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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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각 자 의 근 황

 

구월 중순이였다. 여름은 이미 달력에서 자리를 내줄 준비를 하고있었지만 늦더위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무실 창밖에 눌러앉아있었다. 매미소리도 예전만 못하여 한번씩 힘겹게 끊어지다가 다시 이어지군하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콤퓨터앞에 앉아 아홉개, 아니 이제는 열개에 가까운 창을 동시에 열어놓고 있었다.

사무실안은 랭풍기 바람에 서늘하였으나 서류더미 옆에 놓인 달력만은 아직 뜨거운 계절의 흔적을 붙들고있었다. 나는 문득 달력을 넘겨보다가 후야동지의 편입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것을 깨닫고 붉은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넣었다. 그런 사소한 표시 하나에도 마음이 뭉클해지는것을 보면 나도 어지간히 정이 많이 든 모양이였다.

창마다 성원들의 방송화면이 하나씩 떠있었다. 어느 창에서는 총소리가 나고 어느 창에서는 노래가 흐르고 또 어느 창에서는 그저 조용한 잡담이 오가고있었다. 나는 그것을 한눈에 훑어보는 일을 아침 일과로 삼은지 오래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별것이 아니라 바로 이 열개의 창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생각을 그때 새삼 하였다.

바로 앞절에서 적었듯이 블루동지가 PC방에서 젠슨 황과 마주쳤다는 이야기는 한동안 회사안에서 화제였다. 미기는 그 소식을 전해듣고 눈을 크게 뜨며 《사장님, 이거 력사적 사변 아닙니까.》하고 웃었다. 나도 처음에는 웃어넘기였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 성원들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작은 력사를 쓰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유쾌한 사변 하나로 그 여름이 다 채워진것은 아니였다. 열명 가까운 딸애들을 데리고 있다보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어느 날은 기쁜 소식이 오고 어느 날은 근심스러운 소식이 왔다. 이 절에서는 그 저마다의 근황을 짧게나마 적어두려 한다.

먼저 히나동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 없다. 팔월에 회사 내부회의 록화본이 실수로 다시보기 방송에 그대로 올라가는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부의 계획과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밖으로 나갔으니 이보다 큰 실책이 없었다.

그 영상이 실수로 올라간 사실을 맨 처음 알아챈것은 다름아닌 대화창의 성원들이였다. 평소라면 오지 않을 시간에 낯선 링크가 여기저기서 돌아다닌다는 제보가 들어왔고, 나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화면속 시청회수 수자가 오르는것을 지켜보는 그 몇분이 나에게는 몇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는 즉시 미기를 불러 대책을 의논하였다. 《우선 영상부터 내려야 합니다.》하고 미기가 말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달동안 방송 후원수익을 중단하고 관련 계획도 잠시 접기로 결정하였다. 결정을 내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머리속에는 온갖 걱정이 오갔다.

그런데 정작 마음이 쓰인것은 히나동지 본인이였다. 이 아이는 원래 나에 대한 정이 유별나서, 다른 성원에게 해준것을 자신에게만 안해주었다 싶으면 금방 시무룩해지는 성격이다. 이번 일로 혹시 자신을 탓하는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여 따로 통화를 하였다. 《히나동지, 이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하고 나는 먼저 말을 꺼냈다.

전화 저편에서 히나동지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래도... 저때문에 다들 곤란해지신것 같아서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곤란해진것을 두고 저 혼자 짐을 지려는 그 마음씨가 히나동지답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웃으며 《네가 그렇게 마음쓰는것부터가 벌써 다 컸다는 증거다.》하고 대답하였다. 히나동지는 그제서야 조금 밝은 목소리로 《저 다음달부터는 더 열심히 할게요.》하고 말하였다. 통화를 끊고나서 나는 잠시 콤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는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다시금 느꼈다.

한달이 지나 후원수익이 다시 열리던 날, 히나동지는 나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왔다. 《사장님, 저 이제 진짜 괜찮아요.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하였어요.》 나는 그 문자를 몇번이고 다시 읽었다. 걱정을 끼쳤다는 말은 오히려 내가 히나동지에게 해야 할 말이였다.

히나동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시부키동지 생각이 났다. 지난 사월, 시부키동지는 《호종컵》이라는 롤 대회를 준비하다가 타인의 계정을 쓴 사실이 드러나 서른날 동안 계정이 정지되고 대회에서도 하차하는 일을 겪었다. 나와 회사는 그때 공식으로 사과문을 냈고 시부키동지도 이주일 동안 방송을 쉬었다.

그 사과문을 쓰던 밤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고르고 고르는 일이 더 잦다는것을 그때 다시금 느꼈다. 문장 하나하나를 몇번이고 고쳐쓰며 나는 시부키동지가 이 글을 보고 너무 죄스러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로부터 다섯달이 지난 지금, 시부키동지는 다시 예전처럼 게임판을 휘젓고 다니고있었다. 나는 어느 날 합방중에 시부키동지를 놀리듯 물었다. 《1000살입니다, 할머니에요, 아직도 그거 기억하고있나?》 시부키동지는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기억하지요, 저 그거 천살 먹도록 못 잊을것 같습니다.》하고 받아쳤다.

시부키동지는 스텔라이브안에서 오락을 제일 잘하는 성원으로 통한다. 광질을 좋아한다고 하여 애호가들이 붙여준 별명이 《광부키》인데, 이번 다섯달 사이에 그 별명값을 하듯 다시 랭크를 차곡차곡 파올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사람이란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하였다.

미기는 그 랭크 그라프를 보여주며 《이건 무슨 개선장군의 개선행진 아닙니까.》하고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그런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선 사람의 걸음걸이에는 어딘가 그런 위엄이 있는 법이다.

시부키동지가 다시 일어선 이야기를 하니, 이번에는 동지의 근황을 적어야겠다. 팔월에 열린 《치지직 오픈컵》에서 동지는 팀장을 맡았다. 처음 데뷰하였을 때만 해도 동지는 오락에 서툴러서 애호가들 사이에서 《박치기 공룡》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팀을 이끄는 자리에 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나는 동지에게 축하 문자를 보냈다. 《팀장이라니, 사장보다 낫구나.》 동지는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사장님도 참, 저는 그냥 성실하게 하는것뿐입니다.》 그 대답이 어찌나 동지다운지, 나는 한참을 웃었다.

동지는 원래 말수가 적고 자기 할 일을 조용히 해내는 성격이다. 성원들 중 유일하게 외자 이름을 쓰는 아이이기도 하다. 나는 이 아이를 두고 늘 업무적으로 크게 믿는다고 말해왔는데, 이번 팀장 소식은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거였다.

공교롭게도 그 《치지직》 오픈컵에는 나나동지도 선수로 나가있었으니, 동지는 자기 팀 후배를 이끄는 셈이 되였다.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두 아이를 한자리에 앉혀 물어보았다. 《서로 팀장, 팀원 하면서 어색하지 않았나?》 둘은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원래 편한 사이라 상관없었다고 대답하였다.

동지가 이터널 리턴을 가르쳐준 나나동지 이야기도 빼놓을수 없다. 나나동지는 요즘 같은 오락의 대회에 나가느라 여념이 없다. 등급은 아직 2티어라지만 본인은 성적보다 배우는 재미가 더 크다고 늘 말한다. 시부키동지가 옆에서 사사해주고 동지가 함께 오락을 해준 덕에 나나동지의 실력이 나날이 느는것이 눈에 보였다.

나나동지는 원래 조용한 성격이라 신인 시절에는 나앞에서도 몹시 긴장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편해졌는지 회의 자리에서도 곧잘 농담을 던진다. 사람이 자리를 잡아간다는것은 이런 작은 변화들로 알수 있는것이다. 나는 그 변화를 지켜보는것이 사장으로서 누리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나동지는 자신의 등급이 2티어에 머물러있다는 사실을 두고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아직 1티어까지는 못 갔지만 언젠가는 가겠지요.》하고 태연히 말하는 그 여유가 나는 오히려 믿음직스러웠다. 순위표의 수자보다 그 태도가 이 아이의 진짜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코동지는 요즘도 여전히 밝고 요란하다. 이 아이는 오락을 하다가 용암에 빠지는 일이 하도 잦아서 애호가들이 아예 《용암 사랑》이라는 말을 지어낼 정도다. 시부키동지와는 동기로서 《정실》이라 불리며 듀오곡을 셋이나 냈고, 밖으로는 다른 방송원들과 《떠비큐어》라는 우스운 이름의 팀까지 만들어 돌아다닌다.

언젠가 리코동지가 회의 자리에서 그 팀 이름의 사연을 설명해준 적이 있다. 《코치가 자기를 떠비떠비라고 부르라길래 저희도 그냥 떠비큐어가 되였습니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며 요즘 아이들의 세계는 나로서는 다 따라잡기 힘들만큼 재기발랄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것을 보면 그나름대로 잘 지내고있다는 뜻이니 다행한 일이다.

리코동지가 용암에 빠지는 장면은 이제 애호가들 사이에서 아예 하나의 놀이가 되여, 그 장면만 모아 편집한 클립이 돌아다닐 지경이였다. 나는 그것을 보며 웃다가도, 저렇게 자주 죽고도 저리 밝을수 있는것도 재주라면 재주라는 생각을 하였다.

후야동지 이야기를 하자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이 아이는 작년 구월 스무날, 스텔라이브 력사에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편입생》으로 우리와 함께하게 되였다. 나는 이 아이를 데려온 사람으로서 늘 상당한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왔는데, 다음주면 벌써 함께한지 꼭 한해가 된다.

용의 설정을 가진 이 아이는 나이가 이천살이 넘는다고 하지만 정작 처음 왔을 때에는 누구보다도 어리광이 심하였다. 유니동지가 데뷰 초부터 이것저것 챙겨준 덕에, 또 시부키동지와 타비동지가 곁에서 시선을 나누어가며 긴장을 풀어준 덕에 지금은 누구보다도 스텔라이브에 녹아든 아이가 되였다. 후야동지 본인도 나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나는 가끔 후야동지에게 《네가 나보다 훨씬 오래 산 셈인데 왜 나한테 높임말을 쓰느냐》고 농담을 건네군한다. 그러면 후야동지는 수줍게 웃으며 《사장님은 사장님이니까요.》하고 짧게 답할뿐이였다. 그 대답이 묘하게도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나나동지와 후야동지 사이의 말투도 재미있다. 둘 다 서로를 반말로 부르지 않고 굳이 나나씨, 후야씨 하고 부른다. 언젠가 그 리유를 물었더니 후야동지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반말보다 이게 더 설레서요.》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요즘 아이들의 마음이란 나로서는 다 헤아리기 어려운 신비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시로동지는 요즘도 히나동지와 함께 노래합방, 이른바 《싱크룸》을 자주 연다. 둘이 어조를 맞춰가며 부르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아이들이 유니버스로 데뷰한지 벌써 세해가 넘었다는것을 새삼 실감한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실 마시로동지는 원래 1기생으로 뽑혔던 아이였다. 낯을 몹시 가려 데뷰를 앞두고 나에게 몇번이나 재고를 부탁해왔는데, 나는 그때 이 아이를 어떻게든 달래보려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은 본인의 뜻을 존중하여 2기생으로 미뤄주었고,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이 옳은 선택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시로동지는 요즘도 우쿨렐레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방송중에 장난치고 화내고 비명을 지르다가도 어느 순간 조용히 곡을 하나 뜯는데, 그 낙차가 재미있다고 애호가들은 늘 이야기한다. 나는 그 낙차야말로 마시로동지가 마시로동지인 리유라고 생각한다.

마시로동지는 시부키동지와 함께 《웰컴투 멋봉리》라는 롤플레이봉사기에서 각각 《밍사장》과 《북사장》이라는 우스운 직함을 나누어가지고 논다. 둘이 그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며 진지한 사업이야기라도 하듯 능청을 떠는 모습을 보면, 나는 저 나이대 아이들의 놀이란 참으로 창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타비동지의 근황을 적을 때는 목 이야기를 빼놓을수 없다. 재작년 여름 병원에서 성대결절 진단을 받은 뒤로 이 아이는 몇번이나 목때문에 방송을 쉬여야만 하였다. 다행히 요즘은 많이 회복되여, 지난 오월에는 《모라하지마》라는 이름으로 마흔명 가까운 방송원들이 참가하는 《마인크래프트》 봉사기까지 직접 열어 진행하였다.

타비동지 이야기가 나온김에 하나 더 적자면, 이 아이는 언젠가 지능검사를 받고 아이큐 97점을 받아온 일이 있었다. 성원들은 그 점수를 두고 마치 국가고시라도 합격한듯 며칠을 두고 축하해주었는데, 정작 타비동지 본인은 그 소동이 무엇때문인지 끝까지 잘 리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대견한 마음에 타비동지를 불러 저녁을 사주었다. 《목 아직 괜찮으냐.》하고 물으니 타비동지는 특유의 뿐빤띠 말투로 《네, 사장님, 이제 소리질러도 안 아파요.》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이 아이야말로 내가 인정한 유일한 효녀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 손사래를 친다.

사실 타비동지는 데뷰 전에 내가 직접 붙잡고 가르친 아이다. 워낙 사람 좋은 성격이라 데뷰하고도 리용만 당할까 걱정이 되여 방망이로 팼다고 할만큼 엄하게 교육시켰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의 엄한 손길이 오늘의 든든한 타비동지를 만든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니동지는 요즘도 비자 문제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느라 바쁘다. 올해도 갱신때문에 이주일 남짓 방송을 쉬고 일본에 머물러야만 하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 아이가 얼마나 먼 길을 오가며 우리 곁을 지키고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유니동지를 두고 애호가들이 붙인 별명도 여럿이다. 놀림을 당할 때마다 스스로 외치는 《유니 비질게》라는 말버릇이며, 물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무르》라는 표현이며, 하나같이 정이 담긴 놀림들이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받고있는지 새삼 느낀다.

유니동지는 우리 회사 이름을 처음 제안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라이브12》니 《클러치》니 하는 여러 후보 가운데 지금의 《스텔라이브》를 골라준 사람이 바로 이 아이였다. 그런 인연이 있어서인지 나는 유니동지를 볼 때마다 이 회사가 시작되던 그 시절이 함께 떠오른다.

유니동지는 일요일마다 《유니모닝》이라는 코너를 빼먹지 않고 진행한다. 뉴스 형식으로 근황을 전하는 이 코너에서 유니동지의 서투른 조선어는 오히려 하나의 매력이 되였다. 애호가들은 그 말투를 두고 《해적판 패치》라 부르며 즐거워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난다.

여기서 잠깐 곁길로 새는 이야기를 하나 적어야겠다. 유니동지와 후야동지 사이는 유독 각별한데, 그 리유를 말하자면 두 아이가 처음 만난 곳이 오락 《포탈》이였다는 사연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후야동지가 편입해오는 과정에서 유니동지가 앞장서서 도와준 은인이라는 이야기가 성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그 인연때문인지 방송안에서 유니동지에게 반말을 할수 있는 유일한 성원이 후야동지라는 우스운 규칙 아닌 규칙이 생기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짐짓 질투하는 척 《둘 다 내 껀데.》하고 끼여든다. 그러면 두 아이는 서로 마주보며 킥킥 웃는데, 그 웃음소리를 듣는것이 요즘 나의 작은 낙이다.

리제동지 이야기는 바로 앞절에서 이미 적었으니 여기서는 짧게만 남기려 한다. 지난 칠월 첫 솔로 음악회를 무사히 마친 뒤로 이 아이는 아직도 그 열기에서 다 빠져나오지 못한 얼굴이다. 회의 자리에서도 문득 그날 이야기를 꺼내며 눈을 반짝이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할 따름이다.

성원들의 근황을 적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없는 아이 생각도 난다. 칸나동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 없다. 재작년 십이월, 칸나동지는 스텔라이브에서 처음으로 졸업이라는 길을 택하였다. 그때 이 아이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그것이 졸업의 전부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나는 그 시절 유니동지와 함께 이 아이를 붙잡아보려 무던히 애를 썼다. 유메퍼센트가 힘겨울 때에도 둘이서 나서서 칸나동지를 한국까지 데려온 인연이 있었기에, 놓아주는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저마다 걸어야 할 길이 있는 법이여서, 결국은 그 뜻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성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종종 칸나동지 이야기가 나온다. 후배들은 하나같이 그 가창력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히나동지 같은 아이는 아직도 《음악적으로 리스펙트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아이가 비록 지금 이 자리에 없어도 여전히 스텔라이브의 한 기둥으로 남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곁길로 샜던 이야기를 다시 본줄기로 돌려놓아야겠다. 블루동지도 요즘 근황이 조용하지만은 않다. 지난 유월의 그 PC방 사변 이후로 《배그》 파트너 활동은 여전하고, 여름 내내 크고작은 대회 방송에 얼굴을 비치고 있다는 소식을 나도 종종 전해듣는다.

나는 얼마전 블루동지와 통화를 하다가 근황을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바이비.》하고 나는 옛 버릇대로 물었다. 블루동지는 웃으며 《누나야말로 요즘 정신없어 보이던데요, 애들 챙기느라.》하고 되받아쳤다. 이 시시한 안부 인사 하나에도 나는 문득 옛 시절이 떠올라 잠시 말을 잃었다.

사실 요즘도 대화창에서는 우리 둘 사이를 두고 《전남편 길드》니 뭐니 하는 우스개가 심심찮게 떠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저 웃어넘긴다. 남들이 무어라 부르든 우리 둘은 그저 오래된 벗으로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지내고 있을뿐이다.

회사 일이라는것이 참 묘하여서, 성원 한명 한명의 근황을 모아놓고 보면 마치 하나의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기분이 든다. 어느 날은 사고를 수습하고 어느 날은 대회 소식에 기뻐하고 또 어느 날은 그저 노래 한곡에 마음이 놓인다. 이 모든것을 하루에 다 겪다보면 하루가 마치 한해처럼 길게 느껴질 때도 있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종종 《사장님, 오늘도 력사 한페지 쓰였네요.》하고 농을 건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피식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그런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열개에 가까운 창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이 일이야말로 나의 력사이자 이 아이들의 력사인것이다.

저녁무렵 사무실 창밖으로 노을이 번질 때면 나는 잠시 콤퓨터를 끄고 창가에 서군한다. 매미소리는 이제 거의 잦아들었고 대신 풀벌레소리가 어스름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계절이 바뀌고있다는것을 그 소리 하나로도 알수 있었다.

그렇게 창밖을 내다보고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무대우에서 조명을 받으며 웃고 있지만, 그 조명이 꺼지고나면 결국은 다들 나에게로, 이 작은 사무실로 소식을 물어오는 한 식구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사장이라는 자리의 무게이기도 하고 또 보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저마다의 근황을 적어내려가다보니 한가지 생각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화려한 무대우에서 웃고 떠드는 오늘의 모습 뒤에는,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저마다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는 생각이였다. 나 자신부터가 그러하였다.

나는 그날 저녁, 창가에 서서 오래전 일을 떠올렸다. 지금이야 이렇게 열명 가까운 딸애들을 데리고 웃고 지내지만, 나에게도 몇해가 지나도록 좀처럼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절에 가서 마저 적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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