을 관계자들과의 회의가 거의 매주 잡히였다. 나는 그 회의마다 빠짐없이 들어가 리제동지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고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공연을 알리는 소식이 나가던 날, 미기가 사무실로 뛰여들어와 화면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사장님, 벌써 반응이 이렇게 뜨거운데요?》 나는 그 화면을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표를 파는 일은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예매가 열리던 날 아침, 나는 콤퓨터앞에 앉아 새로고침단추를 몇번이고 눌러가며 좌석표가 채워지는것을 지켜보았다. 수자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최종적으로 팔린 표는 오천이백여든두장이였다. 나는 그 수자를 보고 몇번이나 다시 헤아려보았다. 적지 않은 수자였고, 리제동지 한사람의 이름을 걸고 이만한 자리가 채워졌다는것이 나로서는 더없이 벅찬 일이였다.

나는 그 소식을 곧장 회사 단체대화방에 올리였다. 성원들은 저마다 축하의 말을 쏟아냈다. 시부키동지는 《역시 우리 리제, 1000살까지는 안가도 오래 갈 사람》이라는 알수 없는 농을 던졌고, 나는 그 말에 무슨 뜻인지도 모른채 그저 웃고말았다.

공연에서 부를 곡은 열여덟곡으로 정해졌다. 나는 그 목록을 받아들고 리제동지와 여러차례 마주앉아 순서를 의논하였다. 어느 곡을앞에 놓고 어느 곡을 뒤에 놓을지, 그 사이사이 숨을 돌릴 자리를 어떻게 배치할지를 두고 우리는 밤늦도록 머리를 맞대였다.

《이 곡 다음에는 좀 쉬여가는 곡이 있어야 할것 같아요.》 리제동지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목록을 다시 들여다보며 곡 순서를 바꾸어보았다. 그런 식으로 조정을 거듭한 끝에 열여덟곡의 흐름이 겨우 자리를 잡았다.

게스트로는 동지와 시부키동지가 함께하기로 하였다. 두사람 모두 리제동지와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고, 무대에 서는 순서도 공연 흐름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짜여졌다. 나는 두사람이 함께한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 놓이였다.

동지는 준비과정 내내 차분하게 자기 몫을 챙기는 사람이였다. 련습때마다 늦지 않게 나와 동선을 맞추어보았고, 리제동지가 긴장한 기색을 보일 때면 옆에서 넌지시 농을 건네여 분위기를 풀어주군하였다. 시부키동지는 그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힘을 보태였다.

《할머니가 조카 응원하러 가는 셈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부키동지는 련습장에서 그렇게 말하며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평소 시부키동지에게 《1000살입니다, 할머니에요》라는 농을 즐겨치던 나 자신이 오히려 무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준비가 무르익어가던 어느 저녁, 나는 리제동지를 사무실로 따로 불렀다. 개인적으로 부탁할것이 있었기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곡과 곡 사이 멘트를 되도록 짧게 해달라는 부탁이였다.

방송편성과 조명전환, 다음 곡 준비시간까지 헤아리면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을 여유가 사실 넉넉지 않았다. 나는 리제동지에게 그 사정을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길어야 삼십초, 그정도로만 짧게 끊어가자.》

리제동지는 그날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것이 계획한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것을, 나는 공연 당일이 되여서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였다.

칠월 십일일이 다가올수록 회사 안 공기도 차츰 들썩이였다. 성원들은 지나가는 말로도 이 공연을 두고 《우리 유니버스의 첫 력사적 사변》이라는 둥 짐짓 거창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픽 웃으면서도, 어쩐지 그 말이 그리 틀린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전날 밤, 나는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다음날 일정을 몇번이고 되짚어보았다. 미기는 꽃다발이며 배지며 무대뒤에 필요한 자잘한것들을 챙기느라 밤늦도록 분주하였다. 《사장님도 이제 좀 들어가서 주무세요.》 미기의 그 말에 나는 웃으며 자리를 정리하였다.

그러나 정작 집에 돌아와서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원래 잠버릇이 심한 나였지만 그날 밤은 유난히 뒤척이였다. 래일 무슨 일이 생길지, 어디서 무엇이 틀어질지 알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속을 맴돌았다.

칠월 십일일 오후, 화정체육관앞은 이른시간부터 사람들로 붐비였다. 나는 오후 네시쯤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그때 이미 체육관을 둘러싼 담벼락을 따라 긴 줄이 늘어서있었다. 다들 손에 응원봉이며 우산이며 저마다의 물건을 챙겨들고 차례를 기다리고있었다.

대기줄 사이로 걸음을 옮기며 나는 낯선 얼굴들속에서도 낯익은 표정을 여럿 발견하였다. 오래전부터 방송을 지켜봐온듯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들뜬 기색이 감돌고있었다. 나는 그 기색을 보며 새삼 이 공연이 리제동지 한사람만의 무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육관 입구 한쪽에는 그날을 기념하는 자잘한 장식들이 붙어있었다. 리제동지의 얼굴이 담긴 커다란 걸개그림이 볕에 반짝이고있었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나며 새삼 이 하루를 위해 지나온 몇달의 시간이 떠올랐다.

무대뒤 대기실은 겉으로 보이는 관중석의 열기와는 달리 조용하고 서늘하였다. 리제동지는 거울앞에 앉아 마지막 화장을 다듬으며 몇번이고 숨을 골랐다. 나는 그 옆에 서서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고 그저 지켜보았다.

《긴장돼요?》 내가 그렇게 묻자 리제동지는 거울속의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긴장은 되는데... 그냥 오늘 하루는 실컷 즐기고싶어요.》 그 대답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오후 여섯시 정각, 조명이 꺼지고 장내에 함성이 터져나왔다. 나는 무대옆 통로에 서서 그 함성을 온몸으로 느끼였다. 텅 비여있던 체육관이 오천명 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차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아무리 여러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벅찬 일이였다.

첫곡이 시작되자 리제동지는 언제 긴장하였냐는듯 무대를 종횡으로 누비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전 대기실에서 숨을 고르던 사람과 지금 무대우의 사람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기운을 느끼였다. 무대라는것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놓는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곡이 하나씩 흘러갈 때마다 관중석의 호응도 점점 뜨거워졌다. 나는 무대옆에서 준비된 순서표를 손에 쥐고 곡이 넘어갈 때마다 하나씩 지워나갔다. 그렇게 서너곡이 지나갔을무렵, 나는 리제동지가 마이크를 쥔채 잠시 멈추어서는것을 보았다.

《오늘 여기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리제동지는 그렇게 말을 꺼내더니 좀처럼 다음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나는 무대옆에서 시계를 흘긋 보았다. 삼십초는 이미 훌쩍 지나있었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것을 나무랄수 없었다. 리제동지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그대로 묻어있었고, 그 진심을 짧게 끊어내기에는 관중석의 반응도 함께 뜨거워지고있었기때문이다. 나는 결국 무대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짐짓 속으로만 시간계산을 하였다.

그날 리제동지의 멘트는 애초에 부탁하였던 삼십초를 몇곱절이나 넘겨서야 끝나기 일쑤였다. 나는 그때마다 무대감독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다음 곡 준비상황을 조율하였다. 뒤에서는 조명을 맡은 이들과 음향을 맡은 이들이 분주하게 손을 놀리며 그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든 메꾸어나갔다.

이 일을 두고 후날 나는 성원들과 우스개삼아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리제동지가 그날 마이크를 잡고 력사에 남을 연설이라도 하는줄 알았다.》 그 말에 다들 배를 잡고 웃었지만, 사실 그 웃음 뒤에는 그만큼 그날의 무대가 리제동지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각별하였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공연 중반, 동지가 무대에 올라 리제동지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두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나는 무대옆에서 그 호흡을 지켜보며 두사람이 평소 얼마나 자주 붙어다녔는지를 새삼 실감하였다.

이어 시부키동지가 등장하자 관중석에서는 한층 더 큰 함성이 터져나왔다. 시부키동지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 이렇게 젊은 사람들앞에 서도 되나 모르겠네.》 그 한마디에 장내가 또 한번 웃음판이 되였다.

세사람이 함께 무대에 선 순간, 나는 무대옆에서 그 광경을 사진처럼 눈에 담아두었다.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닌 세사람이 한 무대우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은,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회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나는 그 순간 이 회사를 차리길 잘하였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였다.

공연이 순조롭게 무르익어가던 중, 나는 무대뒤에서 뜻하지 않은 보고를 받았다. 관중석 어느 자리에서 촬영이 금지된 구역에 앉은 누군가가 공연장면을 그대로 찍어 자기 방송에 내보내고있다는것이였다. 나는 그 보고를 듣자마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공연장 촬영은 저작권과 초상권 문제가 걸려있어 애초부터 엄격히 금지되여있었다. 그런데 게스트로 초청받았던 어느 방송원이 그 규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촬영을 한 모양이였다. 나는 공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의논하지 않을수 없었다.

문제는 그 장면이 이미 여러 사람의 눈에 띄여 여기저기로 퍼져나간 뒤였다는데 있었다. 지우고 또 지워도 어디선가 다시 옮겨붙는것이 이런 일의 생리였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듣고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날 밤 나는 결국 공식적인 알림문을 준비하였다. 촬영이 금지된 구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안내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였다. 나는 그 글을 쓰며 몇번이고 문장을 고쳤다.

《팬 여러분께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나는 그렇게 첫 문장을 적어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성원 하나하나의 무대를 지켜주는 일도, 그 무대를 둘러싼 자잘한 사고를 수습하는 일도 결국 내 몫이라는것을 그날 다시 한번 절감하였다.

곡 하나를 둘러싼 저작권 문제도 그무렵 함께 불거졌다. 열여덟곡 가운데 한곡은 사용허가의 범위가 좁아 그 자리에서는 부를수 있어도 다시보기 영상에는 담을수 없다는 통보를 뒤늦게 받았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못내 아쉬운 마음을 감출수 없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보려 하였다. 관계된 곳에 몇번이나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문의를 넣어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한곡만은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속에만 남겨두기로 마음을 정리하였다.

현장에 있던 오천여명은 그 곡을 직접 들을수 있었으나,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한 이들은 후날 다시보기로도 그 순간을 만나볼수 없게 된 셈이였다. 나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였다. 리제동지에게도 그 소식을 전하였을 때, 그는 잠시 말이 없다가 그저 《어쩔수 없죠, 뭐.》하고 웃어넘기였다.

그 웃음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마음에 남았다. 좋은 일과 아쉬운 일이 늘 함께 오는것이 이 바닥의 생리라는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있었지만, 그날은 유독 그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곡절들에도 불구하고 공연 자체는 끝까지 성황을 이루었다. 마지막곡이 끝나고 재청의 함성이 이어졌을 때, 관중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목소리로 노래를 따라불렀다. 나는 그 장면을 무대옆에서 지켜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을 느끼였다.

리제동지는 마지막 인사를 하며 눈물을 보였다. 《오늘을 절대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그 한마디에 관중석에서도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뒤로 돌아온 리제동지는 아직도 상기된 얼굴이였다. 동지와 시부키동지도 함께 모여 서로를 얼싸안았다.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다가, 못이기는척 그 무리속으로 슬쩍 끼여들었다.

《오늘 다들 수고 많았다.》 내가 그렇게 말을 건네자 세사람은 저마다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돌려주었다. 나는 그 순간 이런저런 사고들도, 뒤처리로 남을 골칫거리들도 다 잊고 그저 웃을수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근처 식당에 모여앉아 늦은 야식을 나누었다. 리제동지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날 무대에서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다시 늘어놓았다. 동지는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시부키동지는 중간중간 능청스러운 추임새를 넣어 좌중을 웃기였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다들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낮에 있었던 촬영소동과 저작권문제로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것을 느끼였다. 사람이 하루안에 이렇게 벅찬 일과 골치아픈 일을 함께 겪을수 있다는것이 새삼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 주가 다 가기전에 나는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이번 공연을 되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촬영구역 안내를 어떻게 더 눈에 띄게 할것인지, 곡목의 사용허가는 미리 어디까지 확인해두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다음에 또 누군가 이런 무대에 서게 될 때는 오늘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날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차창밖으로 스쳐가는 서울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그 하루를 되짚어보았다. 오천여명의 사람들이 리제동지 한사람의 이름을 걸고 한자리에 모였다는것,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가 뒤에서 저마다의 몫을 다하였다는것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의 소동들, 이를테면 삼십초를 훌쩍 넘긴 멘트며 촬영을 둘러싼 소란이며 다시보기에 담지 못한 한곡의 아쉬움 같은것들도, 결국은 그 공연이 그만큼 진심으로 채워져있었다는 증거였던 셈이다. 나는 그때는 그 사고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글로 옮겨적으며 보니 오히려 그 자잘한 곡절들이 그날을 더 뚜렷하게 기억하게 해주는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날 리제동지가 흘린 눈물의 정확한 뜻을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홀로 무대에 선다는것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것, 그 무대 뒤에는 늘 여러 사람의 손길과 마음이 함께 얽혀있다는것이다.

그해 칠월, 화정체육관을 가득 채운 오천이백여든두개의 목소리는 리제동지 한사람만을 위한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우리 회사가 지나온 세월, 그리고 앞으로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계속될 무대들을 위한 하나의 서곡이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그해 여름은 유독 저마다의 무대가 잇달아 펼쳐지던 계절이였다. 리제동지가 화정체육관에서 홀로 노래하던 그 무대가 있었는가하면, 또 누군가는 전혀 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얼떨결에 자기만의 무대를 만나게 될 참이였다. 나는 그때만 해도 그 다음 무대가 어떤 모습일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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